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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싼 똥 윤석열이 똥 싼다 5/6부

내용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61/240

내가 방법을 모르니 건축생도들이 끼워주어 그래픽 부분만 하면 된다는 것 같다. 그런데 나만 계속 발표를 하고 이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이미 정해진 방향에서 벗어나면서 충돌이 생겼다. 난 건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설계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는 건축과 출신들 보다 도면을 더 잘 그린다. CAD도 잘 다룬다. 난 초정밀 설계도 가능하다.
건축의 기본은 있겠으나 조금만 도와주면 결국은 아이디어 싸움이다. 그런데 까고 무시하니 협업이 안 된다. 깊이 있게 건축 도면을 완성하는 능력은 어쩜 내가 그들 보다 더 잘 할 수도 있다. 난 형식상 미대 출신일 뿐이지 전공이 디자인이라 보기 좀 모한 면도 있다. 암튼 이 나라는 대학 전공이 많은 것을 망친다. 그게 뭐라고…,
양교수님은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지만 난 F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매우 만족했다. 청계천 공사가 진행되면서 양교수님은 청계천 공사를 책임진 서울시 부시장으로 가게 됐다. 나에게 미련이 있었는지 양교수님은 제자를 보내 학교를 그만 두고 청계천 개발에 동참 할 것을 요구했다. 학교가 이런 줄 알았으며 바로 청계천 개발에 합류했다.
그동안 몇 번을 강조 했지만 난 당분간이라도 대학 교수 자리가 필요하여 참여를 거부했다. 양교수님은 댁으로 제자들을 불러 밥도 같이 먹었다. 워낙 바쁜 분인데도 나 때문에 쓸데 없는데 신경을 많이 쓰셨다. 한 번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 강을 건너는 방법과 멍부멍게도 설명해 주시며 절대로 노 없는 배를 타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는 당신이 직접 그 배를 타셨다. 물론 부인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도 가끔은 노 없는 배를 탄다. 난 표정으로도 그 사람들이 어떤 배를 탔는지 안다. ‘양교수님! 현실에서는 노 없는 배를 타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나처럼 선장이 되면 굳이 노가 필요 할까요?’
난 동배호의 선장이다. 대중호인가?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데 학교 바로 옆 건물에 양교수님 제자들이 있었다. 바로 옆에 청계천 사무실을 설치하여 언제든지 생각이 바뀌면 오라고 했던 양교수님이 구속됐다. 그것도 황인대와 나란히…, 하지만 내가 벌린 일도 만만치 않아 연구소 일에 집중했다. 연구소 오픈 초대장을 만들어 여기저기 돌렸다.
윗층의 어느 연구실에 갔더니 이사장이 교수 몇 명과 밀담을 나누고 있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무슨 모음를 꾸미다가 내가 들어가자 깜짝 놀라는 것이 꼭 쥐새끼가 고양이 보고 놀라는 꼴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황인대가 구속됐고, 노총리는 직원들이 몰아냈고, 처장 5명은 노총리 지킨다고 사직한 상태라 이사장이 들어와 정리하는 것이 맞다.
그때는 이사장이 범죄자인 줄 몰랐다. 그래서 준비한 초대장을 건넜다. “이사장님! 디지털아트연구소가 공식 출범하게 됐으니 참석해 자리를 빚내 주십시오”, “그래 정교수가 항상 열심히 하는 것은 잘 알아요. 꼭 참석 할께요” 엄영돌은 매우 반겼으나 함께 있던 리광진 등은 표정이 이상했다. 뭔가 비장해 보였고, 엄영돌을 마치 쥐고 흔드는 것 같다.
리광진이 입을 열었다. “정교수 여기 노조에 가입해” 하며 노조 가입 서류를 내밀었다. “난 기능직으로 G전자에 그렇게 오래 근무해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리교수가 이렇게 위협하면 바로 가입해야겠네” 하며 노조 가입에 서명했다. 그러자 “그럼 정교수도 우리와 한 배를 탄거야. 앞으로는 노조에서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고 정교수 의견은 없는거야.
그 연구소도 중단하라면 즉시 중단하고”, “그럼 노조가 아니라 노비가 되는거네?”,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거야”, “말 장난이 아니고 노조라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아냐? 그런데 지금은 노조가 이사장 하고 있잖아? 그럼 옆에 계신 이사장님은 뭔데?”,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62/240

“잔소리 하지 말고 노조에 서명 했으면 앞으로 노조가 시키는 대로 해” 지난 5년을 알아온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 것이 노조다. 난 그 자리서 “그럼 이러면 되겠내” 하며 노조 가입 서류를 찟어 버렸다. “난 노조가 아니니 앞으로 노조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뭔지 모르겠지만 이사장이 오히려 안절부절이다. 그러자 게시판에서는 유일한 노조 미가입자라며 연일 나를 맹비난 했다. 엄연한 사실이니 이는 참을만 했다. 연구실로 돌아 가는데 권영진이 왔다. ”법학부 권영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리광진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으나 권교수님이 잘 좀 해주셔요“, ”예, 걱정 마십시오. 다 잘 될 겁니다.“
아무튼 정치하는 놈들은 입에 침도 안 바른다. 한국산업진흥원에서 벤처 기업 심사가 있었다. 도착하자 조교의 전화가 왔다.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출근하니 교수님 방 열쇠를 뜯고 컴퓨터며 모두 없어졌습니다.”, “누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학교로 오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 끝나시면 연구소로 가시죠”
그렇게 밴처기업 심사가 끝나고 그날부터 연구소로 출근했다. 내가 운영하는 디지털아트연구소는 몇 년 전 무형문화제로 등록 되신 분이나 미국 백악관 대통령 경호실 태권도 교관 등이 강사로 있었고 여러 협회 협회장들의 지원도 전폭적이었다. 수강생으로는 원혜영 국회의원과 정진석(?) 국회의원 등도 있었고 김원준, 조권 등 유명 연예인도 왔었다.
KBS NEWS 24로도 방영되는 등 초기 수익도 상당했다. 출발은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2005년 5월 27일 연구소에 있는데 ‘디지털아트연구소’ 운영 중지 명령 공문이 날아왔다. 나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라 관련 협회도 모두 보내 올스톱 상태가 됐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당장 연구소의 모든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연구소는 모든 절차를 거쳐 노총리가 승인했고, 내 개인 자금으로 운영 했는데 월세만 500에 전기 등 운영비 500, 초기 식비, 주차 등 500 도합 기본 운영비가 월 1,500만원이 나갔다. 운영이 중지되면 전부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학생들이 몇 명 찾아왔다. 교수 몇 명이 학교를 공중 분해하여 돈을 해외로 빼돌릴 준비를 하고 있단다.
당시 학교는 년간 순수 등록금 수익만 대략 수백억이 넘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이용해 대출을 받아 함께 빼돌린다는 구체적인 내용에다가 그 회의에 참석했던 학생도 있다. 말이 학생이지 나하고 나이도 같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서초동 정남현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 출신이다. 그러니 내가 뭘 의심하겠는가? 고소장을 작성해 교육부에 갔다.
이는 명분이고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교육부 관계자는 자기들은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으니 진정서로 바꾸겠단다. 돌이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교육부가 처리하기 쉽지 않았는지 이를 청와대로 가져 가란다. 그래서 이를 들고 청와대로 갔다. 입구에서 경비원이 진입을 허락하지 않아 약간의 실랑이를 벌렸다.
그 때 숲속에서 경호원이 나오더니 이를 국민고충처리위원회로 가져 가란다. 1년쯤 뒤 다시 청와대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입구 바로 앞에서 민원을 넣었다. 이미 시간이 늦어 그냥 돌아왔다. 그런데 그 경호원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거야? 하루 종일 땅 속에 엎드려 있었나? 다시 학생들이 찾아와 내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보고했다.
다음 날 고충처리위원회에 갔더니 이를 접수하면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며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라고 했다. 당시는 이 말이 참으로 이상했다. 학교 돈을 해외로 빼돌리니 이를 막아 달라고 진정하는데 무슨 강을 왜 건너야 하는지 모르겠다. 성동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나를 고소했으니 몇 일 조사 받으러 오란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63/240

그때 함께 있던 박회장, 강교수, 홍반장 등이 모여서 고소를 왜 당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소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교 문제가 생각났다. 김선쇠은 2% 부족하지만 일을 곧 잘 하던 조교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안들어 내가 혼을 낸적이 있다.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너 몇 살이야?”, 서른 몇 살이라 말하는데 난 깜짝 놀랐다. 조교는 잘 생긴 얼굴에 어려 보였다. 이십대 후반 정도로 봤는데 나하고 나이 차이가 별로 없어 이를 알고 매우 미안해 한 적이 있다. 그럼 이 녀석이 그동안 나한테 불만이 많았겠는데…,
선쇠가 고소한 것으로 잠정 결론 짓고 성동경찰서로 갔다. 강경영(확실치 않음)형사는 뜬금 없이 디지털아트연구소 설립 문서를 내밀더니 “정교수님! 이 문서 위조하셨습니까?”, “내가 이 문서를 왜 위조합니까? 오늘 부른 이유가 뭡니까?” 했더니 내가 그 문서를 위조 했단다.
그러면서 담당형사가 말했다. “하! 그러게요. 나도 형사 생활 30여 년이 다 돼 가는데 이런 사건은 처음입니다. 몇 번을 봐도 이렇게 이상한 사건이 있다는게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럼 나를 왜 불렀습니까?”, “그러게요 이렇게 고소하면 검사님이 무조건 무고죄로 처벌 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고소가 있내요” 도대체 형사가 횡설수설이다.
“여기 담당자 강개똥, 팀장 김은숙, 운영처장 조현제, 총장 노재봉, 정동배씨 이름이 있습니까?”,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담당 형사는 서류 하단에 문서 작성자가 나열되어 있는데 그곳에 내 이름이 있냐고 묻는다. 그래서 난 한글도 모르냐는 식으로 답했다. 뒤에 정찬유 형사 등에 따르면 사문서는 최종 결재권자가 OK하면 문제가 없단다.
그럼 대부분의 문서 위조는 그곳에 서명한 사람들이 조사를 받는다. 그런데 그 문서에는 내 이름이 없다. 그런데 법학박사가 이를 내가 위조 했다고 고소했다. 이런 경우는 무조건 검사가 직권으로 무고죄로 처벌 한단다. 난 무고죄로 처벌 하든지 말든지 별로 관심이 없다. 고소인이 조교가 아니라 쪽팔리는 일이 없어서 그냥 장난 같은 고소에 웃고 말았다.
그래도 고소가 들어 왔으니 조사는 해야 된단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노재봉 총리는 각 학부의 인스티튜터화를 주장했고, 난 그 초안을 당시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학부장 회의에서 여러 차례 논의 했고, 같은 서류는 학교에서 만든 것이다. 이후 노재봉 총리를 만나 같은 이유로 고소 당했다고 했더니 “그것은 내가 만들어 준거잖아. 내가 서명했어.
그럼 그것은 명백한 무고죄인데 그런 것은 검사가 바로 무고죄로 처벌하는 사항이야” 했다. 이 사건을 보는 담당 형사 포함,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모두 담당 검사가 무고죄로 처벌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그런데 유호근 검사는 무고협의 없다며 기각했다. 난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추석에 시골로 내려갔다. 담당형사 전화가 왔다.
“리광진 법학박사를 불러 조사 했는데 서류의 관인을 정교수님이 위조했다고 하니 동일 직인을 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내가 만든 서류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동일 직인을 구합니까?”, “그러게요. 그렇긴 한데 이 동일 직인만 있으면 더 이상 전화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하도 부탁하여 내가 알아는 보겠으나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마철연이 한테 전화했다. 마철연이는 총무처장을 하여 좀 알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노총리와 함께 필드를 여러 번 가면서 좀 친해졌다. 한구식 교수가 대외협력처장을 하여 혹시 모르니 알아 보겠단다. 얼마 후 마철연이로 부터 연락이 왔다. 건교부 장관 비서가 선배인데 동일 직인으로 여러 정부 기관과 MOU체결 한 서류라며 몇 개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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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동부 장관 이정식이다. 아마도 이정식 장관은 좋은 일하고도 이 무슨 개똥 같은 소리냐 할 것이다. 일국의 장관이란 자가…, 그럼 난? 암튼 장관도 지밖에 모른다.
그래서 지금 시골에 있으니 성동경찰서에 좀 가져다 주라고 했다. 추석 마치고 오는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성동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동일 직인 잘 받았고요. 저쪽은 무고죄로 처벌 받을 것입니다.” 했지만 이 사건이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당시 난 같은 서류 위조로 이사회에서 파면 됐다. 최병렬 등이 이사이고,
나경원이 법률고문이다. 그러니 이 문제가 해결 되야 파면무효 소송도 해결된다. 유호근 검사가 혐의없음 처리하기 전에 불러 대질 조사를 받으러 갔다. “그 학교가 사립입니까?”, “아닙니다” 리광진이 답했다. “그럼 국립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공립입니까?”, “아닙니다.” 유호근은 기가 차다며 나를 쳐다보며,
“학교가 국립, 공립, 사립 있는 것 아닙니까?”하여, 내가 “동아대학, 다음, 매일경제 등이 컨소시엄으로 설립된 사립이 맞습니다.”, “아닙니다. 원격형태의 평생교육시설입니다.” 당시는 왠 이런 미친 법학박사가 다 있나 생각 했지만 서울법대 출신 유호근도, 서울대학원 출신 나도 그때는 무식했다. 한성대 법학박사 와! 당시만…,
결국 리광진은 이날 인가 받은 학교가 아니란 것을 스스로 자백했다. 유검사 알겠는가? 그런데 담당 검사가 기각했다. 아마 리광진은 이날 돌아가서 파티를 했을 것이다. 유호근은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각했을까? 원칙은 각하가 맞다. 사문서 위조로 나를 처벌하기에는 절대로 불가능한 사건이다. 유검사가 하기에 따라 혼자만 맞나?
기각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유호근이 밝혀야 될 진실이다. 그래서 사건 기록을 열람하러 갔더니 유호근은 무고 혐의 없음을 했지만 검찰 기록은 같은 란이 비어 있다. 이후 방송 등의 떡찰, 공수처 등은 유호근을 조롱한 것이 맞다. 암튼 다툼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다. 난 즉시 무고죄로 고소했다. 이번 담당 경찰은 열의가 대단했다.
‘이놈들!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며 유검사가 왜 무고죄로 처벌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단다. 학교가 평생교육시설이건 사립이건 유호근 검사가 무고죄로 한 3년 때렸으면 일이 이지경으로 흘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문서 위조로 고소 했으니 최종 결정권자인 노재봉 총리께 전화 한 통 넣고 그냥 무고로 처벌 해버리면 된다.
검사가 할 일은 너무도 간단하다. 이도 하기 싫어 누워서 밥만 축내려면 담당 형사에게 지시하여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노총리께 전화하려니 일개 검사 다리가 후들거려 떨고 있으니 대신 용감한 형사가 확인 좀 해 달라 하면 된다. 무고로 한 3년 때려도 어차피 법원에 가면 1년 정도로 떨어지고 항소하면 6개월로 떨어졌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 사이 난 합의 보고 빠지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엄청 받아 먹은 것 밖에는 답이 없다. 지금은 배가 불러 돼지처럼 누워 있나? 정찬운 형사는 몇 번을 조사했지만 담당 검사가 배정 되지 않았다. 담당 경찰은 있는데 검사가 없다. 그러다 겨우 담당 검사가 배정됐는데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유학 간다며 빠졌다.
다시 담당 여검사로 바뀌었는데 또 빠졌다. 이 사건이 모든 사건의 열쇠인데 검사가 계속 바뀌면서 시간이 흘렀고 그러면 나만 손해다. 난 벌써 몇 달째 월 1,50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이는 연구소 기본이고 다른 것을 합치면 월 2,500은 나갔다. 몇 번을 돌던 사건이 정개똥 검사에게 배정됐다. 정검사가 조사 받으러 오란다.
화가 날대로 나서 씩씩거리며 서울동부지검 정검사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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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관이 검사님께서 직접 조사하신다며 검사실로 안내했다. 검사실에 들어서자,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나 알아요?”, “선배님 학교 다닐 때 유명하셨잖아요.”
정검사가 아는 척 했지만 이는 분명히 속임수가 있다. 그쯤되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나를 알면, 내가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겠네요. 그럼 저 끼새들 빨리 처벌 안 하고 뭐 합니까?” 마구 소리를 질렀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조사관이 뛰어 들어 오더니 “정교수님! 진정하십시오. 검사님께서 지금 신경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자 정검사가,
“선배님! 무고죄는요 기소률이 5%미만입니다. 아무리 기소를 하면 뭘 합니까? 판사가 처벌을 안 하는데…,” 그러자 담당 조사관이 기소률이 어쩌고 뭐가 어쩌고 하면서 검사 말이 다 맞단다. 기소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더 잘 할려고 그런다는데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있는데 서울동부지원에서 결정문이 왔다.
기소를 하든 안하든 검찰에서 와야 하는데 법원에서 온 통지서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뜯어 봤더니 리광진이 무고죄로 징역 6개월 판결을 받았다. 항소 하려면 몇 일 내로 항소장을 접수 하란다. 난 항소장을 들고 동부지원으로 가면서 정검사를 찾았다. 이왕이면 땡깡을 부리더라도 학교에서 한 번이라도 본 놈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에서다.
검사실 문을 열자 조사관이 인사 했다. 난 인사도 받지 않고 검사실로 들어 갔다. “검사님! 6개월로 저놈들이 정신 차리겠어요. 못해도 3년은 때려야지.”, “무슨 소리입니까? 선배님이 하신 것 아닙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검사나 판사도 아닌데…,”, “그렇기는 합니다. 그래서 선배님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 …,”
뭐라 할 말을 못하고 있는데 조사관이 들어 오더니 “검사님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검사님께서 정교수님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아니 내가 판사입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검사가 “내가 학교 다닐 때 이런 걸 배운 적이 있는데 판사가 직권으로 사건을 가져가 판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선배님이 하신 게 아니란 말입니까?”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냥 항소장만 제출하고 돌아 왔다. 당시는 검사와 판사가 짜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 돌이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난 학교 다닐 때, 노소영과 가깝게 지냈고 서울법대생들은 대부분 이를 지켜 봤다. 또 무엇보다 정수지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수지는 이대 출신인데 나하고 가깝게 지냈다.
G전자에서도 이대 출신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지금 이하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리가 바로 내 앞이었는데 다른 여자들과 뭔가 달랐다. 한 번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붉은 색 구멍이 큰 망사 스타킹을 신고 다리를 꼬고 있어 내가 어쩔 줄을 몰라 매우 당황해 했다. 향수를 그렇게 짙지도 않게 적당히 뿌린 것이 아무튼 뭔가 많이 다르다.
수지도 가끔 그와 비슷하다. 언젠가 수지가 “동배 내가 좀 야하게 하고 다닌다고 생각 해?” 수지 하고는 너무 가까워 친동생처럼 대했다. 다들 나도 딴 맘을 품고 있지 않았나 생각 할 수도 있겠으나 난 정말 편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수지가 망사스타킹을 신고 있는 것을 그렇게 이상하게 지보 않았다.
“글쎄 내가 G전자 있을 때도 우리 팀에 이대 출신이 한 명 있었는데 너처럼 그런 스타킹을 신고 다니더라. 그때는 나도 많이 이상했는데 너는 잘 모르겠다.” 이런 대화도 자연스럽게 했다. 수지가 나와 가깝게 지낸 것은 내가 유부남이여서 그럴 것이다.
법대나 환경대학원은 전부 젊은 혈기의 건강한 남자지만 나만 유부남이니 수지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66/240
수지는 서울대 인문대 쪽에서 가장 예뻤다. 아마 학교에서는 김태희보다 예뻤을 것이다. 그런 수지가 나하고 같이 다니니 법대생들이 저놈은 누구길래 수지 누나하고 같이 다녀? 하는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 수지가 법대생들을 많이 아는 것은 어쩜 내 역할이 크다.
수지는 진짜 친동생 같아서 내가 법대 동아리에 들어가 윤석열 같은 사람 말고 조국 같은 법대생 하나 꼬셔 결혼하라고 푸시했다. 외모만…, 그래서 내 압박에 못이겨 법대 여기저기 동아리 활동을 하며 법대생들과 친해졌다. 솔까 내가 서울법대생 보다 잘난 놈을 아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동생 시집 잘 보내려고 그랬다. 그래서 수지는 법대생을 많이 안다.
