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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소설가. 극작가 창씨개명 山川實

내용
송영은 1903년 5월 24일 서울 서대문 오궁골에서 태어났습니다
1917년 배재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소년 문예 구락부를 조직하고 새누리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습작 소설을 게재하며 희곡, 소설, 아동문학, 수필, 비평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동창생들과 자유 신정보라는 비밀 신문을 발행하기도 하였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운송부 잡역으로 일을 하면서 크누트 함순,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고골, 체호프, 몰리에르 등의 외국 문학과 레닌과 마르크스의 이념 서적을 접하게 됩니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간 송영은, 동경에서 낮에는 유리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예술 강의를 들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웁니다.
반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감하고, 1922년 말 고국으로 돌아온 송영은 새누리라는 문학단체를 조직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1922년 말 진보적인 작가들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문예 단체인 염군사를 조직하고 활동하면서, 미발간 잡지인 염군에 소설 과4희곡 를 발표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https://tv.kakao.com/channel/3880818/cliplink/422584123?metaObjectType=Chan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