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시대의 거인의 발자국 초량 이바구길에서 만나다

내용

"당신은 성인이 아니면 바보요"

춘원 이광수는 척추결핵으로 27살의 젊은 의사 장기려 박사에게 6개월간 진료를 받았다. 그의 순수한 인격과 영혼에 매료된 그는 장기려 박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돈이나 출세에 아무 관심없이 그저 아픈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그가 너무 바보스럽게 보였기에 말이다.

산복도로 이바구길 백제병원길을 올라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를 오르며 부산의 이바구길은  전쟁 통에 피난민의 힘든 삶의 자국의 눈물과 회한을 느끼게 한다. 그 한 고비가 138계단. 인생의 고단함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그 계단 앞에서 헉~하는 한숨소리가 나올 정도다. 너도나도 힘든 그 시절 자신을 넘어서서 가난한 이웃 아픈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를 치유한 성산 장기려 박사의 기념관이 산복도로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EBS에서 전국 800여명의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역대 명의 1위에 (故) 장기려 박사의 이름이 올랐다. 존경하는 스승이자, 명의의 사표로 꼽은 '명의가 뽑은 명의 장기려 박사' 그는 참 의사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려하면서도 남에겐 하나도 받지 않으려 했던 사람. 하나님이 자신을 세운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으려 노력했던 사람. 돈 없어 퇴원 못하는 환자에게 병원 직원 몰래 뒷문을 열어준 사람. 영양 부족인 환자에게 닭 한마리 사먹을 돈을 주라고 처방한 사람.

자신의 보수적 고신의 장로이면서도 무교회주의자인 함석헌과 깊은 교감을 이루었던 사람.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의료조합인 청십자 운동을 시작해 국민의료보험 시대를 앞당긴 사람.

세계적 권위의 상을 받으면서도 '내가 아무런 명예욕 없이 살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부끄러워했던 사람. 북에 두고 가족을 평생 그리워했음에도, 모든 이산가족들과 아니면 북을 방문하지 않겠다며 가족을 방문하게 해주겠다는 대통령의 특사를 거절했던 사람.

우리네 슬픈 현대사의 한 가운데를 살아오는 동안 피난민으로서, 가족을 북에 두고 온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하나님을 믿는 의사로서 겪어야 했던 숱한 이야기들이 안타까움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의사생활 60년. 집은커녕 통장에 겨우 천만원 남아 있었던 사람.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줘버린 사람. 1911년 평안북도 용천출생. 친구의 10전짜리 팽이를 훔치고 눈물로 회개하여 거짓말 안하기로 다짐. 소심하고 허약했던 소년. 종종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버지. 일반 공민학교 대신 기독교학교 입학했으나, 많이 배우지 않아 부진했던 일본어, 수학 때문에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 아는 문제가 없어 낙방. 희망하던 사범대학 공업대학 성적 때문에 포기하다.

대신에 학비도 싸고 성적도 맞았던 경성의전에 진학. 내과의이자 개업을 앞둔 장인의 말을 따라 외과진학하는데, 스물 살이 넘도록 간절히 원했던 것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졸업 후 스승 백인제 박사 조교로 학업에 매진했다.

당시 조선인 10명도 안되던 의학박사 학위 취득. 스승의 진로제안, '경성의전 교수로 가지 않겠나?' 당시 모두가 인정하는 보장된 길. 보장된 성공의 길을 버리고, 또 다시 선택의 갈림길. '나를 본 할머니는 청진기만 대면 병이 낫는 줄 알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기를 부탁했다.' '치료비 없어 평생 의사 얼굴한번 못보고 죽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 스승의 제안을 거절. 자기가 선택한 병원을 간다.

병이 나으려면 무엇보다 잘 먹여야 하는 환자에게 준 그의 처방전은 '닭 두마리 값을 이 환자에게 내어 주어오.'였다. 평양의 한 병원에 근무하며, 러닝셔츠를 입고 무의촌 진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다섯 아이와 아내를 두고 둘째 아들과 부산으로 피난. 1951년 천막에서 무료병원 시작하는데, 하루 100명씩 몰려든 환자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촛불을 켜고 응급수술' 환자에게 청진기 대며 오진하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어려운 병원 형편으로 조금씩 받게 된 병원비. 하지만, '제가 뒷문을 열어둘 테니 나가시오' 병원직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병원비 없는 환자를 내보냈다.

1968년 월 보험료 60원. 뜻있는 사람과 청십자 의료보험 시작. 1989년 전 국민에게 국민보험이 확대될 때까지. 국가보다 10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 민간 의료보험. '의사는 진실과 동정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면 죽을 때까지 남에게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병원 옥탑방에 홀로 지내며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정부가 제안한 가족 상봉기회를 특혜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1995년 12월25일 그의 마지막 날까지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바보'라 불렀다. '그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우리시대,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바보'의 삶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기를 기뻐했고, 그런 삶을 살아갔던 바보 장기려 박사. 그 삶이 나를 겸손히 돌아보게 한다. 그분이라고 가족이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좋은 직장 좋은 벌이로 호의호식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이웃사랑으로 살아가며 기뻐했던 장 박사의 삶. 남들이 가는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길을 선택했던 그는 우리 시대의 거대한 울림을 주고 있다.

이렇게, 초량동 산복도로를 올라 방문한 장기려 박사 기념관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인생의 부끄러움을 한 가득 느꼈다. 삶으로 온 몸으로 그 길을 보여준 진정한 '바보' 장기려 박사. 그 기념관을 한번쯤 방문하여 그 거인의 모습 앞에 우리는 한 없이 작은 자신을 발견하며 조금이나마 '바보'의 삶으로 누군가의 길을 밝히는 촛불에 대한 깊은 여운을 맛보길 바란다.

작성자
김광영/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5-09-1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