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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바람의 가객 노계 박인노가사비 '태평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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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민락동에는 박인노가사비가 무궁화동산에 세워져 있다. 공의 자는 덕옹이다. 호는 노계 무하옹이다. 본관은 밀양이고, 고향은 경상북도 영천군 도천리이다. 공은 1561년에 태어나서 1642년까지 생존하시다가 돌아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정세아를 따라 별시위가 되어 왜병을 무찔렀다. 이어 수준절도사 성윤문에게 발탁되어 좌수영에서 혁혁한 공적을 남겼다. 1598년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에도 부산포 앞바다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한겨울 추운 동지섯달이 되어서도 왜는 밤을 틈타서 노략질을 일삼고 매서운 한파는 수병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때 노계는 수병의 위로와 성군의 안위를 물어 태평사(太平詞)를 지었다. 1605년 공은 다시 통주사의 명을 받고 좌수영에 부임을 하였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7년이 지났으나 왜병은 완전 철수를 하지 않고 우리 생민들을 도탄에 허덕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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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의 따가운 여름날은 너무도 길어 수병들의 지친 모습이 허허로운 물결에 씻겨가고 있었다. 공은 그들을 위무하고 나라의 음덕을 다시 선상 탄으로 노래했다.

우리는 이 역사적 현장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생채기보다 더 아팠던 기억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 사라진 시간의 흔적을 돌에 새겨 만년의 역사에 살아있는 증표로 삼고자 한다.

민족이여! 세세연년이 비 앞에 서거든 옷깃을 여미며 다시는 이러한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엄숙히 맹세를 하자.

 

태평사 太平詞

투병식과하고 세류영 돌아들제

태평소 노픈 솔의에 고각이 싯겨시니

수궁 깊은 곳의 어룡이 다 우는 듯

 

용기언건하야서풍에 빗겨시니

오색상운일편이 반공에 더러딘 듯

태평모양이 더옥하나 반가올사 (노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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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계 선생의 작품은 이념적 기반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넘치는 충효사상이다. 평화와 태평성대가 계속되기를 염원하는 충정이 깔려 있다. 표현 기교가 다소 능숙하지 못하며 한문어투와 고사성어가 많은 것이 흠이다. 문체가 강건·웅렬·화려하고 무인다운 기상이 넘쳐흐르는 작품이다.

태평사는 임진왜란을 끝나고 다시 태평성대를 구가한다는 내용으로 사졸을 위로하는 가사로 원문을 번역한 내용은 우리나라가 불시에 왜적의 침략을 당하여 혼란에 빠지고, 많은 백성이 죽고, 임금이 피난가기에 이르자 명나라의 도움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남방이 편안하게 되었음을노래하고 있다.

고향을 그리는 본마음에 누가 아니 반겨하겠는가? 여기저기로 옮겨 거처하니 즐거움이 어떠한고, 외로이 살아남은 백성들아, 임금님의 은혜인 줄 아는가? 성은이 깊은 아래 오륜을 밝혀 보세 많은 백성을 가르쳐 다스리면 절로 흥해지지 않겠는가.

하늘의 운수가 순환함을 알겠도다, 하느님이시여 우리나라를 도우시어 만세무강 누리게 하소서 요순 같은 태평시에 하은주와 같은 삼대일월 비취소서 오 무궁무진 긴세월 동안에 전쟁을 없애소서. 밭 갈고 우물 파서 격양가를 부르게 하소서 우리도 임금님 모시고 함께 태평 즐기리라.

 

작성자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작성일자
2017-03-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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