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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16년 6월호 통권 116호 부산이야기호 기획연재

1970년대 부산경제 이끈 맏형, 사상공단 '산·강·사람' 조화로운 에코시티 발돋움

I♥Busan / 우리 사는 부산 / ⑮사상구

내용

 

낙동강을 사상구는 강선(降仙)이다. 신선이 강림하던 곳이다. 신선이 강림하던 명당은 강선대. 부산에는 강선대가 있다. 하나는 사하구 에덴공원에 있고 둘은 사상구 덕포동에 있다. 덕포동 상강선대, 하강선대가 그것이다. 덕포 이름은 덕개. 언덕이 있는 포구란 뜻이다. 포구 풍광이 빼어나 신선이 덕개 군데나 강림했다. 도시가 매립되고 개발되면서 포구는 사라졌지만, 바위 언덕은 그대로 남아 지명 유래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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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부산경제의 중심도시, 광역교통의 거점 도시, 생태환경의 강변도시, 활기와 건강이 공존하는 에코시티다(사진은 사상구 괘법동 감전유원지의바닥형 음악분수대모습. 분수대는 각종 첨단장치를 갖춰 수백 수천 가지의 아름다운 모형을 연출한다). 

 

조선시대 요지낙동강 홍수와 싸우며 성장

사상(沙上) 조선시대 행정지명이다. 조선시대 지방 행정지명은 단순했다. 행정 중심지인 성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으로 나누거나 성의 안과 밖으로 나누었다. 동면, 서면, 성동, 성서, 성내, 성외 하는 식이었다. 부산은 동래읍성을 중심으로 읍면과 동서남북 , 동평면과 사면(沙面) 두었다. 모두 7 면이었다. 인구가 늘고 마을이 커지면서 면을 늘릴 필요가 생겼다. 사면 역시 마을이 커졌고 면이 늘어난다.

면은 어떻게 늘렸을까. 요즘 동이 커지면 1·2·3동으로 분동하듯 조선시대는 상하로 나누었다. 동면은 동상면과 동하면, 서면은 서상면과 서하면으로 늘렸다. 그런데 상하 군데로 나누어도 부족해 상중하 군데로 나눈 데가 있었다. 부산에선 유일했다. 거기가 사면이었다. 사상면, 사중면, 사하면으로 나누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사면은 부산의 요지였고 번화가였다. 돈이 모였고 사람이 모였다. 조선시대 번화가의 추억을 지닌 곳이 사상이다.

사상은 인간 승리의 현장이기도 하다. 몇백 부산 토박이인 우리의 선조가 자연과 맞서며 자연을 달래며 마침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한 슬기로운 땅이다. 상강선대 오래된 비석은 선조의 슬기로움을 문자로 전한다. 도시철도 2호선 덕포역 1번과 3 출구로 나오면 상강선대고, 상강선대 입구에 오래된 비석이 모셔져 있다. 하나는 효자비고 셋은 동래부사 송덕비다. 동래에 있어야 송덕비가 여기 있는 그들이 베푼 덕이 일대에 두루 미친 연유다.

사상은 낙동강 하류. 홍수가 들면 강물이 범람해 피해가 막심했다. 강변에 둑을 처음 쌓은 때는 1788. 이경일 부사는 면민을 동원해 모라와 덕포 일대에 제방을 쌓았다. 5천여 마지기 등이 덕을 봤다. 이경일 제방은 갑술년(1814) 큰물로 무너졌다. 1831 동래부사로 부임한 박제명은 다시 제방을 쌓았다. 그때가 1832년이었다. 기장 500, 양산 700, 김해 800, 동래 6800인이 모라에서 주례까지 10 제방을 쌓았다. 10 제방은 1839 큰물이 들면서 무너졌다. 그해 부임한 이명적 부사는 이듬해 이웃 2600인과 동래읍 5천인을 동원, 3 초하루 공사를 시작해 26 끝냈다. 상강선대 송덕비 셋은 그러한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인간 승리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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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로 유명한 모라동에 위치한 운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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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낙조는 사상에서 바라보는 경치 가운데 가장 으뜸이다. 해질녘의 강변풍경은 아름다움 자체다

