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1490호 기획연재

부산지하철 기획단, 지하철 ‘지’자도 몰랐다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제1화 ·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④
서울, 철도기술자 24명 과장급만 40명
부산, 지하철이 뭔지 모르는 직원 12명
밤새 책과 씨름 안상영 전 시장 큰 도움

내용

“‘본청과장 누구도 지하철 기획단장을 맡지 않겠다하오. 당신조차도 맡지 않겠다면 내무부 기구승인 난 것은 없애고, 부산지하철 건설 이야기는 없던 일로 합시다.’ 최석원 시장의 세 번에 걸친 엄포에 기획단장을 맡겠다고는 했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정원 25명을 요구한 내무부 기구승인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명, 2억원을 올린 기본설계 용역비는 1억원으로 반 토막 결정이 난 겁니다.”

부산지하철 기획단장을 맡은 임원재 씨의 이야기다. 용역비 반 토막에, 기구도 반 토막, 사무실도 없었다. 부산에 지하철을 놓아야 한다는 첫 주장을 펼쳐,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그 뜻을 관철시켰으니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일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기획단장 발령을 받은 게 1979년 5월1일잡니다. 발령을 받긴 받았는데 사무실이 어디 있어야지요. 당시 시청은 중앙동에 있었는데, 시청 별관 선거관리위원회 3층 꼭대기 층에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너무 더워서 비워두고 있던 공간이었는데, 사무실을 차리고 일을 시작하려니 한여름 아닙니까.”

그의 말대로 한낮엔 옥상 열기가 그대로 훅훅 내리쳤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낡은 선풍기 2대만 탈탈거리며 뺑뺑이를 도는데, 출근해서 일도 하기 전에 온 몸이 땀에 절기 일쑤였다. 낡은 철제 책상을 여기저기서 구해다 직원 12명으로 사무실을 꾸렸다. 지하철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직원들로 구성되다 보니 의욕적으로 시작한 지하철 건설계획과 건설이 막연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서울 견학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던 곳이 서울시였으니까요.”

직원 12명 모두를 이끌고 서울 길에 나섰다. 당시 서울지하철 본부장은 신문수 씨, 차장은 안상영(전 부산시장·작고) 씨였다. 안상영 씨가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을 할 때 임원재 씨는 부산시 도시계획과장이었기에 두 사람은 제법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안 차장의 주선으로 신 본부장 등 서울지하철 직원들과 점심 자리에 마주앉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서울은 과장급 이상 간부만 40여명, 부산은 전 직원이 12명이었다. 신 본부장이 물어왔다.

“부산은 지하철 직원이 몇 명입니까?” “여기 있는 사람이 전부입니다.” “12명은 모두 철도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걱정 반, 한심 반이라는 표정으로 다시 자문자답을 늘어놓았다. “땅굴 하나 뚫는 것도 아니고, 경험도 없는 이 소수의 직원으로 어떻게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요? 서울은 철도청 우수 기술자를 몽땅 빼와서 공사를 해도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났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안상영 씨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 당시 서울지하철 건설본부 설계계장이었다. 사실상 서울지하철 1호선 설계와 시공을 맡은 내로라하는 토목 전문가였다. 그 역시 대단히 걱정스럽다는 듯 한마디를 거들었다.

“임 형도 아시겠지만, 서울은 10년전 양택식 서울시장이 중점사업으로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시장이 앞장을 서면 그만큼 일하기가 수월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양 시장께선 철도청장을 거쳐 왔기에 철도청 전문인력 중에서도 우수 기술자만 24명을 차출해 왔습니다. 그래도 시공하는 과정에 시행착오가 생기고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터졌습니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한 도시의 교통망을 바꾸는 거대한 사업에 우선 일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그나마 한명의 전문가도 없이 어떻게 지하철을 놓겠냐는 것이었다.

훗날 부산의 관선·민선시장을 두루 거치면서 부산의 도시발전을 이끌던 중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안상영 씨와는 이때부터 친해졌다. 시간만 나면 찾아가서 지하철 공법이나 시공방법을 묻고, 밤이 늦도록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어로 된 ‘지하철 건설 핸드북’을 구해다 새벽 2∼3시까지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보통 건축·토목 전문가들이 쓴 책은 기술적인 것만 생각하고, 기술적인 부분만 나열하기 십상인데, 1천30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은 신호체계에서 관리운영, 기술까지 망라하고 있었다.

“내가 모르면 직원들을 이끌고 나갈 수가 없잖아요. 죽어라고 공부해서 직원들을 가르치는 방법 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책으로 기본지식을 습득한 뒤로 실무를 익히기 위해 외국시찰을 나갔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기술자들을 주로 만났다. 오사카, 도쿄, 홍콩까지, 지하철이 있는 곳은 빠짐없이 돌았다. 프랑스 지하철은 그 형태가 다양했다. 좁은 지형을 감안하고, 오래된 도시 원형을 살려 심지어 길이 7m, 폭 1m50㎝에 불과한 전동차가 골목길을 지나가게 만든 것도 있었다. 곡선이 심한 곳에는 고무바퀴 전동차도 있었다. 어느 정도 감이 잡혀갔다. 이제 부산도 1호선 기본설계에, 차량의 규격, 차량의 크기를 결정해야 할 때가 된듯 싶었다.

1979년 부산지하철 기획단이 출범했지만, 지하철이 뭔지 아는 직원은 한명도 없었다. 오로지 책을 읽고, 견학을 하며,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지하철 기공에 앞서 김무연 부산시장(오른쪽 서명하는 사람)이 영국 철강회사 브리티시스틸 사장과 지하철 건설용 강재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 김 시장 옆 서류봉투를 앞에 둔 사람이 임원재 씨,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이재오 당시 부산지하철 기획단 설계계획과장이다.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1-08-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90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