같이 다니면 “탄희야! 우리과 수석한 동배야! 너희들 동배 한테 잘해라” 하며 법대생들을 인사시켜 주곤했다. 그래서 97, 98, 99, 00년 법대를 다닌 친구들이 나를 알 것이라 추론 된다. 물론 내가 개인적으로 만난 친구들도 있다. 이 친구들은 서울법대생이지만 대부분 사법고시와 무관하다. 이들 중에는 미용사가 꿈인 친구도 있다.
판검사가 된 친구들은 권력 욕심이 많아 아마도 수지나 노소영 때문에 나를 아는 법조인일 가능성이 높다. 법인을 가압류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얼마 전까지 부장판사를 지낸 따끈따끈한 박변호사를 선임했다. 박변은 나와 같은 사천 시골 동네에서 자란 하형욱 판사의 절친이다. 믿고 사건을 맏겼다. 그런데 인지대가 3,000만원이 넘었다.
뭐 좋때봐라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팔고 월세로 옮기면서 인지대도 내고, 그동안 밀렸던 연구소 운영비도 모두 갚았다. 하지만 손해배상은 기각 됐다. 이는 곧 무고가 2심에서 기각되고, 파면무효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기각됐다. 이는 지금 뭐라 말을 못하겠다. 국가보안법이 집행되면 모두 맞꼬 이대로 있으면 법원 팔결이 모두 틀린 것이다.
학교 게시판이 난리다. 학생들에게 난 더 이상 교수가 아니다. “정동배! 새개끼야!”, “정동배는 전두환, 노태우와 짜고 나라를 말아 먹었다”, “정동배! 새개끼는 매국노” 그래서 딱 한 줄 대응 했다. “그때 난 고등학생이었는데 좀 잘 나가기는 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난 국가보안법 스타일이 된 것 같다. 차마 여기에 기록 조차 할 수 없는 민망한 표현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가장 믿었던 제자들도 엄청났다.
그러니까 초당 한 건 이상이라 보면 된다. 하루 종일 올라 오던 글은 그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더 이상 무서워 인터넷 접속을 할 수가 없다. 이는 당해 본 사람만 아는 두려움이다. 몇 일 후 다시 접속해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유언비어가 엄청나게 올라왔다. 진짜 무서워 접속을 못하자 같이 있던 사람들이 고소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무서워 싸이트 접속을 못한다고 하자 최팀장인가 누군가 게시판 글을 출력해 주었다. 엄청났으나 심한 욕은 올리고 바로 지워버리는 바람에 출력이 불가능하고 그나마 다듬어진 글만 출력 할 수 있어 이를 가지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여 벌금형 확정 지었다. 디지털아트연구소에 있는데 장호익 교수가 왔다.
“정교수님! e-스포츠 교재 개발을 함께 하시죠” 일도 일이지만 뭔가 집중 할 것이 필요하여 선물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디지털아트연구소에서 하는 첫 프로젝트다. 우선 e스포츠협회를 갔다. 디지털아트연구소와 상호 계약을 체결해야 일을 시작 할 수가 있다. 재갈뭐시기 협회장은 SK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정교수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SK 준페밀리 급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뒤에 자주 만났는데 가끔은 내가 아니라 재갈협회장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난 인사 청탁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노소영과의 관계 때문에 내가 편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교재 개발에 더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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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글로 나에 대해 잘 알겠지만 난 처음 하는 일을 더 잘한다. e스포츠는 처음이라 보기 좀 애매한 것도 있다.
난 이미 서울대학에서 ‘서울e스포츠페스티벌’도 개최했고 그 외에도 코엑스 등에서 e스포츠 유관 일들을 몇 번 했다. 신문, 잡지에 칼럼 등 글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교재를 개발하는 것은 전혀 별개다. 가능한 쉽게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성향도 파악하고 배우면서 자신도 돌아 보고 사회와의 상호관계도 고려하는 그런 교재를 개발하고 싶었다.
내가 학교 대닐 때의 교재는 모두 선생님의 일방 통행용이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배울 것이 없는데 그 사람을 통해 교재로 주입시키면 거부감만 든다. 그래서 학생 중심의 교재를 개발하여 강사가 진행 정도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 했는데 말이 쉽지 이를 어떻게 개발한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배워왔던 교재 중에 마음에 드는 자료들을 모았다.
그동안의 자료를 모아 유사한 부분을 추가하며 참여하고, 평가되고, 몸도 푸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초안이 완성되고 한국과학고등학교 이사장에게 전화했다. ‘e스포츠 교재를 개발했는데 학생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좀 해 보고 싶습니다’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이사장의 도움으로 학생들과 수업도 해 보고 반응도 조사해 봤는데 의외로 평이 좋았다. 물론 학생들은 교재가 마음에 안 들어도 좋은 점수를 준다. 더군다나 이사장이 직접 챙기고 또한 지인 비슷하게 와서 저러는데 점수를 안 줄 학생은 없다. 대부분 학생들은 착하다. 교재가 마무리 되어 e스포츠협회에서 발표했는데 대략 십수 명과 협회장이 진행했다.
우리 순서가 되어 발표를 마쳤는데 명신대 심리학과 교수가 태클을 걸었다. 암튼 이 대학교수라는 놈들은 어딜 가나 말썽이다. 지인의 말이지만 이 사람은 서운대 심리학 박사로 이 분야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란다. 무엇보다 정부 일을 하며 승승장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국회는 쓸데 없는 법 만들지 말고 사람 중심의 법을 하나 만들어라.
난 그동안 정부 일을 그렇게 많이 해도 어디 가서 이유 없이 똥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부 일 좀 한다고 이런 막가파가 있다. 굳이 조사 안 해도 될 정도로 억지를 부리면 이런 사람은 정부 일에서 손을 떼게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공무원들과 많은 일을 해봐서 아는데 대한민국 공무원은 이런 법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러니 이래라 저래라 해 봐야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법이 만들어 져야 이러쿵 저러쿵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법을 하나 만들어 기능대회나 e스포츠 때의 교수와 같은 자가 정부일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럼 그 공정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이런 놈은 100% 저질이거나 나쁜 놈이다. 일단은 막고 입증 후 다시 기회를 주면 된다.
학교에서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억울함을 입증하라는데 감히 내 앞에서 주름을 잡아! “정교수님! 교수님 교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이를 증명하려면 심리학 박사를 받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전공이 다른 정교수님이 이 많은 자료로 교재를 만든다는게 말이 됩니까?”, “지금 교재의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 전공이 문제라는 것 입니까?
e스포츠가 심리학도 아니고 또 이를 전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뭐야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아니 지적을 하려면 교재 어디가 어떻고 등 해야지 내 전공이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그럼 지금 교재의 내용을 어디서 가져 왔어요?”, “여기 저기 자료를 참고 했지만 대부분 내가 그냥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요.
지금 교재의 한 페이지만 봐도 우리과 석박사 논문과 비슷해요. 그런데 이렇게 증명도 안된 내용이라면 관련 참고 서적이나 자료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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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뭡니까? 이렇게 평가 하는 것은 교재의 문제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 내 전공과 참고 자료를 검증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게 눈문도 아니고, e스포츠가 생긴지 얼마나 됐다고…,” 내 교재 한 페이지가 자기 대학원생 논문 하나와 같단다. 그래서 전공이 다른 내가 어떻게 그 많은 분량의 책을 만들었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래 난 머리 좀 쓰면 안 되냐? 창의력이 펄펄 넘치는 이 머리를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다. 이 놈상이 전국 꼴지를 뭘로 보고…,
명신대생들이 얼마나 시원찮으면 그렇단 말인가? 2% 부족한 내 조교도 그 많은 내용을 장관 앞에서 잘만 발표 했는데…, 학생들을 잘못 가르쳤으면 반성이나 할 것이지.., 물론 난 전공이 많다. 기계, 설계, 미술, 디자인, 환경, 게임, 멀티미디어, 서당개 등 하지만 장점도 있다. 이 명신대 교수가 서운대 나와 평생을 배워도 모르는 것이다.
학교라는 곳에서 교육으로만 배운 사람은 그 전공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나 다른 눈으로 보면 그것은 너무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매우 한심할 정도로…, 디자이너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으면 스케치하고 시장조사, 렌더링, 도면, 목업 등 많은 절차로 완성한다. 내가 환경계획연구소에서 일할 때 진윤 선배가 나보고 공원의 벤치를 디자인 하라고 했다.
난 그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곳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아무 것도 준비 되어 있지 않다. 자리에는 책 몇권 PC 한 대 있는 것이 전부인데 어떻게 디자인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집에 가서 해 오려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러자 진윤이가 “동배씨! 이렇게 하면 되겠어요?” 하더니 그냥 벤치 하나를 캐드로 뚝딱 그려 버렸다.
너무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눈을 의심했다. 진윤이는 선배지만 나이가 나보다 어려서 항상 내가 부담이다. 연구소에서 한 번 약간 다툰 적도 있다. 아버님이 대한선박협회장이라는 말도 있고 하버드도 가는 것을 보면 집안도 꽤 좋은 것 같다. 암튼 그 순간 만큼은 넌 내 선배이고 하버드 출신이 맞다.
가끔 뉴욕 할렘가에서 전화를 받는데 바로 옆에 있어도 못 알아 들을 정도의 네이티브를 하여 물어 보니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아마도 진윤이는 나에게 별 도움을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동안 여러 전공을 배운 나의 모든 생각을 바꾸기에는 그 날의 일이 나에겐 정말이지 충격이다. 나 역시 진윤이 한테 뭘 해 준 것이 없다.
진윤이 또한 그날 일이 뭔지 기억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날 명신대 교수와 내가 다투기에는 충분한 계기가 됐다. 하버드 출신 진윤이 이 나쁜 놈! 명신대 교수는 심리학에 너무 심취해 있겠지만 난 e스포츠 교재를 개발했지 심리학 교재를 개발한 것이 아니다. 기본이 안된 놈 같으니라고…, 따라서 e스포츠에서 심리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진윤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진윤이를 만나면 ‘형! 그런 일도 있었어요?’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일을 여기저기서 여러 번 인용했다. 전공은 밥그릇을 챙겨 주기도 하지만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추가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G전자에서 제품디자인을 하면 5-6명이 붙어 짧은 것은 6개월 보통은 1년을 노력하여 하나의 결과물을 도출한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간단한 것만 맡아 3-4개월 몇 작하고 대부분 1주일이나 한달 안에 끝난다. 그런데 진윤이는 단 몇 초, 몇 분 만에 끝내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문제에서 심리학이 차지 할 자리는 없단 소리다. 고등학교 사감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한 말이 ‘갈대통에 똥물만 가득한 부씨랄 놈 끼새들아!’다.
초중고 전교 1등하고 서운대서 박사까지 받아 세상의 0.001에 스스로를 파묻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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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심한 교수는 갈대통에 똥물만 가득찬 것이 맞다. 서운대학 출신이면 세상을 크게 보는 법부터 배워야 되지 않겠어? 서로 엄청 화를 내며 다퉜다.
가끔은 유명인도 이런 실패작이 있다. 협회장이 중간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사람은 서운대 심리학 박사로 이 분야에서는 가끔 방송도 타는 살짝 유명인이다. 하지만 주제에서 계속 벗어난 지적만 하는 것이 내가 자기를 알아 주기를 바라는 진짜 골수다. 그럼 말을 곱게 해야지 그렇게 네가지가 없으면 누가 그런 인간을 알아 주나?
방송국 정신 나간 놈들만 알아주는 거야? 시청자 생각도 좀 하자! 만약 이것이 심리학 교재라면 충분히 이유 있는 주장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e스포츠 교재다. 그런데 누가 전문가고 누가 누구를 침범 했단 말인가? 하버드 심리학 박사 열 개를 받으면 뭣하나 생각이 좀팽이가 되어 아무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
아마도 명신대가 아니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였으면 귓방망이를 한 대 갈겼을 것이다. 이 교재 내용 중 한 페이지라도 어디 다른 심리학 교재를 참고 했으면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네가지지만 성깔이 있는 놈이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무슨 학자라는 끼새가 말을 하려면 몇 쪽은 심리학 어디이고, 이는 이렇게 증명 후 삽입하고,
책 몇 쪽은 입증이 어려운 내용이라는 등 이런 지적이 있고 고치라지든지…, 무슨 신병처럼 심리학 박사까지 받은 놈이 정부 똥꾸멍이나 핱아가며 전공이나 따지고 솔까 심리학이 e스포츠와 무슨 상관이야! 이 놈상끼새야! 마음 같아서는 학교로 찾아가 한 방 먹이고 싶다. 그놈이 뭔 활동을 얼마나 하기에 협회장은 중간에서 고생이 보통이 아니다.
대학 교수면 정부 잘못도 지적하고 객관적 시각도 좀 가지고 그러면 폼도 나잖아! “협회장님! 책은 거의 완성됐습니다. 저놈 짤라 버리든지 아니면 내가 여기서 포기 할께요. 건방진 놈!” 그랬더니 협회장은 밥도 사주고 뭐라 말도 못하며 안절부절이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그날 진짜 욕 많이 먹었다. 전부 아주 비논리적으로…, 원래 심리가 비논리?
일부라면 화가 나도 참지만 전부 비논리적이면 거부감이 확 든다. 저런 놈이 교수라는게 쪽팔리잖아! 좋아 니가 우니나라 심리학 1인자라 치자 그래서 뭐! 어디서 무슨 사기를 치고 살았는지 몰라도 e스포츠와 심리학은 좋도 상관없다. 이 벌씨놈아! 연구소로 돌아와 있는데 조교가 와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직접 발표를 듣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소란이 장관의 귀에 들어 갔는지 직접 최종 발표에 참석한단다. “그럼 그놈도 오겠네”, “그렇겠죠” “그럼 안 간다. 니가 가서 발표해라”, “교수님! 그래도 장관님이 직접 참석 하신다고 교수님께서 발표를 하라는데요”, “그럼 프로젝트 가져가라 하고 더러워서 안 한다고 해” 그렇게 조교를 보냈다. 물론 김명곤 장관께 이런 행동은 잘못이다.
김명곤 장관께는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김명곤 장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장관이라면 이해를 하셔야 한다. 난 언젠가 장관급이라는 기술위원 몇 명이 긴 시간의 재심을 하여 잘못을 확인 한 것을 봤다. 그런데 잘못이 확인되자 그들의 태도는 동내 구멍가게 아저씨만도 못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밤을 지새는 등 개고생 해서 잘못을 말했더니 장관급이라며 몇 명이 매달려 그들 스스로 잘못을 확인하고 다음 해, 그 범죄자를 대장으로 모시는 것을 봤는데 내가 대한민국 장관을 믿겠는가? 벌씨놈들! 나랏일이 좋은 것은 일 끝나면 입금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투쟁하여 5천만 원을 뺏었다. 이런 저런 일을 마무리하고 게임위에 들어 갔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배 때문에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을 것 같다.
한국게임학회 김경신 학회장의 연락이 왔다. 바다이야기로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생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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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위원으로 나를 추천하고 싶단다. 난 거절했다. 김경신 교수와는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 김경신 학회장은 게임관련 기자, 교수 등 여러 정보를 모아 관련 교수들에게 보냈는데 내가 이를 이용해 학교를 키웠고 여기 저기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학회에서 교수들이 왜 정교수만 도와주냐고 불평하자 모두에게 똑 같은 자료를 보냈는데 정교수가 잘 활용한 것 뿐이라며 오히려 그런 나를 고마워했다. 이후 급속도로 가깝게 지냈는데 내 소식을 듣고 게임위에 추천했다. 하지만 난 소송 때문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으나 몇 번 다시 전화가 왔다.
“정교수님이 어려운 것 같아 추천하는 겁니다 여기 위원들은 각 단체에서 추천 하는데 언론, 경찰, 변호사, 별리사 등 각 분야의 최고들이 모였으니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바로 게임위에 들어 갔다. 이번에는 김명곤 장관이 임명장을 수여하고 식사를 함께 하잔다. 아마도 김명곤 장관은 연예인 출신이면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윤석열 대통령님께서도 내가 어떤 놈인지 보고 싶을 껄? 내가 사람 막 만나는 스타일이 아닌데…,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장관 직보를 거부하는지 궁금했나 보다. 난 별도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누를 끼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약간 걱정 됐다. 명신대 교수처럼 한 성질 하는 사람이면 지난 발표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꼬투리 잡아 한마디 할 것이다. 다른 위원들에게 누가 될까봐 그 때 일을 꺼내면 사과부터 하려고 생각 했다.
정부 일에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정동배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난 분명 표를 주지 않았다고 했는데…, 정동의 한 식당에 들어서자 장관님은 환히 웃으면서 반겨 주었다. 첫 인상이 뒷끝은 없는 사람 같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장관님은 “동백타령”을 한 곡 들려 주었다. 하! 듣고 있으면서도 묘한 감정이다.
암튼 일국의 장관이 정동배 찬송가를 불러 주고 계신다. 열 달 정도 게임위 활동을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대통령들이 하는 일에 이 사람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김기민 청와대 춘추관장, 정경순 경찰청장, 오윤영 변호사, 최승혜 연합뉴스 상임이사, 별리사, 교수협회장 등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한 사람들 같다.
서울대 황토말이 송년회 때 청와대 비서관 두 명이 왔다. 세종시 총괄 책임자로 황교수님을 모시기 위해 온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미 세종시는 대부분 기본안이 완성된 시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황교수님께서 세종시 총괄 책임을 맡은 다음 장관이나 총리 자리 하나 차지하여 나를 지키라는 뜻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황교수님 제자들은 청와대 비사관을 처음 봤겠지만 난 계속 만나 왔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처음에는 최병렬 등의 일탈로 생각하고 가만 두지 않겠다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뒤에서 큰 힘이 되어 주길 바랬는데 대부분 자기가 주인공이라 생각하니 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됐다.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 글을 쓰다 보면 눈물이나 더 글을 쓸 수가 없다. 디지털아트연구소 임대 기간이 끝나 여기 저기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돌이켜보면, 이들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거나 요원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난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그런데 가끔 내가 하는 말들이 대부분 그대로 이루어졌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들과 나눈 많은 대화들이 곧 현실로 나타난다. 물론 여기서 한 말은 나만의 주장이 아니라 모두의 토론 내용을 포함한다. 끝내라는 사건은 안 끝나고 엉뚱한 것들만 이루어진다. 한 번은 대화 중에 “앞으로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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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길래 “이제는 서울법대 출신들이 대통령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생각 없이 툭 던졌다. 그러자 모두 그러면 절대로 안 된다는 식으로 나를 쳐다봤다. 오랫동안 많은 대화로 여러 이견들이 있었지만 서울법대 출신이 대통령 되는 것은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난 서울법대 건물에서 배웠을 뿐이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 권대준 교수님은 서울법대 출신이니 전혀 수업을 안 들은 것은 아니다. 암튼 그 때는 그랬지만 이제는 너무 잘 알려나? 음! 그러니까 지금은 이 나라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들은 단순하고 외골수 같아 대통령이 되면 소통이 안 됩니다.”,
“아니 그 사람들이 공부도 제일 잘 했고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지 않으면 교육제도를 바꾸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태어나 20년을 국가가 교육하여 가장 똑똑하다고 사람을 뽑아 놓고 안 된다면 모순 아닙니까?” 했다. 그러자 서로 얼굴을 쳐다 보더니 “그렇기는 한데…, 정교수님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럼 교육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합니까?”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 했다. 행동하는 양심이란 김대중 정신이고 이는 곧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다. 2021년 12월 2일 오후 1시 5분 1초에 문제인은 행동하지 않았고, 2024년 8월 18일 다수당도 행동하지 않았다. 김대중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풍선처럼 크게 부풀려 광화문에 서 있는 크도 너무 큰 양초가 되셨다.
누군가 불을 붙이면 이 양초는 영구히 세상을 밝혀 꺼지지 않는 양초가 아니라 한 번 세상을 번쩍 밝히고 사라질 큰 풍선 양초다. 광화문에서 가장 큰 양초지만 가장 밝은 단 한 번의 촛불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인이 바늘로 한 번 찔러 보자 정세균도 한 번 찔러 보고 박지원도 따라 찔러 바람이 빠지자 재미를 붙인 다수당이 마구 바늘로 찌르는 형국이다.
