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원조, 한국밥상의 역사가 머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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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포동 743번지일원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여름 서면 아래쪽 동천변이 떠들썩했다. 이유는 1천여 평의 넓은 부지에 공장 하나가 웅장한 모습으로 들어서고 순백색의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장 이름은 ‘제일제당’.
이 공장이 들어서기 전만하여도 외국산 설탕에만 의존을 하였으니 국민의 기대는 매우 컸다. 순수 우리기술로 국내 최초의 정제 하얀 설탕이 탄생 한 것이다.
이 사업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호암 이병철(1910~1987), 현 삼성그룹 창업주이었습니다. 국산으로 사업의 물꼬를 튼 제일제당은 ‘백설표’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이곳에 사업을 확장했다. 몇 년 전만해도 공장이 가동했는데 부산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주변 고층아파트건물이 세워진 곳이 전 제일제당자리였다.
눈처럼 하얀 설탕 ‘백설표’는 그 후 한국 밥상의 역사가 되었다. 제일제당에서 뿌리와 가지를 뻗은 삼성그룹은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집단으로 발돋움 하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삼성그룹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이병철회장이 대구에서 시작한 ‘삼성상회’가 그 모태다. 사업이나 공장규모를 보면 이곳에 설립한 제일제당이 바탕이 되었다.
당시 공장직원들로부터 전해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초창기 제일제당에서 근무한 직원들은 월급이 20만환이었다. 당시 동천 주변 10~20평 크기의 집값이 15만환이었다니 제법 큰돈이다. 김해평야에 논 한마지기가 2만환이었답니다. 한 달 월급으로 김해평야 논 10마지기를 산다니, 직원들은 ‘천하의 제일제당’이라고 불렀다한다.
현재는 개발로 공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변은 초호화아파트 군락지로 변해버렸다. 동천로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조성되어서 시간별 대중교통수단만 통행을 허용하여 도심 속 친환경의 쾌적한 명품거리로 조성을 하였다.
이 도로는 왕복 4차도로 였었다.그러나 현재 왕복 2차도로이며, 양옆 인도는 아름다운 조형물로 가득 채웠다. 또한 버스정류소로부터 10m이내는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대중교통전용지구’라는 안내문이 길바닥에 각인했다. 봄 가족나들이 이곳을 적극 추천한다.
- 작성자
-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7-03-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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