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향토서점 순회 인문학강좌 열기 '훈훈'
- 내용
평일 오전 동네서점은 한산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군데 지역서점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작은 행사를 마련해 이웃 주민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향토서점 인문학 강좌’입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부산의 대표서점인 동보서적과 문우당이 잇따라 문을 닫은 후 향토서점 살리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산시도 부산지역 대학과 공공기관에 향토서점을 이용해 줄 것을 요청하는 협조 서한문을 보냈고 정부에 전 도서를 대상으로 한 도서정가제 시행을 건의했습니다. 또 내년에는 시청사 내에 구내서점을 열어 책 읽는 붐을 조성하고 부산시 서점조합이 주관하는 향토서점 관련 문화행사와 시민캠페인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이에 이번에 마련하고 있는 ‘향토서점 인문학 강좌’(부산시 서점조합 주관 / 향토서점살리기·부산시 후원)가 바로 그 첫 번째 자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난 14일(화)부터 오는 28일(화)까지 모두 다섯 차례, 각 지역 서점들을 순회하며 열고 있습니다.
박상수 부산시서점조합 대표는 “대형 서점들이 문을 닫은 후, 뭐라도 하자는 심정에서 시작한 행사라 많이 홍보도 못했는데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고 말하고 “서점이 책만 진열하고 파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언제든 와서 책을 보고 이야기 하고 정보를 얻고 차도 마시는 문화공간으로서 달라지겠다는 첫 번째 변화의 자리”라며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두 번째 인문학강좌가 열린 지난 16일(목) 남구 용호동 분포서점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지역주민들이 서점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며칠 전부터 내걸린 작은 안내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온 분들이었습니다. 백발이 아름다운 60대 어르신부터 얼마 전 수능시험을 마친 인근 대연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참석자들의 면면도 다양했습니다.
강의 주제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창조성과 정치학, 그리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류작가 토니모리슨의 소수자문학. 자칫 어려울 것 같은 내용이었지만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시작한 강의는 편안하고 훈훈했습니다. 공간이 좁은 탓에 참석한 분들은 의자 간격을 좁혀 어깨를 붙여 앉았고 사각형의 강의실을 벗어난 열린공간이라 누구나 마음 편히 동참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우연히 책을 사러 온 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더해 처음 10명 남짓이었던 참석자의 수가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서 20여명으로 불었습니다.
인문학강좌에 참석한 정국대 할머니(왼)와 김상헌군(오)참석한 분들의 만족도는 어땠을까요? 열심히 들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정국대(수영구 망미동?67세) 할머니는 “다소 자리가 좁아 불편했지만 평소 잘 들을 수 없는 인문학강의를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가까운 서점에서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친구들과 함께 온 김상헌(대연고등학교 3학년)군은 “수능 치고 할 일 없이 지내다 친구들과 오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진지한 시간이었고 이런 행사들이 서점에서 자주 마련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습니다.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고 하루만 기다리면 책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물량, 발 빠른 배송, 할인 등 온라인서점은 너무나 편리합니다. 그래서 한해 2조7천억원에 달하는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40%를 온라인서점들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예스24·인터파크·알라딘 등 온라인서점의 매출은 23%, 또 교보와 영풍·서울·리브로 등 서점대기업의 매출은 8.3%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의 서점은 지난해 21곳, 올해 17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서점은 270여 곳입니다.
누군가는 종이책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문제집만 파는 동네서점이 더 이상 필요하냐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으로 산책을 나가고, 서점 한 귀퉁이에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고, 서점 주인장과 몇 마디 인사 정도는 나누는 여러분이라면…… 서점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2010년 12월, 사람냄새 나는 인문학강의를 듣기 위해 동네서점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이 향토서점 살리기에 대한 더 큰 열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작성자
- 박영희
- 작성일자
- 2010-12-2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첨부파일
-
-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