김대중이 한 번 번쩍 해야 하듯이 이 사건은 모두 자연인만 만날 수가 있다. 박지원은 아직도 어떻게 버텨 볼 요량인데 국정원장도 급이 있다. 내가 아는 원장님은 그 미소만으로도 무게가 있어 저울에 올릴 필요가 없다면 박지원은 깃틀 보다 가볍다. 난 지금 김대중, 정동배, 윤석열로 같이 나란히 서 있다. 두 사람은 갑이고 난 슈퍼 을이다.
참고로 문제인이 바늘로 찌르기 전에는 박정희, 김대중만 있었다. 그러니 저울로 잴 가치도 없는 자는 알아서 사그라 들어라. 이는 명령이다. 다수당이 민주화 운동 한다고 고생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국가를 보는 눈은 국영수 조금 하고 그 이후 공부라고는 단 한 번도 안 한 대학 졸업장만 가진 중딩이나 고딩 수준의 사람들 같다.
국가에서 가장 큰 정당이 하급 공무원과 같은 수준이다. 국가는 두목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법에 따라 움직이고 법에 따라 운영된다. 여의도에서 나에게 가르쳐 준 모법을 대충만 봐도 지금의 작태가 얼마나 우스운 꼴인지 알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상고 출신이지만 대한민국 거의 모든 법을 정독하고 상호 관계도 통달했다.
그런데 그 많은 운동권이 가장 기본도 모른단 말인가? 주변에서 랄지 발광하지 말고 모법을 대충이라도 한 번 읽어 봐라. 단 한 번만 읽어 보면 초딩도 안다. 나를 초딩 수준으로 보고 대하라. 돈 욕심 좀 내려 놓고 모법을 한 번만 읽어 보자. 내 눈에는 무슨 벌래나 돈에 눈먼 메뚜기떼들이 돌아 다니는 것 같다. 이럴려고 민주화 운동했냐?
김대중 대통령이 화가 나서 지금 무덤 밖으로 손이 반은 나와 있다. 세상 무서운 줄 좀 알자. 박정희 전)대통령은 공산당을 확실히 싫어했다. 박정희의 경제 정책은 모르겠으나 이념은 확고 했다. 그렇다고 일일이 안보 문제를 지시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안기부에서 맡았고 이는 원칙 보다 집행이 이루어지면 뒤에 원칙과 명분을 만드는 식이다. 학생이나 국민들이 공산당 활동을 하여 사회주의를 색출하는 것이 아니라 타겟을 정하여 물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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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고문 등 집행을 통해 언론에 알리면서 국민적 공감을 형성하는 주의였던 것 같다. 물론 여기까지만 읽고 공감 했다면 이 또한 착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은 당시 여당 사람들 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그에 따른 논리를 만들어 가던 여야 등 관련 인사들은 국보법에 대한 근거와 명분을 만들다 보니 그 시작과 끝만 안다. 내가 역사에 무능한 것은 이미 몇 차례 강조했다. 가끔 모른다면 엄청 무식한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똑똑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진짜 무식한 놈들이 내 앞에서 무능의 정도를 논하지 마라. 기본도 안 된 것들이…, 난 교과서가 아닌 사극이나 책으로 역사를 배웠다. 교과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 국사 성적 100점 보다 0점 맞꼬 사극이나 관련 책으로 역사를 배운 사람이 현실감은 더 있다. 이런 짧은 지식으로 보면, 고려말 이인임은 대비를 등에 업고 출세가도를 달린다.
사극이나 책 비슷한 것들 많이 봤지? 하지만 여기서 더 올라가는 것은 이인임의 능력인데 바로 기찰(譏察)이다. 이인임은 수하를 시켜 넌져시 정적에게 정세를 욕하며 여기에 동참하는 자들을 잡아 들인다. 이렇게 이인임은 고려를 장악했다. 이는 나중에 국가보안법의 명분이 된다. 국사를 배웠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쓸데 없는 것들만 외운다.
국가보안법은 모법이 A4 한 장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판례를 포함하면 모든 특별법을 합친 것 보다 많다. 그러니 당해 지보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지만 당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이라 어떤 때는 스스로 합리화하며 따라 간다. 또한 A4 한 장 분량이니 모법의 단어 하나 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야~ 뭔 말인지 알까? 그러니까 여당 전신인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등은 대부분 국가보안법을 잘 모른다. 다수당은 잘 알면서 오만과 편견으로 무시하고 있고 여당은 모르지만 국보법의 무서움에 두려워 하고 있다. 다수당은 2000년경부터 시작하여 특히 2005년경 대충 말해도 될 정도로 여기에 올인했다. 2021년 12월 그러니까 22년 간은 진짜 공을 많이 들였다. 이는 내가 몇 마디만 하면 다들 공감한다. 사람 관련 문제는 목숨이라 말을 아낀다. 이들 중 많은 목숨들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모두들 귀를 막고 있어 그렇다.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 역시 판사까지 지내고도 나라법을 알지 못하는 변호사로 나온다. 사람들은 이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을 봤다. 참 재미난 세상이다. 기능공 출신만 사실을 사실로 적시한단 말인가? 물론 나도 착각 많이 하며 산다.
다수당 등에 엄청난 인재가 있을 것 같으나 일은 사람이 한다. 따라서 행동하는 단 몇 명이 세상을 만들지 마치 권력을 줜 것 같은 모양의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50% 이상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된 박근혜를 보면 쉽게 이해 할 수가 있다. 2006년경 전)국무총리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 반대 시위를 한 적이 있다.
얼마 후 노총리를 만났다. “총리님도 시청 앞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에 가셨습니까?”, “그런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말이야. 정교수는 그걸 왜 물어?”, “지인이 그러는데 총리님 문제라는 것 같던데…,”, “내가 왜? 내가 뭘 했다고?”, “글쎄요. 국가보안법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은 총리님을 잡으려고 그런다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것이 현실이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재미난 일이지 않는가? 이것을 보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허참! 군사정부 때의 전)총리들이 국가보안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면서 반대 시위를 한다. 노총리 잡아 넣어라고 그곳에 모인 것은 아닐 것 아닌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지금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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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대통령의 경제를 제외한 다른 면을 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불변의 진리일 수 있으니 한 번 알아 보자.
제주 43사건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고 있다. 펙트는 북에서 공작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이에 따라 공산화 활동을 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들 모두 북의 지령을 받았거나 사회주의 활동을 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어느 한 쪽으로 방송에서 떠들지 말라는 소리다. 더 이상 민초들이 바보가 아니니 방송은 국민을 기만하지 마라.
여전히 언론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는 보도를 하는데 이 때문에 국민들이 혼란스럽다. 제주 43사건 피해자 중 어떤 자는 미군이나 국군의 일을 하던 사람도 있고, 공산당의 지령을 받았으나 그것이 공산당인 줄 모르는 사람도 있고, 그냥 본인의 일상을 하던 사람도 있다. 위의 글에 있는 조장 마을의 예와 비슷하다.
부모 혹은 아들이 국군의 일을 하다가 사회주의와 함께 죽어 공산당으로 낙인 됐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공산당은 바로 이런 사람들 뒤에서 조종한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당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뚜렷하지 않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한 부분에 서 있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을 당시에 확실이 알았다면 이 놈이 진짜 나쁜 놈이다.
그 중 한 놈이 방송국이다. 일제 때는 나라가 일본이고 다들 한반도에 살아 놓고 마치 자기 조상만 만주에서 독립 운동한 것처럼 착각하며 자위한다. 어쩜 다들 아는데 언론만 난리다. 자주독립도 못한 나라에 왠 독립운동가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내가 이 소리를 했더니 그 잘난 박사 중 한 놈이 미국이 아니어도 우리 힘으로 독립을 할 수 있었단다.
미친 놈! 내가 장담컨대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독립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 있는 박사들 만장일치로 그렇다고 해도 난 아니다. 굳이 가능한 독립이 있었다면 조선,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가 연합하여 일본과 싸웠을 때다. 이렇게 해도 아마 조선은 일본의 편에 섰을 것이다.
대동아 전쟁을 할 때 우리는 일본 편이었다. 독일과 일본의 패전 후 행동이 다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지 마라. 우리는 연합국에 속한 후손이 아니라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속한 후손이다. 독립유공자는 18,139명이다. 36년간 3천만 백성 중에 18,139명이 몇 %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진짜 독립 운동가가 맞다.
아마도 1% 미만일 것이다. 물론 유공자로 인정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도 많다. 국가가 인정 안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인정 안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분들을 진짜 존중하려면 우리 모두가 독립운동가로 둔갑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99% 대부분은 우리를 먼저 알아야 진짜 독립운동가를 존경하는 일이지 않을까?
99% 잘못한 우리가 반성하고 100% 잘못한 일본의 반성을 요구하자. 조선인 강제 징집은 일본을 위해 싸우는 것이고 이들이 중국, 베트남 등의 나라 점령에 동참했다. 공범이 피해자인가? 그런데 왜 이 나라에는 독립운동가 후손만 있나?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의 눈이다. 그러니 국봉 짓 고마해라. 나 또한 대한민국과 20(36)년간 싸웠다.
그동안 이 나라 국민들은 뭘 했나? 현실이 이러한데, 방송도 없고, 정보도 없던 시대에 누가 뭘 얼마나 알았단 말인가? 현실을 배워야 후손들의 미래가 있다. 조선은 망하는 날까지 왕의 업적이 국뽕이었다. 그래서 뭘 했나? 국뽕은 곧 간신이다. 못난 것을 아는 것도 역사 공부다. 당시 공산당은 자본주의 최남단에 있으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다.
다른 시점으로 이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심사나 조사 등으로 색출하면 대부분의 민간인은 공산당이 되고 공산당들은 여러 명분과 이유로 어쩌면 애국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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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제 청산이 안되는 이유도 비슷하다. 친일에 가장 앞장 섰던 사람들은 또 그만큼 절실하니 열심히 스스로를 변론 한다. 하지만 그 중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미적 거린다. 그래서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이 사건 같이 결국 국민만 피폐해지고 이를 이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과 언론만 배부르다. 따라서 조사나 심사는 오히려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언론이나 피해자들은 외칠 뿐이지 진실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많은 제주도나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소련이 맞는지 미국이 맞는지 모른다.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청와대 등에 억울함을 호소하겠지만 또 한편에서는 공산당 역시 같은 민원을 어쩌면 더 처절하게 넣는다. 상식적으로, 내가 제주도에서 공산당 활동을 했어.
그런데 43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난 공산당이요.’ 하는 사람이 있을까? 너 같으면 그러겠냐고…, 이념이고 나발이고 미군이 점령하고 나면 무조건 ‘난 코쟁이편이요’ 해야 산다. 그러니 정치에서는 말도 안 되는 장난 치지 마라. 총리 관인 문제를 20년간 외쳐도 아무 것도 안하는 놈들이! 지금 이는 나라 근간의 문제다. 정녕 무엇이 중한지 모르겠느냐?
처음 민원을 접한 박정희는 지금의 대통령들 처럼 쉽게 생각했다. 그냥 재주도에 있는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정도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앞으로 대통령 되는 사람이 있으면, 최고로 똑똑하다는 당신의 생각보다 민원이 휠씬 복잡한 것만 알아라. 암튼 추론하자면 박정희 전)대통령은 민원을 아주 주의 깊게 읽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따님인 박근혜와도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수십 차례 홈페이지, 지인 등을 통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머리가 나빠 이해를 못했을 가능성이 99%이고 아니면 애써 피했다. 그만큼 사건을 키운 것이다. 추론하자면, 박정희 전)대통령은 미군정 때 일이지만 모든 민원을 당신 일처럼 읽고 많은 고민을 했다.
앞서 말했지만 공산당은 변호에 목숨을 걸지만 억울한 도민들은 울림만 있다. 만약 공산당 한 명을 구해 주면 공산당 전원이 억울한 피해자나 영웅이 되고, 억울한 도민 한 명을 공산당으로 만들면 국군을 도왔거나 지지한 도민들도 공산당이 된다. 3, 4공화국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보면 이를 고민하던 박정희는 정주영을 불러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박정희는 정주영 회장에게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술이나 마시며 억울해 하는 민의나 풀자는 정도다. 그런데 정주영은 역시 정주영이다. 돌이켜 보면 왜 이런 분이 대통령이 안 됐는지 모르겠다. 정주영이 대통령이 됐으면 지금쯤 미국이 우리를 형님 나라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어리석어서 그렇다. 그래서 세종대왕도 무식한 백성이라 했다.
정주영은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대통령께 한마디 했다. “각하! 요즘 서부영화 좀 보십니까? 등을 맞대고 열을 센 다음 돌아서 총을 쏘는 것 말입니다”, “아! 재미있게 봤어요. 그런데 그게 왜?” 정주영은 약간 부과 설명을 했을 것이다. 일종의 솔로몬의 지혜도 그렇고 어떤 부족은 결투를 통해 부족 장을 정하고, 올림픽, 수능 등 대부분이 비슷한 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 신당동 가옥 25.7평 집 기준의 안전가옥을 법에 맞게 완성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피해 보상을 해 주는 령이다. 국가보안법은 간단하다. 경찰, 검찰, 법원 등 모든 국가기관과 합의하고 못 박는 것부터 용접, 도배까지 국민들이 이 나라에서 행하는 법, 제도, 관습, 의, 식, 주 등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여 완성함으로서 끝난다.
완성인데 끝내지 않으면 제주43 등 억울했던 사람들을 다시 공산당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는 단순히 김대중 대통령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암튼 나라법은 운동권의 돈 욕심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을 너무 높은 곳으로 올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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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감히 다수당 따위의 입에 올릴 분들이 아니다. 문제인은 구제 불가능이고 김대중은 노무현 대통령 한참 밑으로 내려가 백척간두에 있다. 돈이냐 김대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난 싫다고 싫다고 20년간 거부 했지만 김대중 대통령께서 나를 대한민국 안보 대통령급에 준하는 세자로 올렸으니 정동배가 명한다. 하찮은 다수당은 윤석열 대통령님의 직접 지시를 받을 시기를 놓쳤으니 앞으로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의 지시가 곧 나의 명인 줄 알고 무조건 복종하라. 꼬라지들 하고는…, 이런 것이 청출어람인가?
운동권이 그렇게 열심히 입에 침을 튀기며 나에게 국가보안법을 가려쳐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발전하여 억울함을 해결하는 제도로 정착했고 결론은 안전가옥이 완성되면 끝이다. 이는 새끼치기하여 되살리거나 짓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자는 20년, 또 어떤 자는 30년이 지나 간첩 누명을 벗는다. 이렇게 하면 혹 공산당이었다고 하더라도 20년의 세월 동안 정부와 소통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민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관을 통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시작에 김대중 대통령이 있고, 그래서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이 빠져 들었고, 지금은 한덕수 총리가 똥 싼다.
암튼 조규향의 욕심과 유호근의 법리무지로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까지 빠져 들었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서 서울법대 출신은 건드려도 기능올림픽 출신은 건드리면 안 된다. 윤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이제 나와 한배를 탔다. 초록이라고 반드시 동색은 아니다. 김대통령이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는 그 지지자와 관계자들이 해명 할 일이다.
아니면 왜 이런 미저리 같은 정동배를 도왔냐고? 하지만 추론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 일이 추론으로 풀어가는 것이니…, 난 시작부터 원격형태의 평생교육시설과 함께 출발하여 어느 정도 보통인에 비해 많이 안다. 당시는 IMF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대학원 동기 장영돌이 전화가 왔다. “동배형! 황교수님이 입원하셨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급하게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여 전화했더니 영돌이가 병원 입구로 나왔다. 영돌이는 지금 삼성 홍라희 여사의 집사다. “형, 후배 누구 알죠?”, “응”,
“형이 내린천에서 누구 물에 빠진 것 구해준 적 있어요?”, “그런데, 왜? 난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누가 그래?”, “아뇨, 교수님이 지금 수술 마쳤으니 올라가 보셔요. 00호입니다.” 누구는 후배인데 덩치가 좋고, 그러니까 고현정 비슷하여 발육상태가 좋다. 얼굴이 하얗고 성격이 그냥 착하다. 있는 사람의 여유 같은 것이 몸에 배어 있다.
대충봐도 똑똑함이 철철 넘치지만 항상 “선배님! 이건 어때요?” 하면, 잘 아는 녀석이 물어보는 것 같은데 건방져 보이지도 않고 잘난 척하는 것도 아닌 것이 예의도 있다. 한마디로 난 발육상태가 꽝이니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다. 한 번은 1, 2학년이 함께 내린천에 갔다. 래프팅 업체들도 전부 샷터를 내렸는데 학생들이 래프팅을 하자며 졸랐다.
불상자가 오더니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지금은 래프팅이 불가능 하단다. 그러자 20여명의 학생들이 언제 또 오겠냐며 계속 타자고 우기자 한 성격하는 유교수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연락을 하자 곧 한 업체 사장이 오더니 역시 위험해서 안된단다. 하지만 똘똘뭉쳐 의쌰의쌰하는 혈기를 누가 막겠는가? 그렇게 래프팅의 처음은 순조로웠다.
물이 잔잔한 곳에서 안전을 위한다며 가이드는 고의로 모두의 옷에 물을 적셨다. 그런데 하류로 내려가며 바위가 있는 협곡으로 접어들자 보트가 급속히 회전하더니 거의 뒤집힐뻔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친했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어나지 않는 누구가 물에 빠졌다. 순간이지만 다들 자기 살려고 누구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미 급류로 빠져들면서 손이 보트를 겨우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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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 늦었어도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난 고등학교 때 물에 빠진 친구들의 그 눈빛을 봤다. 보트가 많이 흔들렸지만 한 쪽 손을 줄로 손목을 휙 감고 있는 힘을 다해 누구의 손을 잡았다.
만나면 뭐라 할지 몰라도 진짜 1초만 늦었어도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이지만 여학생이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다.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잡아 올렸다. 누구 역시 살려는 의지가 강했고 둘의 고군분투는 바로 옆자리의 가이드를 포함한 모두 각자 살려고 아우성인 순간 겨우 물 위로 올라왔다. 누구는 고마워하는 표정이었지만 난 영돌이가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유교수님은 첫 수업에서 나를 개나 소로 취급했지만 한 학기가 끝난 이후부터는 나를 아주 좋아했다. 혼자 생각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제자라는 것을 자랑하셨으면 좋겠네…, 아니면 자랑하셨겠지? 정도랄까? 그래서 언젠가 나보고 함께 일하자는 제안도 했다. 그러니까 98년쯤 월급을 500만원 줄 테니 함께 일 하자고 했는데 그 자리서 거절했다.
그러자 동기들이 모두 놀라며 저형 뭐야? 했다. 이 친구들아! 나도 다 계획이 있다. 이후 누구 등과 외국도 같이 가고 여러 답사지도 선배로서 같이 다녔다. 난 유교수님이 좋았다. 유교수님은 이성이 뛰어나신 분이면서 감성도 풍부하다. 언젠가는 용인 희원도 함께 했다.
아직 개방하기 전이고 막 공사를 마무리하여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데리고 설계를 마무리 하면서 여기 저기 설명 하셨다. 부르델의 ‘활쏘는 헤라클레스’를 보고 내가 “야! 꼭 진짜 같지 않냐?” 했더니 “형! 이것 진짜예요”, “야! 진짜를 이렇게 비를 맞히고 있냐?”, “여기 이건희 회장 정원이잖아요?” 그 때 처음으로 돈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중앙의 작은 연못 근처서 교수님께서 “여기가 좀 허전하지 않나?” 하셔서, “여기는 버들을 심으면 좋겠습니다”, “형! 여기는 고급 정원인데 버들은 아니죠!”, “야! 그래도 버들이 축 늘어져 있어야 여유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 했더니 교수님께서 듣고 능수는 뭐고 수양은 뭐고 줄줄줄 하시더니 “그래 어디쯤이 좋겠어?” 하며 나를 바라봤다.
“이쪽에 있으면 딱 좋죠” 난 뭘 알고 한 말이 아니라 그냥 허전하다고 하여 한마디 한 것 뿐인데 교수님께서 시공 관계자를 부르더니 ”여기에 버들을 심어“ 하셨다. 너무 오래되어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곳에 아직 버들이 있으면 내 아이디어다. 이렇게 여기 저기 다니며 많이 가까워진 후배 중의 한 명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난 누구가 혹시 기분 나빠하거나 자존심 상할까 봐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누구가 말한 모양이다. 이녀석이 착한 것은 미처 알고 있었다. 누구는 착해도 잘 산다. 뭐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어야 되지 않겠나? 너무 착하면 또 아주 잘 살기도 한다. 황교수님 입원실로 갔더니 사모님께서 함께 계셨다. “정교수 어서와!