 

부산 경제부흥 이끈 맏이, 사상공단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상은 인간 승리의 현장이었다. 사상공단은 경제부흥을 도모하던 시절 부산을 먹이고 입히던 맏아들 맏딸 노릇을 부러지게 해냈다. 1968 터를 닦아 1975 선보인 사상공단에는 수출 위주의 노동집약형 공장이 들어섰다. 1968 터를 닦아 1975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경부선과 남해고속도로가 가까워 입지 선정에 유리했다. 사상공단에서 벌어들인 돈이 부산 전역으로 퍼지고 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 부산의 살림이 허리를 펴고 한국의 살림이 허리를 폈다. 허리띠 졸라매고 밤낮없이 일한 사상공단 근로자,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다. 자신은 악취나고 오염될망정 경제부흥의 기치를 드날린 사상,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성소였다.

부산경제 중심도시. 광역교통 거점 도시. 생태환경 강변도시. 활기와 건강이 공존하는 에코시티를 추구하는 사상의 지역 특성은 경제와 교통과 환경이다. 도심에 공업지역을 보유한 사상은 산업·물류·유통에 걸쳐 부산경제 중심도시를 지향한다. 그리고 공단이 철도와 고속도로를 보고 들어섰듯 공항과 항만, 육로가 연결된 서부산 관문 사상은 광역교통 거점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환경에 민감한 철새가 날아드는 자연생태 대명사인 낙동강 광활한 둔치는 사상이 생태환경 강변도시임을 웅변한다.

사상구 법정동은 모두 여덟이다. 삼락동, 모라동, 덕포동, 괘법동, 감전동, 주례동, 학장동, 엄궁동이다. 행정동은 열둘이며 2016 1 현재 세대수는 10 가까이 되고 인구는 24만명 가까이 된다. 삼락동은 생태공원에 낙동강오토캠핑장이 생기면서 도심 자연에서 캠핑을 즐기는 곳으로 주목받는다. 재첩국으로 유명한 재첩거리도 있다. 모라동은 천년 고찰 운수사가 유명하다. 덕포동은 강선대와 바위 언덕이 유명하고 경부선 기차역이 있는 괘법동은 사상 중심지이다. 1954 개교해 유서 깊은 신라대가 있고, 세계 신발산업의 '왕자' 국제상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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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락생태공원 야외수영장은 성인 , 물놀이 , 유아 , 탈의실, 샤워장 편의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그린웨이·생태체험길도심 자연 즐기는 시민 쉼터 다양

감전동은 '포프라마치' 유명했다. 수해를 막으려고 토종 포플러 나무를 많이 심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나무 아래서 생선회를 파는 술집이 있어 포프라마치라 했다. 조선시대 주례촌과 냉정촌으로 나뉘었던 주례는 동서대와 경남정보대가 들어선 대학촌으로 탈바꿈했다. 학장동은 이름부터 운치 넘친다. 학의 문장, 학장(鶴章)이다. 학성이란 옛날 성과 장문이란 마을을 합친 지명이다. 내원정사가 유명하다. 엄궁은 재첩과 민물고기 천국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여기서 낚시했다. 농산물도매시장이 성황이 이룬다.

사상의 걷기 좋은 길은 그린웨이로 통한다. 사상 그린웨이는 갈래다. 백양산 사색의 숲길과 엄광산에서 승학산에 걸치는 건강의 숲길, 그리고 갈맷길 6코스와 겹치는 삼락생태공원의 생태체험길이다. 운수사도 보고 청룡암도 보며 계곡 물소리도 들으며 걷는 사색의 숲길은 몸과 마음이 함께 푸르러지는 .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 간격을 좁히며 걷는 길이다. 건강의 숲길은 9㎞가 조금 넘는다. 도시철도 냉정역 1 출구에서 사상 마을버스 5-2번을 타고 동서대 민석도서관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엄광산 건강쉼터에 약수터가 있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갈맷길과 겹치는 생태체험길은 8.8. 걸으며 보는 노을은 언제 봐도 생애 마지막으로 보는 풍광 같다. 꽃향기 향긋한 감전야생화단지, ()문화마당, 4월의 사상 강변 유채꽃길 걷기대회, 8 한여름의 부산국제록페스티벌, 10월의 사상강변축제는 만사 제치고 눈에, 마음에 담아야 사상의 명물이다. 사상전통달집놀이도 이름값을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 낙동강 삼락생태공원에서 펼쳐지며 영남권에서 가장 달집태우기 행사로 호가 났다.

