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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의용단(二五義勇壇)

수영구 망미동 366 소재,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 제12호(1972.6.26)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은 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고, 수영성에 침입한 왜군은 7년 동안이나 이곳에 주둔하며 약탈과 살육을 감행하였다. 이와 같은 적의 침략에 맞서 이곳 수군과 성민 25인은 죽기를 각오하고 왜군과 싸우기로 결의하고 7년 동안 유격전으로 적에 대항하였는데, 이 단은 그들의 의용을 기리기 위해 쌓은 것이다. 이들 25분의 사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609년 동래부사 이안눌이 지방민의 청원에 따라 25분의 사적을 널리 수집하여 정방록(旌㥬錄)에 싣고, 그 집의 문에 「의용(義勇)」이라는 2자를 써 붙인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후 순조때 동래부사 오한원은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시켜 주고 글을 지어 포장(褒獎)하였고, 1853년(철종4년)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공원에 비를 세워 의용단이라 이름하고 재실을 지어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향을 봉행하였다. 제주는 좌수사가 되었으며, 매년 3월과 9월의 정일(丁日)이 파제일(罷祭日)로 되어 있다.


1894년 군제개혁으로 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하였고 일제강점기 일본인 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에서 제향을 봉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산시와 수영구에서는 순국선열의 호국충절 정신을 기리고 효율적인 문화재 보존을 위해 정화사업을 추진하여 2001년 3월 사당인 의용사,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등을 건립하고 경역도 확장하여 지금의 규모로 정비하였다.

자료관리 담당자

관리팀
김만택 (051-888-7214)
최근 업데이트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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