동문이라도 원래는 2인실인데 황교수님께서 제자를 잘 두어 서울대학병원 원장님이 이렇게 1인실을 주셨어”, “교수님은 휼륭한 제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황교수님 제자가 병원장님 딸이 물에 빠진 것을 구해 주어 고맙다며 병원장님이 매일 직접 찾아오고 이렇게 병실도 전망 좋은 곳으로 주셨어”, “고맙내요. 선배님 누구신데요?”
그러자 사모님은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는지 “그래 그건 정교수가 알 필요 없어” 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 “정교수! 김명호 석궁교수 알지? 그 교수(아니면 판사)가 바로 옆방이야 한 번 만나 볼래?”, “아닙니다. 저는 교수님만 괜찮으면 됩니다.” 했다. 황교수님은 내가 소송 중이라 김명호 교수가 쏜 판사인지를 한 번 만나 보겠냐는 것 같다.
그런데 난 내 일로 교수님께서 신경 쓰는게 싫었다. 물론 건강하셨으면 전혀 다른 문제다.
177/240 건강 하셨으면 내가 매우 귀찮게 굴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은 지금 심장을 옆의 작은 냉장고에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대수술을 하신 분이다. 절대 안정이 최우선인 분께 내가 병문안 온 자체가 부담 같은데 어떻게 여기서 내 이야길 하겠는가?
물론 교수님께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자활하실 때 찾아가 도움을 청한 적은 있다. 그후 시골로 내려가 있는데 서울대학교 병원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오는데 그 누구와 꼭 닮은 것을 보고 그녀가 서울대학병원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 할 일 있으면 아마도 도움 좀 주지 않을까? 누구가 결혼할 때 무슨 호텔에 갔었는데 아버지가 서울대 병원의 의사라는 것은 알았다. 흰 가운을 입고 머리가 하얀 사람들 수백 명이 서 있는 것이 마치 헤리포트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난 제자나 친구 중에도 의사가 많다. 대전의 고속도로변 큰 병원의 원장과 목동의 한 병원 원장도 아주 열심이었던 제자이고, 진주 고속도로 진입로에 있는 큰 병원의 원장은 고등학교 선배님이다. 국립원자력병원 우리나라 암 치료 일인자 원장님도 안다. 일반 수술 평생 예약이 끝났지만 내가 부탁하면 만사 제치고 언제든지 즉시 수술해 주기로 약속했다.
전)처남도 서울의대를 나와 누구의 아버지도 그냥 One of Them 정도로 생각했는데 서울대 병원장이었다. 허기야 전)처남 결혼식에도 갔지만 하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난 의사도 아닌데 사람을 많이 살리기도 죽이기도 했다. 앞에서 유교수님이 버들을 듣고 줄줄줄한다는 했는데 서울대생들은 일상이라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는 이런 일이 참 많다.
말 나온 김에 서울대 교수님들에 대한 글도 몇자 적어 본다. 원래 잘난 서울대생들이 모시는 서울대 교수님과 나 같은 사람이 모시는 서울대 교수님은 전혀 다른 시각이 있다. 한 번은 어느 술집에서 황교수님과 동문들이 한 잔 하고 있었다. 정경심 교수가 들어왔다. 우리 황교수님과는 각별했다. “어머! 선배님 안녕하셔요?”, “선배님! 영광입니다.”
여학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정경심 교수가 누군데 난리야?”, “동양대 교수님이잖아” 참으로 어이가 없다. 난 당시 동양방송대 교수인 줄 알았다. 지방대 교수 한 명을 보고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속된 말로 지천에 깔린 것이 서울대 교수님들인데 동양대 교수를 보고 이러면 뭔가 많이 이상한 것 아닌가? “아니 동양대 교수가 뭔데 그렇게 환영이야?”,
“남편이 잘 생겼잖아!”, “뭐 남편이 누군데?”, 난 장동근 같은 유명 연예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법대 교수님으로 오셨어”, “서울법대 교수님 사모님들은 다 이렇게 환영을 받아?”, “남편이 법대 교수라 그런게 아니고 서울대에서 제일 잘 생겼어! 그러니까 서울대 여학생들의 로망이 정경심 교수인거지”, 아! 서울대생도 별 수 없구나!
“다들 왜 이래” 하면서 정경심 교수는 황교수님과 나 사이에 앉았다. 다들 환영했지만 알지도 못하던 정겸심 교수는 그날 나와 황교수님 하고만 대화했다. 자리가 일렬로 쭉 앉는 곳이라 다른 동문들은 환영만 했다. 그 때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하지는 못하나 다들 기분이 좋았다. 정경심 교수는 지금 매우 힘들어 하니 함께 나눈 대화는 삼가 하는 것이 예의 같다.
추론이지만 조국 교수는 아마도 내가 강의하던 강의실을 수리하여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층에서는 교수실로 쓰기에 내가 강의하던 강의실이 가장 적합했다. 사람들은 조국 교수를 보고 서울법대 교수님들이 다들 긴 조각상인 줄 알겠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난 같은 건물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녘까지 무려 4년을 있었다.
솔직히 조국 교수 같은 분은 지보 못했다. 그러니까 짧은 동글동글이가 나오면서 비워준 강의실에 긴 조각상이 들어갔고 그 분이 방송을 많이 탔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법대 교수들이 저렇구나 할 여지가 있다. 어쩌다 휴강이면 주로 중앙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도서관 가기 애매하거나 기분이 아닐 때는 항상 규장각 은사시나무 아래서 킬링타임 했다. 178/240 그러면 서울법대 교수님들이 책을 머리 위에까지 들고 뛰어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본다. 15동에서 나 보다 나이가 많거나 모르는 교수님들은 전부 법대교수님들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조국 보다 나를 더 닯았다. 머리 기억력은 빼고…, 내가 책을 키 보다 높게 들고 뛰어 다니면 다른 학생들이 나를 서울법대 교수로 볼 가능성이 많다.
당시까지는 서울대 교수들 봉급도 상당히 낮았다. 조국 교수는 좋은 시절에 잘 들어간 케이스다. 황교수님께서 월급을 물어 보기에 얼마라고 했더니 ‘정교수가 나 보다 월급을 더 받는다’고 하셨다. 그 전까지 서울대 교수의 봉급은 조국 교수의 절반 정도다.
황교수님 말씀이 너무 죄송스러워서 내 년봉을 좀 낮춰야 되나 생각도 했다. 물론 생각만 했다. 서울대 교수님들 봉급이 그렇게 낮은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랬다. 내가 졸업 후, 국립이 국립법인으로, 봉급이 월급으로 바뀌어 지금 처럼 오른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서울대 교수님들은 일반 공무원들과 같은 봉급을 받았다. 다들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다.
무엇을 하든 내가 황교수님 보다 더 대우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교수님은 그냥 하신 말씀이다. 서울미대 권교수님도 처음에는 이하대에 재직했다. 이하대 교수님들은 년봉이 대충 서울대 교수 보다 3배 정도 높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러버콜을 하자 고민도 안 하고 바로 짐싸들고 서울대로 왔다. 서울대 명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난 나보다 잘 난 사람이나 어른들을 보면 무조건 도와준다. 뭐 성격 아니면 버릇 비슷하다. 물론 지금은 정반대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고 이제 죽는 날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 이제 내 앞에서 물에 빠지거나 하지마라.
그냥 물귀신 된다. 규장각 조경석에 걸터 앉아 법대 교수님들이 머리 위까지 책을 들고 뛰어 다니는 것을 보면 가끔은 내가 마치 신선들의 세상에 놓인 것 같다. 관악산은 신선들의 성지다. 대기업 기능직 보다 적은 봉급을 받고 저렇게 열심이다. 처음 이런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갔으나 바로 멈췄다. 왜인지 아나?
외향적으로 나를 닮은 서울법대 교수님들을 보고 괜한 동질감으로 뛰어가 “교수님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하면 교수님들은 분명 “고마워” 하시면서 그 많은 책들 중에 한 권을 나에게 주실 수도 있다. 원래 책 욕심이 많은 분들이라 안 줄 수도 있고…, 암튼 “이것 읽어 봤나?” 하시면서 개똥 철학이 어떻고 무슨 주의가 어떻고 하며 질문을 하실 것이다.
그러면 난 기껏 도와 드리고는 ‘멍~“ 할 것이 뻔하다. 솔까 서울법대 교수와 대화해서 멍 한 것이 무슨 죄겠는가? 대화로 내가 이기면 그것이 더 문제이지 안 그런가? 하지만 내가 멍히 멀뚱 멀뚱하면 ”자네 누군가?“ 하고 물으면 환경대학원생이라 말해야 하고 그러면 ”누구 제자인가?“하고 물으면 ”황교수님 제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이렇게 되면 ”아니 황교수는 어떻게 이런 멍청한 놈을 제자로 받아…,“ 순간 온갖 생각이 들더니 그만 발이 자동으로 멈췄다. 만약 법대 교수님들이 아주 상식을 물어 봤는데 내가 모르면 황교수님께서 얼마나 입장이 난처 하겠는가? 그래서 그냥 자리에 앉았다. 이후도 몇 차례 더 이런 모습을 봤는데 그럴 때면 자리에서 일어 났다가 다시 앉곤 했다.
그러니까 마음은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니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면 이해 하셨으면 한다. 교수님들 책들고 다닐 때 건방지게 앉아서 구경만 하던 놈인데 마음은 있었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한다. 서울대 교수님을 안다는 것은 일종의 국어사전, 영어사전, 백과사전 등을 들고 다니는 것 비슷하다. 박동화 교수님과 다니면서,
“저 나무 특이 하내요?” 하면 줄줄줄 한다. 그냥 학명부터 용도, 가치, 서식지 등 관련 유사 부과적 설명까지 끝이 없다. 심지어 몇개월 전 어디서 설명해 준 것까지 기억하며 왜 모르냐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교수님! 내가 그런걸 다 기억하면 서울대 교수하겠죠?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79/240
산업대 선배가 강남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는데 고위정책과정에 들고 싶다며 황교수님과 식사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성화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정말 어렵게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 하셨다. 그렇게 식사를 하는데 이 선배는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려 그랬는지 공부를 많이 해왔다.
그러면서 문짝의 맞춤이나 문틀의 구조 등을 설명하자, 난 이런 말을 왜 교수님께 하는지 걱정됐다. 그런데 황교수님은 맞춤의 각 면 용어까지 그대로 사용하시며 설명해 주셨다.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사용되는 전문용어까지 모두 줄줄줄이다.
선배는 대충 뭔가 준비를 한 것 같은데 교수님은 그 준비의 넘어까지 줄줄줄 설명하며 구조, 강도 등으로 대화를 이어가자 그 선배가 황당해 하더라. 난 그런 전문 지식이 없으니 두리뭉실 잡고 방향을 설정한다. 반면 서울대생들은 관련 지식을 암기하여 교수님들과 맞짱을 뜬다. 이런 것은 노소영이 제일 잘 하는데 거의 서울대 교수 수준이다.
중세 유럽 도시에 대한 수업이 시작되면 누가 관련 책을 많이 읽었냐를 가지고 누구는 어떻고 뭐는 이렇고 등 각자 아는 것으로 마치 무슨 전투를 하는 것 같다. 학생들도 한치의 양보가 없다. 서울대 교수는 참으로 피곤한 직업이다. 무슨 학생이 학생 같아야 말이지?
아마 내가 가장 말 잘 듣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난 그런 지식 수준이 낮으니 그냥 교수님들의 말이 곧 법이고 교과서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은 서울대 교수님들의 입으로 나온 모든 지식이다. 평생 그 많은 책을 읽고 종합하여 하시는 말씀인데 여기에 뭐를 더 추가하겠가? 그래서 교수님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는 곧 길이요 생명이다.
그런데 서울대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교수님을 약간 난처하게 해야 돋보이는 줄 알고 유럽의 개똥이 미국의 소똥이 하며 남들이 들으면 마치 철학 비슷한 말들을 늘려 놓는다. 그러면 교수님들은 또 이를 모두 받아 준다. 난 책 보다는 그냥 그 틈바구니에 끼여 주워 들은 것이 내 지식의 전부다. 서울법대 뿐만 아니라 난 관악산 모든 곳에서 그냥 서당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서울대 교수님들이 나를 좋아 한다. 평생을 공부해서 한 마디 하면 서울대 출신들은 다른 책들을 통해 맞 받아 칠 것을 생각 한다면 난 그냥 따라가니 교수님들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니겠어? 이런 전차로 내가 서울대학교 체육관에서 국내 최초의 외부 행사인 게임대회도 개최했다. 버들골에서는 멀티미디어학부 체육대회도 했다.
1급 공무원인 행정실장 등이 외부행사를 매우 반대하여 행정실에서 크게 다투기도 했으나 교수님들의 만장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각 단과 대학장과 총장의 허락으로 가능했다. KBS가 열린음악회를 했는데 이도 운동장이나 학교 내에서 한 것이 아니라 정문 밖의 도로를 막아 서울대학편을 방영 한 것으로 안다. 아마 이는 대통령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난 KBS도 못하는 일을 했다. 이번에도 이렇게 한 건 했다. 동기가 권대준 교수의 ‘계획과정론’이 서울대 3대 명강의라 했다. 어차피 수석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니 이왕이면 이런 수업을 들어야 폼도 날 것 같아 수강신청을 했다. 권교수님이 F를 주셔도 영광이다.
그래서 항상 수업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눈을 똘망똘망하게 굴리고 마치 초병이 훈련소 입소하는 심정으로 교수님의 움직임 하나까지 따라 할 생각이다. 권교수님은 물을 한 잔 마시고는 반주먹의 손으로 ’어험 어험‘ 하시며 팔을 한 번 흔드시고 얼굴을 살짝 돌리며 강의를 시작한다. 그러면 난 항상 물을 한 잔 테이블 위에 가져온다.
물론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다. 첫 수업에서 ’험!‘ 하시며 제일 앞에 있는 나에게 물을 부탁하셨고 그 이후 수업 끝날 때까지 내가 계속 자진해서 물 당번을 했다. 난 이것이 큰 영광이다. 학점을 잘 받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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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법대 안에 서울법대 출신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인 서울대 3대 명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의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서다. 난 F도 염두에 두지 학점을 잘 받기 위한 학생이 아니다. 속된 말로 F 하나 받으면 서울대 교수 수업 한 과목을 더 들어야 되니 좋다. 권교수님 수업은 서울대 석박사 대략 60여 명 이상이 듣는다. 많을 때는 100여 명도 넘는다.
서울대 석박사 대부분이 듣는 수업이라 보면 된다. 요즘은 아니겠지만 당시는 석박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제일 앞 줄은 항상 나와 일본인 친구가 차지했다. 이 친구는 녹음을 하여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는 질문도 많다. 그런데 난 질문 할 것이 없다. 솔직히 황교수님 수업에서 진을 뺄대로 뺀 상태이고 권교수님 수업은 그냥 포기하며 신청했다.
난 어려워서 얼음이 된 것이 아니라 너무 쉬운 줄 알고 질문을 안 했다. 그런데 수업이 계속 되면서 뭔가 이상하다. 그냥 중학교 때 교감 선생님이 영어 가르치는 것이나 바른 생활 수업 비슷하달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워도 너무 쉽다. 주민참여, 민주주의, 설명회, 정책 등 흔히 매일 뉴스에서 듣는 내용 비슷하기도 하고 뭔가 못 알아 듣는 말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재에 한자가 없다. 그리고 읽어라 하지도 않고 그냥 교수님께서 쉬운 말로 쉽게 설명하셨다. 어! 서울대 석박사도 이런 수업을 듣나? 그런 흔한 내용을 이 일본 친구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항상 질문 했고 그러면 권교수님은 약간 고민을 하시다가 답을 하곤 했다. 이 일본 친구가 또 질의를 하고 그러면 뒤에 있는 친구들도 한마디씩 한다.
뭐 저런 질문에 고민 할게 있지? 아무튼 그렇게 기말고사는 다르르르 소리를 들으며 한 학기를 마쳤다. 사실 뒤로 가면 강의가 엄청 어려워질 줄 알았다. 뭐야 이런 놈들이 고시생이야! 황교수님 수업에 비하면 정말 쉬운 수업이라 많은 학생들이 듣고 그래서 3대 명강의가 된 줄 알았다. 물론 성적은 형편없이 받았지만 불만도 전혀 없다.
권대준 교수님 수업을 들은 자체가 영광이긴 한데 도대체 뭘 배웠지? 물이 아니라 커피를 한 잔씩 드렸어야 했나? 아니면 베지밀인가? 난 계획과 교수님들도 많이 알고 지냈다. 오히려 우리과 교수님들 보다 더 편하다. 항상 쉬운 말로 하시니까? 내가 왜 이런 말을 이렇게 길게 하는지 아나? 난 지난 20여년간 소송을 했고 공무원 하고만 소통했다.
그러면서 아! 이거구나!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것이 바로 계획과정론 수업에서 동기들의 질의들이 이 세상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이 일본 친구나 다른 석박사들이 듣고 받아 들이는 용어에 대한 의미와 내가 듣고 받아 들이는 이해가 전혀 달랐다. 내가 지금 하급공무원들을 원망하는 것도 어쩌면 이 영향이 커다.
주민참여의 정도와 국가의 개입 정도를 너무 쉽게 알아 들은 줄 알았는데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일본 친구나 다른 석박사들은 모두 나와 다른 세상에 있었다. 하급 공무원들과 지내고 보니 이들의 잘못이 나에게는 확 와 닫는데 이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과 유사하다. 쉬운 단어도 행정에 들어가면 그 깊이가 이어져 결국 다른 용어들과 충돌한다.
그러면 그 이익이 어디에 있냐가 결론으로 도출된다. 그러니 공직자는 가능하면 법무팀에 조언을 구하고 행동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되면 즉시 보고해야 끝이 편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난 같은 교실에서 같은 단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수강했다.
하지만 수업을 들은 60여 명의 다른 핵생들과 교수님은 전혀 다른 세상에 있었다. 9급 공무원으로 들어갈 때 그 수준을 그대로 가져 있으면 본인은 전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9급 수준의 공무원이 세월이 지났다는 이유로 5급의 자리에 앉아 사고만 친다. 이 나라에서 나이 많은 5급 공무원을 누가 훈육 할 수 있겠는가?
181/240 서울대 교수님들을 ET나 오징어 머리로 생각하고 바늘로 콕 찌르면 먹물이 쭉 나온다. 유치원때부터 전교 1등해서 교수가 되어 평생 책과 씨름하신 분들이다. 난 다른 전공 교수님들도 많이 만났는데 대부분 하나를 물어 보면 그냥 줄줄줄한다. 입이 간질간질 해도 그냥 알려 주면 사람들은 잘난척한다고 싫어한다. 사실 선진국은 이도 돈내야 한다.
서울대 교수는 뭘 여쭤보면 밥까지 사주며 줄줄줄한다. 서울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특히 정치인들은 가끔 서울대가서 교수님들께 한 번씩 자문도 구해봐라. 그많은 지식을 쥐고 있으면서도 주체하지 못해 말을 못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얼마나 조심하는지 거부감이 들지만 한 번 입이 터지면 줄줄줄 기가찬다. 아마도 이분들이 돈욕심이 많았으면 국민들 살기 진짜 힘들 것이다. 쥐꼬리로 진리에 만족하는 분들이니 우리가 편하다.
후배들아! 책에 너무 의지하지 마라. 너희들이 똑똑하다며 책만 파고 들어 상위 1%로 득도 했을 때가 지금의 신선들이다? 하지만 교수님들 말씀을 잘 들으면 너희들이 앞으로 볼 책을 종합하는 것이고 그곳에서 방향을 잡아 필요한 책을 보는 것이 맞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 운이 좋으면 3급까지 올라 갈 수도 있는데 굳이 그만 감옥 가는 길을 택한다. 어차피 공무원은 처벌하지 않으니 아무렴 어떤가? 법대로라면 사형감인데…, 왠 놈은 책임으로 20년 노동교화형 받고 있는데 사형 선고 받을 공무원은 아무렇게나 해도 잔치하고 있겠지? 미친 나라…, 법대로라면 이들은 죽어서도 교도소를 나오지 못한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설치 한다고 하자 경찰 간부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실 나 정도만 되도 이런 작태가 얼마나 쪽팔리는지 안다. 저것들 경찰 맞아 하는 착각이 든다. 법에 대한 상식이 있는 공무원이면 진짜 쪽팔리는데 경찰 간부들이 저러고 산다. 경찰이 언론의 노리개든 무식하든 이유 없이 자랑스럽단다. 세상은 무지를 자랑하는 놈들이 제일 무섭다.