 

명진학교·사상구인의사연구제단역사 발자취 가득

사상의 역사적 기념물은 어떤 있을까.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179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도 있고 부산시 지정문화재인 유형문화재 91 운수사 대웅전 등도 있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으면서도 본보기가 기념물이 제법 된다. 앞서 언급한 송덕비도 그렇지만 '사립명진학교 석주(石柱)' '사상구인의사연구(戀舊)제단' 특히 새겨봐야 한다.

명진학교는 덕포동 사상초등학교의 전신. 일제에 맞서려고 지역 유지가 합심해서 1900년대 초반 세운 사립학교다. 학교 정문에 글자를 새긴 돌기둥 둘이 있었다. 하나는 慶尙南道釜山府沙上面(경상남도 부산부 사상면)이라 새겼고 하나는 私立明進學校(사립명진학교) 새겼다. 뒤엣것만 글자 () 깨어져 나간 개울 디딤돌로 쓰이던 것을 뒤늦게 건사해 사상초등학교에 두었다.

사상구인의사연구제단은 1592 임진왜란 참전 군인에 관한 기록이다. 왜란 7 전쟁을 마치고 환향한 사상 9인은 9인계를 조직해 초토화된 마을을 복원하고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냈다. 9 사후 후손들이 연구계(戀舊契) 결성해 연구제단을 설치하고 400 넘도록 제사를 지내왔다. 현재 연구제단보존회는 사상구인계와 뜻을 물려받은 연구계에 대한 기록, 사상 향약 문서 20 종을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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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공단을 품고 있는 사상구에는 걷고 싶은, 걷기 좋은 길도 갖춰져 있다(사진은 삼락생태공원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시민들 모습).


생활문화운동 민간 주도 지역활동 활발

'건강 UP! 행복 UP!' 사상구는 2011년부터 민간 주도로 사상구 생활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연중 캠페인으로 정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가자는 주민 운동이다. 올해 캠페인은 '건강도시 사상 만들기 운동'이다. 신나게 걷는 , 우리 동네 예체능, 동별 건강 프로그램, 야간 체조광장, 체육시설 지도 다양한 방법으로 건강지수와 행복지수를 높여 나간다.

사상구는 토박이와 어르신 비율이 높다. 그만큼 지역사랑이 비등하다. 그래서 옛것을 자발적으로 보존해 나가는 단체가 적잖다. 사상 9 의사의 연구제단 보존회가 그렇고 강선대 제사를 주관하는 진선회(津船會) 그렇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월급 받는 일도 아니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란 마음가짐으로 지역을 챙기고 옛것을 챙기는 사상구는 여러모로 본받을 만하다. 젊은이가 가진 식견으로 감당 못할 일이 있다면 사상에 가볼 일이다. 포구가 내려다보였을 바위 언덕에 앉아 오가는 어르신을 살펴볼 일이다.

' 푸른 백양산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함께 어우러진 사상구는 근대산업 발달의 근원지로서 근면과 성실로 새벽을 밝혀 한국경제와 부산 발전의 중심지로 가꾸어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터전이다.' 사상 구민헌장 전반부 대목이다.

사상의 산과 사상의 강과 그리고 사상의 사람. 산은 강에 스며들고 강은 사람에 스며들고 사람은 다시 산에 스며들어 산과 강과 사람이 공동체를 이룬 , 사상. 사상의 숨결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부산의 숨결이다. 푸르고 유장한 우리 사는 부산의 들숨 날숨이다.

 

작성자
동길산
작성일자
2016-05-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16년 6월호 통권 116호 부산이야기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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