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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486호 기획연재

지하철 놓기보다 반대 설득 더 힘들었다

부산시정 현대사 숨은 얘기를 찾다 - 제1화 부산지하철 뚝심으로 뚫다②
거듭된 퇴짜에도 지하철 건설 끝까지 주장
차트 100장 보고서 작성 4시간 토론 설득
박영수 시장 “지하철, 놓긴 놓아야겠구먼!”

내용
박영수 당시 부산시장으로부터 부산지하철 건설 결심을 받아내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백지 전지에 무려 100장의 차트를 만들고, 4시간이 넘는 보고 끝에야 비로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사진은 1984년 지하철 1호선 터널공사 현장순시를 나온 최종호 당시 부산시장과 부산시 간부들에게 임원재 당시 부산지하철 본부장이 현황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부산에 지하철을 놓자는 첫 주장은 여지없이 뭉개졌다. 부산시 간부들의 반응은 냉소에 가까웠다. 박영수 시장 역시 움직일 수 없는 큰 바위 같았다. 절대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76년, 정확히 35년 전의 일이다.

당시 부산시 도시계획과장으로, 지하철 건설을 처음 주장하고, 그 뜻을 끝끝내 관철시켜낸 임원재 씨의 이야기다.

“어느 누구도 제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지하철 말고는 얽히고설킨 부산의 교통난을 풀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거든요.”

시장실에서 쫓겨난 며칠 뒤 다시 시장실을 찾았다. 간단한 보고서도 만들어 들고 들어갔다. 그 정도 퇴짜를 맞았으면 물러설 만도 했으련만, 어디서 뱃심이 생기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시장님, 진짜 지하철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지금 시작해도 늦습니다. 동래고, 연산동이고, 서면이고, 얼마나 차가 밀리는지 시장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시장 앞으로 슬그머니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러나 시장께선 보고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역정 섞인 고함이 되돌아왔다. “그 많은 예산을 어디서 끌어다 쓴단 말이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소. 아, 참, 똑 같은 말을 사흘도 안돼 또 늘어놓는단 말이고….”

그 길로 시장실에서 밀려 나왔다. 2주 뒤 이남두 부시장실에서 확대 간부회의가 열렸다. 부시장이 주재하고, 실·국장 과장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였다. 회의가 끝난 뒤 급하게 나가는 기획관리실장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당시 부산시 기획관리실장은 김화섭 씨였다.

“실장님, 부산의 교통대란을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지하철을 놓는 것밖엔 없습니다. 실장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시장님께선 제 보고조차 받아주지 않습니다. 실장님께서 부시장님께 말씀 좀 잘 드려 주이소. 부시장님이 시장님께 직접 말씀 드려, 보고 좀 받아달라고 말입니다.”

“허어, 이 사람이. 시장님께서 받아주지 않는데 누가 보고를 대신 한단 말이고? 타당성이 있어야 말이라도 붙여 보던가 하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부산 현실에서 지하철을 놓자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불끈 화가 치솟았다. “그래요? 도리가 없네요. 기자실 가서 기자회견을 좀 해야겠습니다.”

돌아서는 기획관리실장의 등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 말을 준비한 것도, 그럴 계획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열통이 터져 얼토당토않은 억지를 쓰고 만 것이었다. ”이 사람, 안 되겠구먼. 당신이 뭐라고, 어디 가서 기자회견을 한단 말이요?”

나무라는 기획관리실장에게 다시 맞고함을 질렀다. “실장님, 부산시민을 생각한다면 진짜 이러면 안 됩니다.”

물론 기자실은 찾지 않았고,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일개 과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중 변화가 감지됐다. 기획관리실장이 말씀을 드렸던지, 부시장이 시장께 잘 말씀드려서 보고 날짜를 잡아 준 것이었다.

“당시에는 한달에 한번 시장이 주재하는 구청장, 실·국장, 과장회의가 열렸습니다. 부산의 모든 구청장과 시청 간부가 한자리에 모이는 회의지요. 아, 그런데 이 회의가 끝나고 바로 브리핑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전자결재라는 것이 없었다. 중요한 결재사항이나 건의사항은 백지 전지로 차트를 만들어 차트걸이에 걸어놓고 보고하곤 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백지 전지에 쓴 차트는 무려 100장, 혼자서는 들 수도 없었다.

“확대간부회의가 끝난 뒤 회의실에서 곰탕으로 점심을 때우고, 보고를 시작했습니다. 곰탕은 당시 꽤 유명했던 중앙동 옛 시청 앞 ‘천안드람집’에서 배달을 시켰습니다. 간부회의에 참석한 구청장, 실·국장, 과장 전원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무려 100장에 달하는 차트 보고과정에서 찬반논란이 이어졌다. 고성도 오갔다. 건설국장을 비롯한 기술직 국장들의 반대가 더 심했다. “그 막대한 돈이면 도로를 확장하겠다” “시가지 중심지역이 인근 산의 암반으로 매립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기술적으로 지하철 건설은 불가능하다….” 반대 목소리는 끝이 없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보고와 토론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반대 논리를 하나하나 설득하는데 무려 4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었다. 박영수 시장은 그 4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고, 보고와 토론, 설득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 과장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네. 지하철을 놓기는 놓아야겠구먼!”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1-08-0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86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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