저들이 무슨 법을 지키겠나? 당나라 법만 지키나? 이 나라 경찰간부들이나 당시 권교수님 제자라며 수업을 듣고 있던 나나 똑 같다. 지금 난 자각하여 인지하고 있다면 경찰간부들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상식이 있으면 반드시 사과해야 옳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들도 잘못하면 사과한다. 경찰 간부는 사과 안 하나? 그러니 아직도 모른다.
수사권을 주면 뭣 하나 뭘 알아야 수사를 하지! 배가 고파 빵 훔친 사람만 반성해야 하나? 내가 볼 때 경찰 간부의 죄는 거의 준역모죄이고 빵을 훔친 것은 단순 절도일 뿐인데…, 관에서 일하면서 30여 년 전 권교수님 강의가 그렇구나! 맞다! 하며 깨닫게 된다. 다시 그 수업을 듣는다면 다른 관점으로 그 일본 친구와 대화도 가능 할 것 같다.
내가 왜 자꾸 공노비를 원망하는 줄 아나? 그만큼 실망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답답해서거나? 난 20여 년 전까지 공무원 수준은 다 비슷한 줄 알았다. 한 번은 대학원 동기들 모임에 갔다. 동기 한 명이 서울시 7급 공무원에 합격했다고 하자 모두들 이상한 놈 취급을 해 버려 화가 많이 났다. 더러워서 이젠 관악산 근처도 가기 싫단다.
서울대 특히 우리가 공부한 15동은 1년에 5급 공무원 합격자가 수두룩하다. 7급은 이 친구가 역대 두 번째다. 모르긴 해도 건물 한 동의 5급이 지방 몇 개 시도의 합격자 수를 합친 것 보다 많다. 물론 9급이나 7급 공무원 시험은 응시 자체가 없다. 우리가 있는 15동 한 곳에서만 년간 5급 합격자가 족히 최소 백 명을 훨씬 넘을 것이다.
그곳에선 사법고시 합격했다고 별로 자랑도 아니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고시는 패스하는 곳이다. 흔히 알고 있는 명문대도 가면 사법고시 합격자라며 명단을 붙여 놓은 것을 봤다. 하지만 내가 공부한 15동 건물에서는 사법고시 패스를 해도 화장실 휴지에서 조차 그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그냥 학생이라는 놈들은 대충 5급을 패스하고 다닌다.
5급 패스 하고도 석박사 공부를 더 하니 마니 한다.
182/240 석박사 받고 국가기관 연구소로 들어가도 5급 정도로 들어간다. 나 같은 경우도 학교에서 조교수면 4급이나 3급 정도 된다. 그러니까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 등을 합치면 년간 수백명이 5급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친구가 7급에 합격했다니까 모두들 이런 개똥 뭐 이렇게 되버렸다. 사실 난 그 나이 먹도록 이런 것을 잘 모르고 살았다.
난 9급은 모르겠지만 성대 출신 중학교 동기가 서울시 7급 공무원이 된 적이 있다. 그래서 “내 친구도 7급 공무원에 합격하여 우리가 축하해 주었다” 했더니 “형! 고마워요. 형은 이해해 주실 줄 알았어요” 했다. 그러면서 학부와 대학원에서 수질을 배워 공무원이 되는 길이 7급 밖에 없는데 왜 자기를 그렇게 대하는지 모르겠다며 원망했다.
7급에 합격 했다던 선배 1명도 같은 수질 관련 공무원이라며 억울해 했다. 내 주변에선 이 친구와 중학교 동기 1명만 7급 합격자이니 사천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전부 하급공무원이 맞다. 이 외에 내가 만난 공무원은 전부 5급 출발자이거나 선출직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도 대부분 3급이거나 2급 가끔 1급이니 선출직이라도 내 앞에서 으스대지 마라. 난 공식적으로도 1급 위에 있었고 국보법으로는 대통령급이거나 총리급이다. 건방지게…,
내가 이정도 되는 것을 아니까 전)국정원장이나 전)국회의장도 쌩가고 있다. 꼬우면 고소해라. 내가 윤석열 대통령께 부탁하는 것 봤어? 국가안보는 국민과 대통령이 따로 없다. 암튼 전에는 9급, 7급 이런 것은 잘 모르고 공무원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겪어보니 이 하급 공무원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무식하고 안하무인이다. 결국 법대로 될지는 몰라도 이정도 눈치를 줘도 공노비는 모른다. 아! 이젠 어차피 늦었나?
여차하면 사형 그것도 아주 최악의 사형을 받을 수 있는데 아직 반응이 없다. 난 그동안 공무원 하고만 소통했는데 공무원이 이런 처지에 놓여 더욱 그렇다. 이젠 어떻게 되든 나 하고는 상관 없다. 이쯤되면 그냥 알아서 살 길을 찾든지 말든지. 물론 공무원들에게 어떤 면책 특권이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게임위에 있을 때 법에 의한 면책 특권이 있었다.
이들도 그런 것인가? 지방자치제와 노조 때문에 안 될 것 같은데 왜들 이러지? 서당개 눈이라 틀린가? 내가 가져 있는 동아일보 등의 기사는 학교 컴퓨터에서 처음 접했고, 이후 학사에 문제가 있으면 항상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통령령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대통령령으로 방송 등을 통해 일반 학생들과 같은 지위를 갖도록 하겠다는 등 몇 번을 강조하셨다. 서울디지털대학교의 신고제는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조규향이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정리하면, 김대중 대통령령이 1999년경 계획됐고, 2000년 정동배는 일반사업자로 정식 등록하여 납세 등 잘 했고, 2001년 반국가단체가 결성 됐으나 계도기간 중 정동배는 동침했고, 2005(2008)년 노무현령에 따라 정동배가 분리 독립 됐고, 2009년 정동배의 법적 권리가 법원 결정 됐고, 2018년 평생교육법 누구나에 대한 국가보안법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가진 정동배가 서울디지털대학교를 절차에 따라 폐교하여 대법원 신고 마쳤고, 2018년 11월 05일 서울디지털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서울디지털대학교를 절차에 따라 해산하여 대법원 신고 마쳤다. 따라서 평생교육법 누구나에 대한 국가보안법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가진 정동배의 승인이 없는 서울디지털대학교 등은 모두 반국가단체이고, 여기서 발생한 모든 돈은 난수표이고, 정동배의 승인이 없는 학위, 학점 등은 모두 무효이다.
어쩌면 김대통령 관계자들 보다 이는 내가 더 잘 알지도 모른다. 난 한 때 민주신당 당원이여서 여의도 사람들을 많이 안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먹고 살기 바쁘지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이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제 김대중 정신인지 그 뜻이 탁해지고 있다.
183/240 국가보안법이든 국민주권이든 하나 남은 김대중 85년을 다수당이 똥으로 다룬다. 지금은 보로금을 어떻게 지급 할지를 생각 할 때다. 꼬라지들 하고는…, 대통령이 살짝 빗겨가는 법은 책임이 없고, 내가 지금 검찰이나 법원, 대법관, 재판관, 각 국가기관들과 한 배를 타고 있는데도 나를 무시 하나? 이는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것이다.
교육부총리 관인 위조는 명백한 국가보안법 위반인데 같은 법 위반을 정말 모르는가? 게임위 임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소송도 동시에 진행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유명 영어강사 오성식을 불러 압구정동에서 강의를 부탁 했다. 나에게 소개 했다는 사람이 여럿이라 추천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암튼 학부생에게 오성식의 영어를 듣게 하고 나도 같이 했다.
워낙 말도 잘하고 학생들도 좋아하여 나도 별 반응 없이 마쳤다. 오성식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영어도 훨씬 잘 한다. 하지만 오성식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도 설명이 쉽지 않다. 진원이가 중학교 때 유사한 질문을 했는데 이런 것이다.
영어를 문법이나 회화 중 어느 것을 중심으로 배울 것이냐다. 서울대 박사까지 받고 영어로 말을 못하는 것과 오성식처럼 서울대를 나오지 않아도 외국인과 줄줄줄 말을 잘 하는 것의 차이다. 그래서 난 둘다 중요하지만 학교 교육은 문법을 배우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래서 진원이도 이후 다른 의문을 품지 않고 학교 공부에 열심이다. 지난 20년 간의 소송을 돌아 보고 다시 한 번 강조해도 내 생각은 그때와 같다. 그러니까 오성식이 말하는 영어가 있다면 다른 영어가 있다. 이는 진로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기능올림픽 끝나고 알파벳도 모르면서 서울대학원 영어를 배우면서 별 것을 따지자 서울대 출신 강정화도 나보고 왜 영어를 그렇게 배우냐고 했다. 이는 내가 뭘 알고 그렇게 배운 것이 아니라 계획한 목표가 있어 그랬다. 이를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렇다. 여행가이드나 통역 등 영어권 생활을 원한다면 오성식의 영어를 배우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를 통한 이익이나 권리를 지키려면 다른 영어를 배워야 한다. 오성식은 강의 끝나고 잠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이런 영어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 또 하나는 참 어려운 부분인데 ‘~꺼’라는 영어다. 다른 말로 문법이 될 수도 있고 어휘 등 뭐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이를 종합하면 ‘꺼’라는 거다. 그렇다고 소유와는 좀 다르다.
참 풀기 어려운 부분인데 암튼 지난 소송으로 내가 확신하는 것이고 내가 이렇게 배우길 잘 한 것이다. 지금의 학교 교육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학교 선생들이 뭘 알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보면 ‘재단법인 디지털스쿨’ 즉, 지휘통솔체제를 갖추어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법인인데 이는 개나 소나 만들 수 있는 신고제 재단법인이다.
또 다른 말로 최병렬은 잘 모르겠으나 나경원은 쪽팔리는 것이 없는 인면수심이다? 암튼 등기부등본을 보고 난 이것이 인가 받은 학교인지 아닌지를 알아 내는데 적어도 몇 년이 걸렸다. 사실 이 정도의 난이도는 쉽지 않은 능력이 있어야 하나?
이는 단어의 뜻과 법률적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바로 ‘꺼’라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참으로 무식한데 말을 엄청 잘 하지만 그 단어의 뜻을 하나 하나 알고 나면 그 말이 점점 줄어든다. 여러 가지를 포함하여 난 말 많은 놈이 싫다. ‘꺼’라는 것은 결국 문서로 정리 되야 하고 그 문서가 똑 같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도 내꺼다. 삼성이 이재용 회장 혹은 주주들의 꺼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법률적 의미를 가진 문서 때문이다. 그러니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고 이를 배우는 것이 문법과 어휘 중심의 영어다. TEPS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문법이나 어휘는 단지 법만이 아니라 문학이나 학술 등 여러 가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지금 나의 주장과 다소 차이가 있다.
184/240 그러니까 학교 교육의 문법이나 어휘는 ~꺼가 아니라 언어 중심이다. 이렇게 영어를 배우면 영어 뿐만 아니라 국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 정도의 수준으로는 이런 것을 풀어가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것이 있다는 것과 그 차이에 대한 해석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권대준 교수 수업에서 60여명의 서울대 석박사와 교수님이 서로 질의 응답도 했지만 난 똑 같은 우리말로 듣고 저게 뭔 고민 거리인가를 생각 했다.
그에 따르면 영어는 대략 40개에서 많아야 8-90개 정도의 영어 문장을 달달달 완전히 암기하여 단어를 끼워 넣으면 된다. 이를 좀 비약하면 생활 영어는 당장의 이익이다. 내가 배운 기술도 대부분 여기에 해당 한다. 하지만 이런 이익의 끝에는 결국 법이 컨트롤 한다.
다시말해, 아무리 힘든 노력과 뛰어난 실력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도 법에 의한 권리가 없으면 도로묵이다. 반면 전혀 수고와 능력이 없어도 법적 권리가 있으면 소유권을 갖는다. 그러니 진짜 중요하다. 초중고 교육은 바로 이런 것을 놓치고 있다. 여러 목적이 어우러지는 교육이라며 합리화 하겠지만 실상은 선생들이 몰라서 그렇다. 암튼 결론은 같다.
바로 ~꺼라는 것을 놓고 예술도 하고 문학도 하고 취미, 노동, 관계 등을 해야 뒷탈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이것을 대부분 무시한다. 어쩜 공무원이 가장 잘 알아야 하는데 공노비들은 이를 전혀 모른다. 하급공무원 뿐만 아니라 국가직 공무원도 일부 마찬가지다. 모두 여론에 휘말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알고 보면 너무도 당연한 상식인데…, 대부분 이 글을 읽으면 ‘너무 당연 한 것 아냐?’ 하면서도 정작 그 의미나 깊이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는 그냥 읽고 이해 되거나 많이 배웠다고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하급공무원이 60만 어쩜 80만 명이 넘을 것이다.
공무원 노조 15만 명이 똘똘 뭉쳐 몇 년을 합숙해도 고위 공무원 단 한 명을 이기지 못한다. 이는 내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른다. 적어도 나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도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있다. 나머지 하급 공무원들은 항상 이도 저도 아닌 중립이다. 다른 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아니면 진짜 똑똑하여 기회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 정년 퇴임 때까지만 기회를 노리자?
내가 면사무소에서 면장실 청소를 했는데 법전이나 법 관련 프린트물이 단 한 장도 없다. 속된 말로 서울법대 화장실에도 법조항이 있어 똥 눌때 읽어 본다. 15동 1층 화장실 문에는 ‘오른쪽을 보시오’, 오른쪽을 보면, ‘왼쪽을 보시오’, 왼쪽은 ‘뒤를 돌아 보시오’, 뒤를 보면 ‘뭘봐! 임마!’라고 되어 있다. 이건 법이 아닌가? 난 서당개이니 이도 법이다.
내가 서울법대 교수님들과 똥 누며 교감한 조항인데 이는 따라 다니면 욕먹는다는 법이다. 나경원은 여자라 이런 법을 못 배웠나? 5급 합격자는 호칭을 공무원으로 하고 7급과 9급은 공노비나 공직원으로 부르고 국민연금으로 가야 국민의 혼선이 없다. 이미 옛날 공무원의 기능을 99% 상실했다. 오히려 각종 단체가 공 기능을 하니 여기에 국가는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 각종 단체에서 희생의 공이 있는 사람들을 공무원 연금으로 보내는 것이 맞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그러니까 공노비는 민간 단체의 똘마니…,
면사무소와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말이 많다고 생각한 것도 같은 의미다. 암튼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니 누가 다시 정리하든지 아니면 그냥 새겨 들어라. 국가보안법은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다시피 하면서 하나 하나 움직인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 보다 더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그냥 그렇게 된다. 그러니 이도 따지지 마라.
내가 이 정도면 서울대 교수님들은 그냥 관악산 속에서 신선처럼 사는 것이 편하다. 설명이 필요한 것을 두고 세상은 소통을 요구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소통을 하려면 우선 열린 머리가 있어야 한다. 머리가 열리려면 배워 실천하거나 상황이 만들 수도 있다.
185/240 난 후자에 속한다. 닫힌 머리를 열려면 우선 세상을 인지하는 능력이 우선이다. 이것이 우선되야 소통이 가능하다. 다른 말로 위인전 100권 정독하고 학교 교재 달달달 외우느니 지금 나의 이 글을 수십 번 읽는 것이 백배 낫다는 소리다. 괜히 내용도 없는 책 읽는다고 시간 낭비하지 마라. 그러니까 이 글이 현대판 공자왈 명자왈이다. 왈!
혹자는 이를 대충 읽고 마치 아는 척 하겠지만 장담컨대 넌 정독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니 새겨 읽어라. 간단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곤명면 주민들은 한 사람 혹은 다수의 욕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강제집행을 당했다. 이들은 이것을 나와 연결시키려는 것 같다. 물론 누군가의 전략일 수도 있고 자동으로 연결 비숫하게 보일 수도 있다.
난 자체가 국가보안법이기 때문에 이를 안다면 절대로 스스로 연결시켜서는 안된다. 이는 ‘꺼’가 아니라 ‘목숨’이기 때문이다. 하급 공무원들이 이런 것을 알란가? 이미 목숨 수백 이상이 요단강을 건넜다. 지금 공무원 노조는 한마디로 무식한 놈들이 용감한 집단이다. 난 그렇게 밖에 지보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편하게 살다가 골로 가도 왜 죽는지도 모른다.
이는 지자체가 이익을 얼마를 훔치느냐가 아니라 지자체장이라도 ‘목숨’의 문제가 된다. 왠 놈은 목숨 건 20년이 그냥 장난이 되면 안 되잖아! 성질 더러운 내가 20년을 고분고분 잘 따라 가는 것은 바로 목숨이기 때문이다. 작은 한 예로 클로버를 들 수가 있다.
내가 머문자리는 클로버를 제거 하는데 나와 민간인 혹은 하급공무원들 전부 서로 생각이 다르다. 물론 이는 한 예일 뿐이고 사실은 대부분이 다르다. 왠 쌩뚱 맞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도 새겨 읽으면 알게 된다. 유럽은 정원이 발달하여 관련 책들이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책이 전무하다. 조선의 책이라고는 정약정의 ‘자산어보’ 정도를 빼면 조선실록 밖에 없다. 그렇게 500년을 노비로 살고도 배울 것이 왕조 밖에 없는 특이한 나라다. 그러면 박지원의 북학의도 있고 등 하겠지만 나도 다 읽었다. 그러니 따지지 마라.
유럽은 왕조 외에도 전해내려 오는 책들이 많다. 이젠 우리나라도 많은 책들이 제작되니 나중에 후손들은 이런 엉터리 실록 중심의 역사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학이 아니니 생각을 바꾸고 읽어라. 아마도 김영삼, 김대중이 대통령병에 걸린 것도 이런 역사 외곡의 표상이다. 암튼 클로버는 세잎과 네잎이 있다.
나를 닮은 짧고 동글동글한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다가 우연히 네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머리를 숙여 총알이 머리 위를 날아가 목숨을 구했다고 하여 유명해진 것이 네잎 클로버다. 이는 하급 공무원이나 민간인 혹은 내가 권대준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내가 공원을 관리 할 때는 사방에 클로버를 자라게 하여 마치 행운을 찾기를 기대하는 것 같으나 난 전혀 다른 생각으로 이를 호미질이나 제초제로 죽인다.
앞에서 말했지만 유럽은 정원이나 식물, 동물 관련 전통 서적이 많다. 그래서 공원 관리를 위한 기록이 많은데 클로버는 기는 식물로 잎이 넓어 다른 식물이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기록에 따르면, 관리되는 공원이나 정원의 클로버는 일종의 암이다. 실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폴레옹도 깊은 산 속에서 일반 정원의 암으로 분류되는 클로버가 네 잎이 있어 신기하여 허리를 숙인 것이다. 단순히 잎이 네 개이기 때문이 아니란 소리다.
관리되지 않는 즉, ‘꺼’가 아닌 땅의 네잎 코로버는 행운이지만 관리되는 땅의 클로버는 암이다. 좀 더 디테일로 표현하면 공원 등 관리 되는 땅의 클로버는 암덩어리기 때문에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급속도로 퍼져 주변의 식물을 다 삼켜 버린다. 바로 이 사건이 나라법에는 암덩어리인 것과 같다. 반면 강이나 도로변이 아닌 주인이 없거나 꺼가 모한 산 속 등에서 발견 되는 네잎 클로버는 행운이다. 이는 맛도 좋고 금방 풍만해지기 때문에 토끼가 잘 먹어 토끼풀이라고도 부르며, 세잎 클로버는 동물이 맛있게 먹어 행복이라 한다.
186/240 그래서 내가 공원에서 토끼풀을 제거하면 마치 행운을 없애기라도 하는 것처럼 난리고 그곳에서 네잎을 찾기를 바라는 것처럼 랄지이다. 결국 세잎 클로버 행복도 동물만 해당된다. 그러니 난 암덩어리를 제거 할 뿐이다.
물론 워낙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 하나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른다. 창포도 그렇고 버드나무, 망초 등 전부 공노비, 민간인이 아는 것과 다르다. 같은 사건도 다들 노력 없이 ‘꺼’만 찾는다. 그렇다고 옆에서 말도 못한다. 심지어 분리 수거까지 자세히 보면 척하는 것과 다른 것이 너무 많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의 눈에 공노비는 99% 생각을 바꾸면 대충 다 맞다. 이게 뭔 소리냐 하겠지만 이것이 바로 ‘꺼’에 해당하고 더 쉽게는 공사 구분에 해당한다. 난 움직임 자체가 공이다. 그런데 공노비는 국가의 마이크, 스피크 등을 국가 차량으로 들고 다니며 민간인 행사에 설치한다. 미친! 민간인 행사에서 공무원이 마이크를 잡고 설친다.
공사 구분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공을 무시하고 사에 붙어 앞장선다. 그러면 각종 단체 활동을 하지 않는 민간인은 국가가 나서 왕따로 만드는 것이 일제 때 개명제도와 같다. 개명도 단지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란 것을 하급 공무원들이 알까? 공무원은 모든 국민을 책임지고 법을 수호해야 한다. 장애인도 범주에 포함 될 뿐이지 법이 아닌 다른 우선 순위가 주어저서는 안 된다. 장애인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훈장도 아니다.
공무원은 특정 단체의 개가 되어 일을 편하게 하는 직업이 아니다. 민간 기업도 그러면 곧 망한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게임위에서 한 번은 위원장이 “요즘은 돈 될 만한 게 없어요” 하여 내가 “전자화폐를 만들면 됩니다” 했다.
그러자 오변이 “가상화폐는 지금도 있잖아요” 해서 그런 가상화폐가 아니라 지금의 비트코인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위원장이나 오변 등이 이해를 못하겠다하여 몇 번을 설명했다. 지금의 비트코인과 같으나 운영은 한국은행에서 삼성에 독점권을 주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면 된다고 내가 세계 최초로 차관급 공식석상에서 비트코인을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미국 달러를 뛰어 넘는 화폐가 된다며 여러 차례 제안했으나 설명이 쉽지 않았다. 이런 설명도 어려우니 경찰청장이나 춘추관장이라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하자면 현직 노무현 대통령도 어쩌지 못한다. 이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정책 충돌이다. 그러니 내가 게임위에 더 있어 봐야 시간 낭비다.
싸움은 어느 한 쪽이 피가 터져야 끝난다. 이런 상식을 두고 좋은 방향만 생각하지 마라. 20년간 피터진 놈은 신병인가? 좋도 모르면서 싸움을 논하지 마라. 어쩌다 나라가 전부 성직자 밖에 없나? 차라리 머리를 깍거나 신부가 되라. 그럴 용기도 없는 놈들이 좋은 말만 입에 달고 산다. 조선도 이래서 망했고 이는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임진왜란도 그렇고 625도 마찬가지다. 당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안 것이 아니라 그냥 느낌이다. 이승원 팀장이 찾아와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기술고시 출신인데 종종 위원장과 부딪치더니 결국 최근에 사임했다. 동병상련이랄까?
위원회에서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나마저 몰라라하면 좀 불상하다. 그런데 위원회만 놓고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난 그런 일에 관심 자체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피폐해져 있다. 와중에 계속 전화가 왔고 강남의 싸룸롱에 가잔다. 솔직히 당시는 싸룸롱 가서 노는 것 자체가 싫다. 물론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싸룸롱 부엌데기라도 했을 것이다.
계속 거부했더니 밤 12시가 넘어 전화로 나오라며 성화다. 아들이 어려 그냥 두고 나가기는 무리여서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 데리고 갔다. 내가 나간 사이 아들이 깨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또 하나는 싸룸롱 갈 기분도 아니다.
187/240 성수대교 아래에 검은색 정장들이 쭉 서 있고, 이승원 팀장이 인사를 했다. “왠 깍두기들입니까?”, “형님” 하며 90도 인사를 했다. “저희들 깍두기 아닙니다.”, “지금 밤 12시가 넘었는데 이렇게 컴컴한 다리 밑에 검은 양복들이 쭉 서 있으면 깍두기 아닙니까?”,
“아닙니다. 위원님을 만나기 어려워 이승원 팀장이 만난다기에 따라왔습니다” 라며 손짓을 하자 깍두기들이 전부 사라지고 라득연 사장과 그 직원만 남았다.
맥주를 한 잔 하며 뭐라 했는데 이런 말들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장이 있는게 불편하다고 한 후, 직원과 따로 장소를 옮겨 편하게 한 잔 했다. 나도 힘들었고 밤낮이 없었던 때라 아침까지 소주 여러 병을 마셨다. 뭔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자기는 잘 해 보려 했는데 위원장이 자기와 안 맞다는 등이다.
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고 이승원 팀장의 이야기만 들어 주었다. 당시 내 처지는 비밀이니 안보니 이런 것이 아니라 너무 말도 안돼 설명이 불가능 했다. 대충 마무리하고 새벽이 되어 나오는데 라득연 사장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라득연 이라는 이름도 잊고 있었는데 가수 임창정 사건 방송을 보고 기억났다. “아직 안 갔습니까?”,
“아이고 어린 아드님도 이렇게 늦게까지 데리고 있는데 저희가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러면서 치킨이라며 작은 박스를 주었다. 내가 비틀거리며 받지 못하자 아들에게 주었다. ”나중에 배고프면 먹어“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는데 벌써 오후가 됐다.
김팀장이 왔다. ”교수님 아직 주무십니까?“, ”아닙니다. 어제 술을 좀 마셔서…, 우리 해장이나 하러 갈래요?” 그렇게 양평으로 가서 붕어 매운탕을 시켜 먹으면서 또 술을 몇 잔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벌써 밤이 늦어 곧 잠이 들었다. 이런 일이 주야가 없는 와중에 잠에서 깨어나니 출출했다. 아들이 걱정되어 식사를 하려다가 문득 치킨이 생각났다.
먹으려고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 아니라 오래되어 버리려고 꺼냈다. 그런데 그것이 돈까스로 둔갑 됐는데 위에 캐찹 같은 것이 엉망으로 되어 있어 조심히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아래에 현금이 있었다. 암튼 돈까스면 어떻고 치킨이면 또 어떻단 말인가?
언론은 이도 장난 치는게 재미난 모양이다. 현금 위에 캐찹과 하얀 재료들이 섞여 있어 일부는 물로 씻고, 깨끗한 것은 따로 두고, 일부는 휴지로 딲아 여기저기 두었다. 사실 이것이 얼마든 별 관심도 없다. 공직자라해서 내가 여기에 목메는 것도 아니고 난 지금 내 문제 해결이 가장 우선이기 때문에 대략 300만원 정도 되는 돈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돌이켜 보면, 이도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몰래 들어와 돈이든 돈까스로 바꾼 것 같다.
지금 집에는 돈이 여기 저기서 월 수천씩 나가고 있는데 이게 무슨 대수겠는가? 그리고 게임위 심사가 있어 갔더니 일부 위원들 하는 말이 고의로 나에게 돈을 전달 한 것 같은 늬앙스를 비쳤다. 내가 돈을 발견 하자마자 이런 말이 들려 무슨 전략 같아 더러운 돈 있으니 밥이나 술을 마시든 알아서 하라 했다. 물론 얌전하고 정중히 말했다.
사람은 참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게 뇌물이든 정치든 이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난 당장 사람을 죽여도 눈하나 깜빡 안 할 처진데…, 단지 게임위 활동 중 웃고 있을 뿐이다. 그럼 그런 사람들 앞에서 신세 한탄하며 항상 얼굴에 인상을 쓰고 다닐까? 그랬더니 위원장이 보도자료를 이미 만들어 놓고 기자들 앞에서 이를 읽어라 했다.
그게 뭐가 됐던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읽고 나니 좀 이상한 내용이 있어서 이는 내 의견과 다를 수 있다고 하고 권유로 사임했다. 그게 게임위 할배라 해도 나에게 그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또 검찰 등에 가서 조사 받았지만 담당검사 역시 별 거지 같은 경우가 다 있냐는 식이고 나 또한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 직원은 이혼하고 혼자 힘들어 하는 사람 싸룸롱 가자 해도 안 가서 그 돈을 준건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한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88/240
그렇게 아무런 미련도 없이 게임위를 떠났다. 다시 오라고 해도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지금 내가 처한 일을 놓고 보면 그것은 나에게 똥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물을 줬지만 아랫 사람들은 장난만 친다. 그럼 선물이 아니다.
차라리 사건을 빨리 끝내 줄 테니 호트스빠에서 100살 할매들 지보를 빨아라 하면 똥 구멍까지 핥아 주며 쪽쪽 빨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 분야서도 세계에서 할매 지보 제일 잘 빠는 최고의 장인이 됐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와 국가기관 등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하급공무원만 모르니 당사자만 더욱 힘들다.
한 번은 행사에 일당 5-6만원을 준다며 오란다. 행정기관이 주는 돈이라 받아야 해서 갔더니 화장실 청소를 하라는데 민간인들은 이를 알고 축제장 화장실에 노친네들이 들어가 더러운 똥을 변기며 바닥, 문, 벽면에 떡칠을 해놨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똥을 싸는지 모르겠다. 보기만 해도 한 번 토하고 청소 했다. 하루에 몇 번을 토했는지 모른다.
이러니 할매 지보 빠는게 훨씬 낫다. 그렇게 몇 만원 받아 시멘트 사서 안전가옥 배원을 시작했다. 그러니 좋도 모르는 놈들이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단순히 지은 안전가옥이 아니다. 그렇게 20년을 공들인 안전가옥 배원은 진짜 공이다. 개끼새들아! 몇 일 가서 전기고문 당하는 것과 20년간 이 생활이 비교가 되냐? 공무원이 좋은 직장이 되면 안되는 이유다.
말단 9급까지 전부 선출직 흉내만 낸다. 공무원의 기본은 고졸 9급, 전문대졸 8급, 대졸 7급, 석사 6급, 박사 5급이다. 그런데 대졸도 9급이 되면서 전부 대감놀이다. 대학원을 나와 9급이면 고졸 공무원이 맞다. 공무를 알려면 일주일에 하루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나개리 봇짐지고, 자전거에 한 짐을 싣고 다니면 수상히 여겨 신고하거나 복지 등의 행정 제도를 검토하는 것이 공무원인데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니 15년을 그렇게 다녀도 전혀 모른다. 이후 행정기관에서 일하니 마치 자기들이 엄청 선심 쓰는 줄 안다. 공무는 어차피 나중에 서류 조작하면 된다. 그러니 부총리 관인 위조 쯤은 공무원에게 우서운 일이다.
따라서 공무원이 일제를 불러 들이고 빨갱이를 끌어 들인 게 맞다. 국가가 일국의 부총리 관인을 위조하여 20년이 지났어도 최일선 공무원의 무지를 덮어 주는데만 총력이다. 그러니 화가 안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지방직 말단 공무원까지 자가용을 즐기고 공(公)은 대부분 민간에 이양되어 있으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는 것이 현실이다.
차라리 국가직 공무원만 두고 지방직 공무원은 선별적으로 민간 이양 하는 것이 적어도 국가와 국민에게 이롭다. 공노비 스스로도 민간인 밑에서 개처럼 짓는 것을 더 좋아 하더라. 멍! 시험치고, 선거운동 해서 공무원 됐으니 권력 누리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책임을 져라. 누리면서 책임도 안지면 이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그리고 없었던 개차반 아니냐?
민간인, 지자체, 하급공무원과 싸워 내가 최종 승자가 됐이니 이제 모두 법대로 집행하라. 이게 바로 민간 이양이다. 국가안보는 선출직이라고 별도의 권리가 있을 것도 없다. 안보 문제는 행정의 모든 지원책을 총 동원하여 민간인 몰래 도와주는 것이 공무다.
그곳에서 나눌 이익은 법적 안정성 밖에 없다. 난 계속 감시가 붙기 때문에 자동으로 말 9마리쯤 새겨진 마패를 들고 다니는 암행어사다. 그런데 내 앞에서 선거 운운하며 권리를 주장해! 궁금하면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 가라. 신병들! 민간인만 나랏돈 귀한 줄 안다.
국가라는 것이 개좋이다. 그렇게 무능한 집단이 대한민국인가? 대기업의 버려진 통시 만도 못한 것이 대한민국 정부야? 개십끼새들아! 공무원은 대기업 화장실 잡부를 보고도 넙죽 엎드려 절해라. 쥐끼새만도 못한 놈들! 나의 지난 20년을 적날하게 표현하면 이 글 한 페이지 읽을 때 마다 토할 것이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89/240
난 개좋이지만 그래도 배운 놈이다. 그래서 가능한 자제하고 있으니 항상 신중을 다 해라. 난 지난 20년간 먹는 것도 편하게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온갖 약을 타서 한 때는 설사를 달고 살았다. 집이나 식당 등에서도 음식에 약을 타는데, 차라리 죽이는 것도 아니고 항상 배를 욺켜지고 똥을 싸야했다. 몸무게가 60kg 넘는데 40kg으로 줄었다.
몸무게가 대략 22kg 정도가 빠졌다. 몰골이 어떻겠냐? 두려워 집에 있는 음식도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세균에 곰팡이, 약, 각종 파(특히 마이크로파), 벌레 심지어 딸이딸 치는 시간과 장소, 횟수까지 정해져 있다. 내가 조선의 왕이냐?
조선의 왕은 그래도 앞에서 사람들이 굽신거리기라도 하며 절제를 요구했지, 난 그 못난 신병들 조차 앞에서 거들먹거리더라. 국가가 계획 한 일에 내가 그 책임이 있다고 이렇게 살았는데 그깟 자리 하나 차지 했다고 무식한 발상을 함부로 하지마라. 내 나이 60이 다 됐다. 100살, 200살을 산다고 이 기억들이 사라지겠느냐? 세상 편하게 살지 마라.
책임 있는 자들이 꼼짝을 안해 책임져야 한다면 난 국가의 책임이 그냥 넘어와 책임지고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라. 그 어떤 결과든 예상을 뛰어 넘을 것이다. 절대로 좋게만 풀 수가 없다. 이는 김대중의 뜻이고 곧 나의 뜻이다. 경찰도 능력이 없으면 수사권을 거부해야 한다. 나의 지난 20년은 너무도 할 말이 많지만 더러워 글로 남기지도 못한다.
내가 국가 똥으로 배원을 완성했다고 하니 불법 시설이나 국가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다가 집을 지은 것으로만 알겠지만 이는 공무원들이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지만 깨끗한 줄 착각 한다. 난 진짜 지난 20년간 똥 속에서 살았다. 가끔은 입에 밥이 들어가는지 똥이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벌씨놈들! 암튼 욕을 처 먹어야 현실을 보는 새십들이 공직자다.
난 이럴 것이다가 아니라 진짜 이렇다. 공노비들이 위법한 것은 사실이니 반드시 처벌해라. 대통령이 공노비 몇 치우는 것은 개, 돼지 우리에 처 넣는 것과 똑 같다.
박회장이 소개한 완순형이 대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오란다. 대선을 돕다보면 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제안이다. 일리가 있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난 정동영 후보, 윤호중 의원은 손학규 후보, 정봉주 의원은 이해찬 후보 대표로 경선을 치렀다. 세명이 경선룰로 만났는데 정봉주 의원의 입담이 대단했다.
아마 당에서도 이를 지켜보며 나의 가능성을 본 것 같다. 그런데 대충 정봉주 80, 윤호중 18, 정동배 2점 정도로 끝났다. 난 역시 정치가 안 맞다. 정봉주 의원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고 윤호중 의원은 내가 불상했는지 가끔 도와주려 했으나 정봉주 의원의 압도적 승리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 일로 학교 문제는 물 건너 가고 BBK가 대선용으로 확정된 것 같다. 난 워낙 못했지만 최종적으로 정동영 후보가 경선에서 이겨 어부지리로 대선 캠프의 2인자 정도 됐다. 난 대선캠프, 당사, 별관 등 민주신당 거의 모든 건물에서 일했다.
아마도 노무현, 문제인 전)대통령들 보다 더 민주신당 구석구석을 돌며 일 했을 것이다. 난 한 일도 별로 없는데 정동영 후보 후광으로 졸지에 올라서 버렸다. 정동영 후보의 후광이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회의를 진행 할 때는 박영선 의원이 맥심 커피도 타 주었다.
정청례 의원은 약간 막가파지만 살짝 내 눈치를 보며 자기는 오른팔 난 왼팔이라며 위치를 확실히 했다. 정동영 후보에게는 매우 죄스러운 일이나 난 정동영 후보의 당선 보다는 지금 내가 처한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 난 어릴 때 집을 두 번 나갔고, G전자에서는 회사를 두 번 나갔다. 그리고 민주신당에서는 한 번 쫓겨나고 한 번 나갔다.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도 쫓겨났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쫓겨 날 일만 남았나? 민주신당에 입당 하려면 제안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미 늦었지만 제안서를 제출 했다.
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190/240
그래서 캐치프레이즈를 ‘함께’ 영어로 ‘WITH’를 할 것을 제안했다. 주로 명사나 어쩌다 형용사를 쓰는 것은 잘 안다. 그렇다고 의무는 아니니 우리는 전치사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정도 먹혔다. 민주신당 지도부에서 나의 제안서를 발표했다. 박영선 의원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터졌다. 노사모 짱이 이미 ‘DIY’로 정해 놓고 활동 중인데 지금 바꾸자는 것이냐며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난 제안서를 낼 때 이미 알고 ‘DIY’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립의 뜻이겠지만 또 다른 의미로 ‘니가 알아서 해라’도 될 수 있다. 그러니 바꾸자고 했다. 이게 위에는 먹혔는데 노사모짱에게는 일종의 쿠데타였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노사모짱이 상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 봤다. 국장이 “둘이서 알아서 하게” 하며 회의실에 밀어 넣었다.
그동안 자기들이 준비한게 있는데 이제와서 바꾸냐며 입에 침을 튀기며 나를 잡아 먹으려 했다. “내 제안이 마음에 안 들면 DIY로 갑시다.” 하자 더욱 화를 냈다. 당시는 이해를 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 친구를 알 것도 같다. 다른 제안으로 들쑤셔 놨으면 마무리를 해야지 내가 쉽게 포기하는게 더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맞지? 그렇게 난 당에서 쫒겨났다.
노사모짱은 유세에서 춤도 잘 추고 소리도 고래고래 잘 질러 대는데 난 그것을 못한다. 둘 중 하나가 나가야 된다. 난 기꺼이 받아 들였다. 내가 매우 코너에 몰린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춤추며 동요하는 재주가 없으니 내가 나가는 것이 정동영 후보 한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내가 데려간 친구들을 데리고 짐을 챙겨 나왔다.
노사모짱은 잘 생긴 외모에 키도 커고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춘다. 반면 난 그 반대이니 빨리 나가는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아마 정동영 후보도 이 학교 사건을 해결하려 유심히 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래서 노인 비하 발언하고 자폭한 것 같다.
정동영 후보를 처음 만났을 때 정후보는 나 보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했으나 난 이렇게 흙탕물만 튀기고 떠났다. 경선 끝날 때쯤인가 캠프 책임자로 계신 분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가라 해서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 국장이 화가 단단히 났다. “자네 지금 뭣하나 곧 선거인데…,” 아니, 나 짤린 것 아닌가?
난 상황 파악이 안 됐지만 완순형은 그 인상이 무서워 그냥 다시 나갔다. 정청례 의원은 자기가 무섭지 않냐고 했지만 정청례는 외모만 그렇지 순한 사람이다. 정의원님! 무서운 사람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반면 완순형은 인상도 만만치 않지만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다시 출근하여 대선기획단에 들었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기획단이 꾸려졌다.
현직 청와대 직원 55명과 정당인 5명 이렇게 60명이다. 아마도 말 안 듣는 정동배를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인 것 같다. 사무실에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나가 봤더니 돼지 저금통 등으로 유명한 짱이 칼을 들고 책상 위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 친구 주변에 모여있던 청와대 직원들은 지금쯤이면 대부분 대통령실 1급 공무원들일 것이다. 난 청와대 공무원이라고 좋은 면만 보질 않는다. 대통령도 못하면 아니고 지방의 면사무소 말단도 잘하면 좋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기겠어? 이 끼새들 다 죽여 버리겠어“ 뭐 비슷한 말 같았으나 사실 이는 나의 추론이다. 당시 난 사무실에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친구는 한 번 칼을 뽑으면 반드시 누군가를 찔러야 끝난다. 전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 사람을 찌르면 아래 사람들이 자백하고 경찰, 검찰의 성과물이 될 뿐이지 이 사람은 처벌 받지 않는다. 워낙 칼 솜씨가 뛰어나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이 친구는 민주신당에 목숨을 거는 사람 같다.
191/240 따라서 사람을 찔러도 아무렇지 않다. 청와대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맞은 편에는 모르는 사람 두 명이 있었는데, 청와대 직원 중 한 명을 찌르면 이들이 자백하고 처벌 받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때 내가 책상 위로 뛰어 올라 그 사람 앞에 섰다.
그는 예상치 못한 내가 갑자기 올라 가자 매우 당황해 했다. 이쯤되면 민주신당 내에서는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내가 책상 위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하자 사시미를 휙휙 휘둘렀다. 이에 맞추어 내 심장을 그의 칼 끝에 가져 갔다. 그러자 이 친구는 나의 허벅지와 배 쪽으로 눈을 내리며 칼을 약간 낮췄다.
몸을 앞으로 돌리며 다시 칼 끝에 내 심장을 가져가자 이 친구 눈동자가 확 풀려 버렸다. 난 많은 눈동자를 봐 왔지만 이런 눈동자는 또 처음이다. 이 친구는 한 번 칼을 뽑으면 반드시 사람을 찔러야 하는데 내가 나의 심장을 가져 갔다.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난 어차피 몰빵으로 죽고 싶었는데 민주신당 내에서 죽을 기회를 찾았다.
사실 사건 초기 죽으려는 시도도 몇 번 했다. 아들이 생각나 못한 것도 있겠지만 자살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마침 이 친구가 나에게 기회를 준 것 뿐이다. 시퍼런 사시미 앞에서 난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그저 빨리 깨끗하게 심장을 찔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친구의 동공이 완전히 풀리더니 칼을 밑으로 내리자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며 나를 바라 봤다. 옆의 똘마니로 보이는 친구들이 상황 파악이 됐는지 그를 데리고 급하게 사라졌다. 뒤에 들은 이야긴데 그가 칼을 뽑아 사람을 찌르지 않은 것이 내가 처음이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절대로 칼을 잡지 않았다고 했다.
나에겐 참으로 실망스러운 날이다. 내가 고군분투 할 때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 대부분을 정동배 생각으로 편할 날이 없었을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여러 기관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고 그들은 중요한 많은 말을 했지만 난 무슨 말인지 몰랐다.
사실 여의도 가기 전까지 법이라고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여의도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대부분 유명인이지만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 듣겠다. 난 법은 고사하고 국어 자체도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 정주영 회장이 신문대학을 나왔다면 난 세상대학을 나왔다. 신문, 잡지, 업무, 사람 등을 통해 배운 것이 전부라 봐도 된다.
다만, 어쩌다 서울대에서 난생 처음 풀타임으로 공부하여 수석 한 번 해 봤다. 2001년 조규향을 통해 처음 법을 접했는데 아마도 이는 김대중 대통령 뜻인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교육법과 기능장려법으로 권리를 찾는 법을 가르치라고 지시했는데 조규향은 엉뚱한 것으로 흉내만 냈다. 내가 지금 국가보안법으로 풀어 가는 것은 전부 여의도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이 까분다. 꼬라지들 하고는…, 지들이 가르쳐 놓고…, 왜? 내가 배은망덕했나?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너희들이 가르친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 주랴?
선거 전에 당의 핵심 맴버들이 모여 여의도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튼 정권 말이고 선거 후는 알 수 없는 시점에 집권 여당 서열 텐이 모여 결과적으로 최후의 만찬을 했다.
대선은 역대 가장 큰 표차로 졌다. 정동영 후보나 나나 서로 도움도 되지 못하고 대선은 끝났다. 오히려 내 사건의 흐름만 깨졌다. 국장의 전화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총선이다. 총선을 치르면서 국장과 많이 친해졌다. 주변 사람 말로는 국장이 웃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다. 그 인상에 내가 웃음을 심어놨다.
사모님이 이런 사실을 알란가? 와중에 국장이 나를 불렀다. “그 때 그 학교 말이야 우리가 대선 때 검토 했잖아. 학교가 아닌 것 같아. 비례대표 1번이 그런 것을 잘 아니 등기부 등본을 한 번 보여줘 봐“ 무슨 말인지 몰라 등본을 들고 비례대표에게 보여 주었다.
192/240 비례대표가 한참을 읽더니 ”여기 학교 아냐“ 했다. ”무슨 말입니까? 어디가 아니란 말입니까?“ 하자 아무 말도 못했다. 이 사람은 누군가 시켜서 막무가내로 아니라는 것이지 등본 해석을 못했다. 무조건 아니란다. 하지만 학교가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바로 이런 것이 ‘꺼’라는 거다. 영어가 아니라 쉬운 한글이다.
총선이 눈앞인데 몇 일 출근을 하지 못했다. 등기부 등본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지만 분명 뭔가 있다는 심정이 확 다가왔다. 사실 이런 소리는 워낙 많이 들었다. 2001년 초기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유사한 말을 들었다. “출석은 어떻게 하나? 졸업 후 대학원은 갈 수 있나? 정식 학교인가? 수업은 어떻게 듣나?
교육부 인가는 났나?” 하지만 이번은 분명 뭔가 느낌이 확 달랐다. 돌이켜 보면, 내가 쫒겨나기 전에 서동준 선배를 만났는데 학교가 아니란 말을 했다. 그래서 난 단호하게 동아대 어쩌구 등 아는 것을 말하며 학교가 맞다고 일축했다. 이후도 정통부 동아리 지원사업 회의를 마치고 오면서 과대가 차에서 유사한 말을 하기에 똑 같이 대응했다.
위의 두 번은 학교가 맞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 단숨에 무시해 버렸지만 이번에는 집권 여당에서 검토하여 아니란다. 하지만 여전히 왜 무엇이 아닌지 알지 못했다. 이틀 정도 잠만 잔 것 같다. 몇일 후 아침이 되자 완순형 전화가 왔다. “이봐 대변인이 몇 일째 출근을 안 하면 어떻게 해! 당대표가 찾고 있으니 빨리 나오게”, “저 관두면 안되겠습니까?”
진짜 쪽팔려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여의도 뿐만 아니라 집 밖을 나가고 싶지가 않다. 완순형이 나 만나고 이번이 가장 잘 한 일이다. 완강하게 나오라고 하지 않았으면 몇 일이고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다시 출근하여 교육부에 대변인 명으로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는 공문을 통해 정식 인가한 학교가 맞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교육부에서 공문으로 인가 했다고 하니 학교는 맞는데 등본은 아니란다. 여의도에서 생활하며 대한민국 기자란 기자의 모든 메일을 다 확보 했다. 기자들에게 알리려 해도 그 등본이 어떻게 학교가 아닌지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런 기분으로 겨우 총선을 치르고 이후는 더 이상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다. 진짜 하늘이 노랗다. ‘꺼’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총선 막바지 쯤 언젠가 궁금하여 한양대, 고려대, 경희대 등 십 수개의 대학 등기부 등본을 떼어 비교 해 봤다. 아! 뭔가 분명히 이상하다. 아는 기자들과 연락하며 하나씩 알아 가는데 ‘누구나’, ‘전국민’ 등의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교육부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 그동안 알고 지냈던 기자가 교육부를 찾아가 사실을 확인 후 전화를 주었다.
“교수님! 인가서라고 압니까?”, “그게 뭔데요?”, “대학을 인가하면 인가서라고 있는데 그 인가서가 교육부 캐비닛에 있습니다.” 그럼 학교가 맞다는 뜻인가? 여기서 잠깐! 서울대 교수 중에 서울대 인가서가 교육부 캐비닛에 있는 것 아는 사람 있습니까? 암튼 당시는 온탕과 냉탕이 밥 먹는 시간과 같다. 그런데 다른 대학들의 등기부등본은 대부분 간단했다.
‘경희학원을 운영한다’ 이런 정도로 간단한 반면 서울디지털대학교는 매우 길다. 뭔가 말이 많고 난 말 많은 것이 싫다. 그렇다고 내가 알 수 있는 것도 없다. 대법원 등에는 계속 재심을 신청 중이었는데 알 수는 없지만 ‘누구나’ 등 학교가 아니란 주장으로 재심을 계속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억 할 수 없지만 뭔가 대법원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생교육법, 사립학교법, 고등교육법 등 관계 법률을 다시 다운 받아 하나씩 검토했다. 아! 이는 법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새벽 3-4시가 넘었지만 급하게 전화로 “박회장님! 뭐가 문제인지 알았습니다. 평생교육법 제1조에 정규교육 과정은 평생교육법에 설치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등본상에는 누구나, 일반인으로 되어 있어 학생을 특정하지 않았고, 모법은 처음부터 정규교육이 들어 올 수가 없어요.”
193/240 꼼짝도 못하면서 월 수천이 나간지가 벌써 몇 년째다. 그러니 늦은 밤이나 새벽이라고 잠이 오겠는가? 담당 검사, 판사, 공무원, 지인 심지어 가족이라고 이를 이해하려는 시늉이나 하겠는가? 새벽에 전화하여 그 때까지 알아낸 것을 자랑하며 말했다. 이도 헌법재판소 결정이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대통령령 외에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제는 반대로 충격이 아니라 학교가 아니란 것을 밝히는 것에 재미가 붙었다. 분명히 법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아 냈다. 그리고 2시간 후 시골 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얼마 전 명절에 만났을 때도 멀쩡 했고, 서울도 다녀 가셨다. 우리 집은 암으로 고생한 사람이 없는데 갑자기 암으로 돌아 가셨다. 법이 잘못되면 부모님도 살해한다?
확실한 것은 법이 잘못된 것을 알자 2시간 만에 어머님이 돌아 가셨다. 당장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분명히 진주의료원에서 장난 친 것이다. 이 사건이 끝나면 진주의료원을 조사 하려고 했다. 우선 담당 주치의에게 사람을 붙여 조사한 후 그 기록을 검토하면 뭔가 단서가 있을 것이라 확신 했다. 난 100% 살해로 본다. 대구시가 전부 공범인가?
그런데 홍준표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하여 모든 증거를 인멸 했다. 그 전의 대구시장은 서울디지털대학교 법학부 권영진 교수로 이들이 공모하여 지금 대구에서 아들을 볼모로 잡아 목숨 값 하라며 공갈 협박이다. 학교가 아닌 것은 알겠고, 특이하게 젊고 예쁜 여성분들은 같이 살자고 난리다. 뭔가 많이 이상하다. 난 대구 핵심 운동권도 많이 만났다.
이해가 가나? 도무지 감당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일단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건을 좀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천으로 내려 갔다. 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여야 최고 꼭대기까지 올라 갔었다. 정치를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난 내가 정치 할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이런 글은 잘 쓴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도 임기 끝날 때쯤, 우리나라 정치나 법을 조금 이해 할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 되기 전에 정치를 안 하기는 잘 했다. 그렇다고 정치가 나쁘거나 잘못한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어려울 뿐이고 어쩌면 이것이 맞을 수도 있다. 이는 복잡하니 넘어 가자. 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부터 대구, 목포, 광주, 경남 등 전국의 주요 운동권을 다 만났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술자리에 가면 그 지역 주요 핵심 운동권이 다 모여 있다. 이들은 대학 졸업장만 있지 운동권 생활로 학력은 고졸 수준이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기능훈련 한 것과 비슷하다. 이후 난 공부를 했지만 이들은 앉아서 돈만 챙겼다. 문제인을 포함한 운동권은 김대중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방패로 삼고 학벌에 목메는 사람들을 이용해 배만 불렸다. 이 사건이 ‘펑’ 터지면 이들의 배 터지는 소리다. 동배 아님!
교육으로 보면 우리나라 인구 절반 이상이 실업계 출신이다. 이들의 대표가 기능대회에 출전 하는데 이들의 꿈은 나다. 난 국가대표에 서울대학원 출신이다. 그러니 기술을 배우는 많은 사람들 당장의 목표가 여기에 있다. 한 번은 서울기계공고에서 대회 심사를 하고 있는데 내 소속이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로 되어 있다. 아마도 이력서를 보고 이렇게 적은 것 같다. 중간에 보조하는 학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너도 기능훈련하니?”,
“예, 저도 꼭 국가대표가 될 것입니다.”, “그럼 국가대표 끝나면 뭘 할건데?” 그러자 이 친구는 칠판의 내 소속과 심사위원 명찰을 보더니 마치 너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우리 선배님 중에도 국가대표 끝나고 서울대학원에 가신 분이 있습니다. 저도 꼭 그렇게 할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내 모르는 선생님은 별로 없다.
그러니 학생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래 나 말고도 선배 중에 서울대학원 간 사람이 또 있어?” 하고 묻자 이 학생은 순간 눈동자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니 괜찮아, 난 그런 사람이 나 밖에 없는 줄 알았거든”
194/240 이 학생은 잠시 아무 말도 안 하더니 그냥 밖으로 뛰어 나가 버렸다. 그 학생이 자랑하는 선배가 바로 나란 것을 몰랐다. 나중에 선생님인가 누가 와서 하는 말이 그 학생이 나를 보고 떨려서 더 이상 보조일을 못 하겠다더라. 다른 사람은 내가 학생을 혼냈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니 우리나라 기술자들에게 내가 얼마나 큰 꿈이겠는가?
아마 기술자들은 삼성전자 사장을 보고도 그렇게 떨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서울미대를 간 구승희 선배도 있다. 구승희 선배도 부산기공에서 미술도장을 하여 G전자를 거쳐 국가대표로 은메달을 따고 서울대학을 들어가 나와 비슷한 길을 간 사람이다. 또 미술학원도 운영 했다. 하지만 기능대회 심사는 나 만큼 많이 참석 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G전자 연구소에서 12년 이상 근무 했고 동료 연구원들은 대부분 형들이지만 퇴사 후 대학 교수나 디자인전문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 분야에서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게임은 NC, 넥슨, 넷마블 등 많은 기업인과 언론 기자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게임위 초대 위원까지 지냈으니 논할 필요가 없다.
환경은 국내 최고의 대학원을 나왔으니 두 말 하면 잔소리고 문화, 정보, 교육, 예술, 전통 등 많은 분야에 정점을 찍었으니 정치를 하기에 가장 적임자처럼 보이지만 난 정치에는 잼뱅이다. 박원홍 의원도 노동위원회, 환경, 정보 등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여의도에 있으면서 많은 국회의원도 만나고 그 밑에서 일하는 여러 보좌관들도 만났다.
솔직한 표현을 빌자면 지금 이 나라 정치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워메! 저 국민들 들고 일어나는 것 좀 보소. 물론 국민적 시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내가 경험한 정치는 옛날 조상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의 전략은 알 수 없으나 대충 내가 접한 경험을 토대로 보면 대한민국은 100년이나 150년 후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그렇다고 지속적인 승승장구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끝 없는 추락과 반전이 이어지겠지만 암튼 조선을 닮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언젠가 미국을 이끌지도 모른다. 그만큼 대한민국 정치는 대단하다. 이는 내가 정치에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정치 할 생각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데 내가 뭔 아부를 하겠는가? 대한민국 최고의 중립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치를 보니 그렇다는 소리다. 만약 누군가 뉴스를 보고 정치를 안주 삼는다면 그 사람은 정치를 모른다.
적어도 그런 사람이 정치를 논할 만큼 대한민국 정치가 허접 하지는 않다. 뭐라 설명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 나라 정치는 프로다. 지금 정치에 불만이 있다면 이 불만이 20년, 50년 100년 후에도 그대로 일지를 생각하면 이 나라의 정치가 조금 보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가? 다만 정치와 정치인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정치를 잘 하니 무조건 순종하라는 소리도 아니다. 잘못된 정치나 정치인과 싸우는 것도 정치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정치는 큰 정치고 이들과 싸우는 것은 작은 정치다. 난 작은 정치만 한다. 내 문제는 아주 작은 정치고 정치인은 주로 큰 정치를 한다. 이는 내 문제와 결부시킬 것이 전혀 없다. 뭐 일부 결합되어 있을 수도 있고…,
머리 나쁘다는 소리 듣기 싫으면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마라. 내가 조금 똑똑한 것이 있다면 정치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년 전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이 정치에 나서면 토사구팽 당한다. 이는 준비되지 않은 자가 설쳐서 그런 것 뿐이다.
그만큼 정치는 복잡하다. IMF가 왔다고 정치를 잘못한 것이 아니란 소리한다. 정치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묶어 반전이 계속되는 드라마와 같다. 따라서 각 국회의원이 반전을 쓰면 그 반전들이 모여 또 반전을 쓰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님께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신 것은 적어도 이 사건에서 당신은 백옥보다 희고 깨끗하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195 지금 대한민국에 국가보안법 위반은 이것 밖에 없다. 또한 건국이래 가장 큰 사건이다. 윤석열 대통령님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난수표를 받았거나 국가 예산 수십조를 나누어 먹는 운동권 끄나풀일 가능성이 높다. 뭐끼지 않았다면 촛불을 들거나 성낼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군인 중에는 그래도 훌륭한 분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각 사관학교와 각 군에도 글이 올라가니 이 글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진짜 충이 있는지 보면 된다.
모든 절차를 거쳤으니 곧 언론에도 공개 할 것이다. 2007년경 가끔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학교가 언론사 어디에 광고비로 얼마가 나갔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그러니 언론이 윤대통령님을 비방하면 대부분 난수표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 대통령님께서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비상계엄을 선포하시겠나?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국민은 국민이 할 일만 하면 된다.
난 나의 길을 간다. 여의도에 출근했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캠프 특위위원장이다. 정동영 후보 캠프의 2번째 쯤 위치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국장이 내 밑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나에게는 하늘이다. 국장은 인상이 카리스마가 매우 강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준훅이 든다. 하지만 난 모든 것을 잃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국장한테 덤벼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눈치를 보던 국장이 이 사건과 BBK를 대선용으로 법무팀에 맡겼다. 대선 캠프는 보험회사처럼 넓은 공간에 책상만 쫙 깔려 있고 각자 전화를 걸거나 사람을 만나는 구조다. 가끔은 시장통처럼 왁자지끌 한다.
오래되어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나 그분과 나 두 명만 사무실이 별도로 있고 그 외는 작은 회의실 몇 개 있다. 국장이 오더니 “정교수 나 좀 보세” 그렇게 회의실이 아닌 캠프 현장의 한 쪽 자리에 마주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BBK로 가기로 했네”, “그럼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겠내요.” 한동안 말이 없던 국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일의 끝에 김대중 대통령이 있을 수 있네.”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관여 됐다는 겁니까?”, “관여 됐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김대중 대통령이 죽기 전에는 힘들겠네”, 난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당시는 내가 노총리의 관인을 위조했다는 누명이고 같은 사문서의 최종결정권자인 노총리 역시 당신이 직접 했다고 하셨다.
당신이 직접 증언 하겠다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어떤 시스템을 만들었단 말인가? 원래 표정이 없는 사람이라 장난하나 생각도 했지만 국장은 장난칠 사람이 아니다. “그럼 김대중 대통령 죽여버립시다.” 갑자기 캠프에 정적이 돌았다. 국장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날 바라보며 뭘 잘 못 들었나 하며 눈만 껌벅 거렸다. “난 BBK가 뭔지 모릅니다.
BBK 가지고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5년 잘 마쳤고 노벨상도 받았는데 뭘 더 할 일이 있습니까? 그러니 김대중 대통령이 죽어 정동영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김대중 대통령도 마냥 싫어 하겠습니까?” 그때서야 국장은 내가 한 말이 분명했다고 확신했다. 난 아무런 감정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캠프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아마 모두 내가 미친 놈이라 생각 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전라도 광주, 목포 중심의 그 많은 선거운동원 한 가운데서 경상도 출신인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죽여버리자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국장이 “대통령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는데 죽일 수 있겠는가?”, “난 김대중 대통령 집이 어딘지 잘 압니다.
마음만 먹으면 경호원이 아무리 많아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관련된 건지 말해 주십시오. 당이 김대중 대통령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난 합니다. 아니면 대통령 보고 알아서 죽어라 하십시오.” 국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회의 혹은 모사를 끝내고 퇴근했다. 여의도에서 버스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버스 안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불상한 사람들. 나 때문에 오늘 다 죽게 생겼구먼’
196/240사실 그날 난 버스 사고 등으로 죽을 줄 알았다. 두려운 것이 아니라 빨리 깨끗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재수 없게도 집에 도착하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또 출근했다. 일단은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고, 도대체 시작과 끝이 어딘지 모르기에 다시 부딪치는 길 밖에 없다. 난 지금 용산에 있고 윤대통령이 죽어 이 사건이 끝난다면 난 용산의 담을 넘는다. 난 이 말 뜻을 알고 있고, 현직 대통령인 것도 알고, 난 국가안보에 책임 있는 국민 엑기스다. 내가 없으면 나라가 없지만 현직 대통령은 탄핵된 사례가 있다. 대통령은 거들먹거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를 2012경 정도 수준으로 알았으면 그날 난 일산의 담을 넘었다. 다음 날 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캠프 사무실로 들어갔다. 대략 이틀 정도 지났을까 다시 국장이 불렀다.
그날은 캠프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누가 이런 모사를 듣고 싶겠는가? “일산 갔다 왔네”, “일산은 왜요. 유세가 있었습니까? 그럼 말씀을 하시지 같이 가게”, 몇 일 지났다고 정말이지 난 깜빡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 생사을 놓고 모사하고도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 해서인지 그런 일도 잊고 있다. 반면 국장은 매우 심각했다.
“김대중 대통령 일산에 사시는 것 모르는가?” 라며 화를 냈다. “잘 알죠. 나도 가까운 곳이 집이 있었고 바로 옆의 현대산개발 법원 감정평가 의뢰가 있어 조사차 그곳을 여러 번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국장은 기가 찼다. “지난 번 말한 것 잊었나? 그 문제로 김대중 대통령 만나고 왔네.”, “그래 뭐라 하시던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께서 죽기 싫다네”
대화 자체가 참으로 기가 차지 않는가? 천하의 김대중 대통령이 내 말에 답을 해 왔는데 그것이 살고 싶단다. 순간 난 국장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에는 진지함만 가득하다. 도대체 이런 대화를 계속해야 되나도 싶었지만 달리 길도 없다.
“누가 진짜 죽어라는 겁니까? 저기 플로리다나 하와이에 가서 예쁜 여자하고 여생을 보내고 장사를 최고로 치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면서요?” 되려 내가 화를 냈다. 국장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며 그만 파장 했다. 그날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염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진짜 죽이려 하지 않았다. 또 몇 일이 지났다.
“정교수 좀 보세” 둘이 다시 캠프 한가운데 앉았다. 시작은 똑 같다. “일산 다녀왔네” 이제 나도 안다. “그래 뭐라 하시던가요.”, “그것도 싫다네”, “아니 대통령도 하고 노벨상도 타고 노무현 대통령도 있는데 뭘 더 하신다고 그러십니까?” 또 한동안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그러게 말이야. 대통령께서 계속 세상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시고 싶으신가 지보”
이번에는 국장도 처음처럼 그렇게 강직한 것이 아니라 한풀 꺾여 있다. ‘국장님! 내가 김대중 대통령 암살을 모사하고도 살아 남은 것은 김대통령 뜻이지 않겠습니까? 살고 싶거나 간섭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를 국장님이나 민주신당 등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니면 누군가 똬리를 틀지 못하게 하려고 말입니다.’
이렇게 난 김대중 대통령 암살을 모사하고도 살아 남았다. 그놈 참 명도 길다. 사천 집은 어머님도 돌아 가시고 아무도 없다. 사건이 어느 정도 끝나 간다는 믿음으로 냉장고 등 짐을 대한통운에 맡겼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사건 등을 계속 진행했다.
처음 내려와서는 집에서 정자나무까지 대충 1.5km정도 되는 거리의 농로를 매일 자전거 뒤에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태우고 밀집 모자를 쓰고 돌아 다녔다. 답답할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했다. 얼마 후 노무현 대통령도 시골로 내려와 나와 똑 같이 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과 내가 소통하는 법이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일 내가 어땠겠는가?
침대에 누워 터미네이트를 신청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비보에 나도 모르게 그만 몸이 웅크려 들더니 가슴이 벌렁이기 시작했다.
197 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놀라거나 두렵지 않았다. 분명 뭔가 트릭이 있을 거라 자위하며 시청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만난 적도 없다.
내 삶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시간이 끊임 없이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무릅을 움켜지고 몇 시간을 꼼짝도 할 수가 없다. 그 많은 지지자들 중에 나보다 더 두려웠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분명 잘못 된 것이고 오보이니 곧 정정 보도 될 것이라 믿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누구와 맞짱을 뜬단 말인가? 이상한 방식으로 누구와 대화를 한단 말인가? 사천은 내가 내려 오기 전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다. 어떤 측면으로 보면 사천 사람들이 서울디지털대학교를 만들어 나를 내려오게 한 것처럼 많은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 마치 오래 전부터 내가 내려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들의 사건에 나를 교묘하게 접목 시켰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집을 정리 하지도 않고 그냥 소송에만 집중했다. 등기부 등본에서 인가된 학교가 아니라는 증거를 4군데 찾았고, 감사원 감사 결과도 2군데가 있고, 교육부 출입 기록과 교육부 직인대장 등 대략 8군데 이상 문제가 있거나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을 찾았다.
이를 정리해서 진주지방검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검찰과 교육부가 조율하고 있는 것 같다. 조사하고 내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덮을까요 아니면 법대로 갈까요를 놓고 누가 비싼 밥을 사느냐에 따라 결론을 내는 그런 상황이다.
대충 다 드러난 사건이니 조사 할 것도 없다. 나름 머리를 쓰기로 했다. 당시는 1주일에 한 번씩 진주로 나가 서류를 작성 후 출력하여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고 돌아 왔다. 진주에서 교육부총리부터 전 관계자 980여명의 메일을 확보했다. 운전사와 청소부까지 포함한 모두를 확보했다. 그리고 다음 주 이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가 메일을 보낼 때 왜 운전사와 청소부까지 보내는 줄 아나? 천 명 정도의 조직이면 얼핏보면 많은 사람들일 수 있으나 한 조직은 하나일 뿐이다. 즉, 위에서 지시를 하거나 중간에 누군가 이 절차를 가로채면 그 어떤 내용의 글을 보내도 단 한 명에 의해 막혀버리지만 이 지시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운전사와 청소부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부총리의 눈과 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도 보냈다. “발씨놈들아! 십주고 빰 맞는다지만 누가 그 더러운 씹 먹고 기분이 좋겠냐? 난 서울디지털대학교 정동배 교수다 새씹야…,” 등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다 처 발랐다. 인터넷 검색까지 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다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또 보내겠다고 경고 했다.
일주일 후 지난 주 보낸 메일을 확인하니 99%가 클릭했다. 이 정도면 어그로를 끌기에 충분하다. 다시 또 있는 욕 없는 욕을 다썼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찰에 진정 넣은 8가지를 해명 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또 보내겠다고 예고했다. 이쯤 되니 이들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 눈치다. 역시 98% 정도는 확인됐다. 뒤에 유럽 등 출장 간 사람들의 회신이 있었으니 사실상 100%로 보면 된다. 다음 주는 사건의 억울함과 알게된 사실 등 같은 내용을 보냈다. 다시 한 주를 더 보내자 메일 확인 율이 50% 정도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통신 선을 빼고 USB에 다음 주 보낼 메일을 작성했다. 내가 쓰는 글의 내용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이 글을 읽고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박쥐들 모르게 교육부 전산실과 싸우는 절차를 만드는 것이다. 공무원은 좋은 말로 통하지 않으니 내분을 일으켜기 위해서다. 그리고 50% 정도 클릭된 메일 결과를 캡쳐 받았다. 다음 주는 지난 주 작성한 메일을 PC방에 도착 하자마자 바로 보냈다. “첨부는 지난 주 발송한 메일 확인률이다. 대충 아시겠지만 교육부총리 관인이 위조된 사건이다. 내가 처음 메일을 보낼 때는 99% 클릭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갑자기 거의 50% 클릭율을 보이고 있다.
198/240 첨부를 보면, 메일을 계속 확인 하는 사람과 확인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복 된다. 이는 교육부 전산실에서 여러분들 성향에 따라 메일을 막고 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어차피 교육부가 부총리 관인을 위조 한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 중 메일을 클릭 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 중 한 쪽이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니 지금 즉시 전산실에 왜 메일을 막았는지 확인해 보기 바랍다.” 이렇게 메일을 보냈다. 물론 다음 주에 더 큰 것을 보내겠다고 했다.
사건이 전환 점을 가질 때는 항상 욕을 해야 한다. 욕을 못하면 애초에 국가와 싸우지 마라. 좋게 말해 먹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 서울행정법원 딱 한 곳 있는데 그때는 내가 무식했다. 검찰과 법원도 결과적으로 맞아 떨어진 것인지 처음부터 나를 도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유호근의 국보법 집행 정도에 따라 모든 결정이 맞을 수도 있다.
욕을 심하게 하면 심할수록 국가의 반응은 빠르고 정확하다. 다음 날은 좀 여유로웠다. 어차피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야 하니 당분간은 집에서 그냥 쉰다. 그런데 다음 날 우편이 왔다. 진주지방검찰청의 진정서 결과 통지서다. ‘행사 할 목적으로 인가서라는 지령서에 교육과학기술부 부총리의 관인을 위조했다.’이다. 얼핏 보고 별 생각 없이 던져 버렸다.
항상 똑 같이 내가 노재봉 총리의 관인을 위조 했다로 잘 못 읽었다. 총리가 부총리 보다는 높잖아?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아까 본 통지서가 노총리가 아니라 교육부총리였다는 생각이 번쩍 스쳤다. 그동안은 나의 주장이라면 이제는 국가가 죄를 인정했다. 어! 다시 통지서를 천천히 읽어 보니 이것이 전환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아! 역시 대한민국은 욕 외에는 먹히는 것이 없다. 발씨! 최고.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발씨놈아! 개 놈잡아! 호로끼새야! 등본하나 빨리 떼 줘! 이 놈상 끼새야!“ 하면 옳은 서류가 나온다. 이는 국가보안법이 집행되면 틀릴 수도 있고 그 전까지는 맞다. 20년 속고 또 속으면 내가 바보다. 국보법이 대충 집행되면 또한 맞다. 확실히 집행되면 모르겠다.
이는 경험이니 참고 해라. 좋은 말로는 절대 먹히지 않는다. 관에 대응 할 때는 처음부터 신중 할 것을 충고한다. 물론 모르면 신중한 만큼 시간 낭비다. 일단 부딪쳐야 20년 후 겨우 상황 파악이 된다. 상대측의 법률고문인 나경원 의원실에 전화를 넣었다. “나경원 의원이 법률고문으로 있는 서울디지털대학교 정동배 교수입니다. 통화 가능하겠습니까?”,
“나경원 의원 비서인데요.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검찰의 통지서를 받았는데 그 쪽에서 교육부총리 관인을 위조했다고 하는데요.”, “아직 끝난 것 아니잖아요? 그래서 뭘요? 저희 쪽에서도 그 사건은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 라며 화를 내더니 끊어 버렸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이를 근거로 다른 소송을 계속했다.
서울행정법원에 학위, 학점 등 무효확인 소송을 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재판이 있으니 참석하란다. 아들을 데리고 법원에 들어 섰더니 법정이 조그만 했다. 그동안은 가운데 경륜이 있는 판사가 있으면 양쪽에 일명 끼새판사가 배석했다. 그런데 행정법원은 3명 모두 상당한 나이가 있었다. “지금 아이하고 법정에 들어오신 겁니까?”,
“예 소송 이후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를 저쪽 뒤에 앉히고 진행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진원이를 뒤에 앉히고 재판을 계속했다. “정동배 교수님! 혹시 그 학교 법률 고문이 우리 법원 출신 나경원 의원인 것은 알고 있습니까?”, “예, 그것이 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까?”, “아니 그런 뜻으로 물은 것은 아닙니다.” 자기들 끼리 뭐라 하는 말이, ‘저런 미저리 같은 놈도 아는 것을 어떻게 나경원 의원이 모를 수가 있지?’ 비슷하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은 각하 결정으로 학점, 학위 등이 아무 것도 아니니 무효화 할 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난 화를 내며 법정을 나왔다. 내가 원한 것은 ‘학위, 학점 등이 무효임을 확인 한다’ 였다. 서울행정법원 판사들 보기에 내가 얼마나 한심 했을까? ‘따봉!’ 했어야 맞나?
199/240 괜찮다. 나경원, 한동훈, 윤석열, 최병렬, 정세균도 다 이제 알았다. 시간되면 나경원, 윤석열, 한동훈, 박지원, 홍준표를 모아 놓고 법학개론 특강을 해야겠다. 최병렬, 정세균은 염치를 아니 수그릴 줄 안다. 나한테 호통 안치는 것을 보면 조규향, 노재봉도 수그리고 있는 것 갔다. 요즘 나도 힘드니 어디서 두더지 잡기 게임이나 한 판 했으면 좋겠다. 판사가 뒷통수에 대고 “잘 읽어 보셔요” 했다 그래서 난 잘 읽어 봤는데 화만 더 났다. 뭐, 나만 몰랐겠어 나경원 의원도 몰랐나 아니면 쥐새끼 한 마리 정도로 취급했나?
아들 진원이는 공부를 곧 잘 했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많이 다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니 학교를 가야 하지만 고등학교는 주무부서가 교육부라 갈 수가 없다. 즉, 모순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계속 귀찮게 굴었고 교육 관련 담당자나 기관 사람들을 계속 보냈다. 공무원은 왜 진학이 안 되는지를 파악하여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의무다.
그런데 고의로 한 놈도 안 물어 본다. 교육부와 싸우면서 교육부에 들어가 배울 수는 없다. 연아공대 산업디자인과는 G전자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가 있고, 경상대 산업디자인과도 아는 교수가 있지만 내가 대학에 강의를 갈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인근의 기능대학이나 남해대학 등 서울대 출신에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나라법을 지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속된 말로 진주 정도면 학원 같은 곳은 서울대 석사 졸업장을 붙여만 놔도 공공근로 수입 보다 낫다. 1급 광고 자격증을 빌려만 줘도 어느 정도 수입이 된다. 사천에서 무자격으로 광고 사업하는 업체도 안다. 그것도 사천시청 공무원 소개로…, 하지만 공단과 소송 중이라 이도 안 된다. 미대의 경우 서울대 학사는 가끔 지방대에 있어도 석사는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안다. 서울대는 학사도 인서울 4년제 교수가 있다.
지방대학이라도 나 정도 되는 사람이 가면 하루만 강의해도 면사무소 일주일 일 하는 수입은 된다. 내가 강사를 얼마나 뛰었는데 이것을 모르겠는가? 지방대는 인서울만되도 대우 받고 다닌다. 연아공대 교수는 중아대 석사인데 학교에서 아주 좋아 한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이 아니면 내가 사천에서 공공근로를 왜 하겠나?
아무리 하급공무원이 무식해도 서울대 출신이 공공근로를 하면 국가보안법까지는 안 가도 엄중한 법이라는 것 쯤은 알아야 한다. 그것도 권리 때문에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 그런데 저 따위로 행동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공무원의 잘못으로 내 부모가 평생을 고통 받다가 돌아가셨고 내 젊음 십수 년이 사라졌는데 공무원만 무적인가?
미친 씹끼새들! 선출직이라는 끼새들도 법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상식도 없냐? 개식자들! 인저대학도 같은 팀원이었던 선배가 있고, 부영대학도 아주 가까운 선배가 2명이나 있다. 내 부탁을 거절 할 사람들이 아니다. 모두 첨부의 사진에 있다. 무슨 전임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라법으로 내가 강의를 갈 수가 없다. 대법원에서도 그렇게 판결했다.
이는 서울에서 소송 시작할 때부터 알았다. 아들이 고등학교 못 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이처럼 가족이 해체되면 진원이가 고등학교를 안 갈 이유 또한 없다. 난 저녘에만 진원이를 만나지만 학교 선생들이나 혹자들은 매일 낮에 만나 애를 세뇌교육 시켰다.
그래도 내가 워낙 설명을 많이 하여 말을 알아 들을 법도 한데 진원이는 내 말을 전혀 듣질 않는다. 솔직히 의무교육이 끝나 더 이상 학교가 안 된다는 정도만 알지 나도 더 자세한 것은 모른다. 그러니 진원이한테 무슨 설명을 더 하려 해도 별도로 할 것이 없다.
사건이나 가족 관계 등을 충분히 설명해 줘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가끔은 진원이 때문에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아들이면서 이렇게 아버지 마음을 몰라 주는 놈이 세상에 있다. 남이라도 이 정도 설명해 줬으면 알아 들으련만 이 놈은 갈수록 태산이다.
200/240 보통의 불효자식들도 이 정도 설명을 해 주면 스스로 알아서 아빠를 도울 텐데 이 놈이 필시 이러는 것은 본성일 수도 있겠으나 주변의 잘못된 정보 주입이라 생각한다.
너무 힘들어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켰다. 그러면 당분간 서로 좀 편할 것 같다. 그런데 두 달 정도 공부 하더니 합격 해 버렸다. 그래서 군대를 자원하여 입대 시켰다. 아버지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헤어지는 것이 힘들었지 아들이 입대 하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진주교도소에 가서 아주 편했던 것 비슷하다. 교도소 첫날은 진원이 걱정에 잠을 못 잤지만 나중에 면에서 공무원이 데려 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냥 큰 호텔에 온 느낌이다.
국가보안법에서 교도소는 호텔이고 휴양시설이다. 물론 교도소에서도 처음 몇일 그랬지 그곳 역시 말도 못하게 괴롭혔다. 이후 아들이 군대 가고 나서는 큰 짐을 하나 내려 놓은 것 같다. 군대 제대 후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는데 1년 마치자 마자 여당인지 야당인지 아니면 공노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에게 세뇌된 아들의 태도가 더욱 급속히 변했다.
도저히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아들은 한 줄 남기고 새벽에 집을 나갔다. 지금 대구에 있는데 추론하자면 홍준표 쪽 사람들이 볼모로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 죽음의 모든 증거를 인멸한 것이 홍준표라는 사실은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진원이의 목숨을 쥐고 있는 홍준표가 아들을 사망켜 한다면 분명 머리가 나빠 저지런 범행이다.
상식있는 검사 출신이라면 증거인멸이 구속 수사감이란 것을 당연히 알겠지만 남은 구속되도 본인이 구속되는 것은 극도로 꺼리는 인간 쓰레기 말종 같아 기대도 안 한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정치인이 아니라면 하나 밖에 없는 가족을 파괴할 집단은 이 나라에 없다. 홍준표와 박지원은 지적 수준이 비슷하다.
내가 윤석열 대통령이 빨리 정리하라고 촉구하는 것은 이미 대통령의 문제가 됐고 곧 나라 전체의 문제가 된다. 임기 끝날 때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를 돕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국가가 사면초가라 생각하면 쉽다. 어쩌면 김대중 뜻에 따라 윤대통령님과 진짜 군인들이 운동권과 달리 스스로를 희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언론이 윤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김대중표 난수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무식해서 어리석은 국민이 좋아 할 소리만 한다. 뜻뜻하다면 김대중 뜻에 따라 반드시 윤대통령님을 응원해야 한다. 국민은 어리석어서 보이는 것만 본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박정희나 김대중의 묘 중 하나를 파묘하여 부관참시 할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국가의 큰 정치가 바로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인은 변하는게 하나도 없다.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이 3류다.
용기도 없고 아무짝에 쓸모도 없다. 유인원 말종이다. 이들은 지 자식을 이렇게 만들면 개 거품 물고 난리칠 것이다. 불상자가 가족을 해체하고 하나 남은 아들 목숨으로 협박하고 있다. 대한민국 발씨! 아들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고등학교도 보내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면 진학하지 않은 것이 도로묵이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가고 대학가서 집을 나가도 된다.
어차피 성인이니까? 그런데 누가 어떻게 뭐라고 세뇌를 시켰는지 아들은 마치 자기가 갈 길이 생겨 혹은 명분이 있어 나가는 것처럼 갔고 지금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협박을 하고 있다. 여차하면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을 네 부모처럼 보내 버릴 테니 말을 잘 들어라’는 묵시적 공갈협박이다. 아들 놈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정치인 집단이야 원래 쓰레기 집단이니 이런 협박이 쉽다.
하지만 아들이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더욱 강하게 바뀐 것을 보면 여당 지지자가 대부분인 공노비들의 장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과 이후 다수당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조장 마을과 그 주변 마을에 많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다수당도 무시는 못한다. 이쯤되면 모든 글이 대통령께서 읽을 것이다. 대통령님! 방가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