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한 쌍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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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한 쌍 기억하시나요? 작년 이맘때쯤 가덕도에서 해운대로 떠들썩하게 이사 온 그 팽나무 말입니다. 해운대 쪽에 사시는 분들은 오다가다 목격하신 분들 더러 계시겠지만,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 참 많더군요. 눈물로 팽나무를 떠나보냈던 가덕도 율리마을 주민도 많이들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1년 전 해운대 APEC 나루공원으로 이사 온 가덕도 팽나무는 그런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런대로’라는 말은 한 그루가 아직 새 집에 적응 중이기 때문입니다. 큰 팽나무는 최근 싱싱한 잎을 무성히 피워 내고 있는데, 작은 팽나무가 그렇질 못합니다. 혹시 고사한 건 아닌지 쿵하는 마음에 물어봤더니, 약간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라네요. 이렇게 말해준 사람은 식물환경연구소 최인웅 대푭니다. 최 대표는 팽나무를 직접 가덕도에서 옮겨 심고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분입니다. 몸살을 앓고 있는 한 그루도 지금 나무 가지마다 순이 올라오고 있으니, 곧 잎을 피울 거라고 확신하더군요. 5월경엔 꽃도 피울 거라니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가덕도 팽나무가 집을 옮겨서도 잘 살까 하는 걱정은 두 그루 모두 300살의 노거수이기 때문입니다. 두 발로 온 천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나이가 들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적응하기 힘들다던데. 300년 넘게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팽나무가 낯선 곳에 다시 뿌리내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팽나무 입장에서는 생활환경이 180도 변했을 겁니다. 가덕도에서는 아침에 새 소리 듣고 깨고, 밤에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잠을 자던 생활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300년 동안이나.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차 소음에 시달리고, 밤마다 휘황한 불빛에 시달리면서 잠이나 제대로 잤겠습니까. 몸살 하는 게 당연합니다.
300살이 넘은 가덕도 팽나무들이 그토록 불편하고 낯선 곳으로 몸을 옮겨야 했던 부득이한 사연이 있습니다. 1년 전가덕도에 일주도로 공사, 항만 공사가 잇따르면서 고사위기에 처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주민들이 다른 곳에 옮겨서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간절히 요구한 겁니다.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마을을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나무를 죽게 만들 수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 부산시는 난감했습니다. 한 그루가 높이 20m, 무게 70t에 달하는데, 거대한 나무 두 그루를 어디로 옮길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부산시는 당시 운반과 옮겨심기가 용이한 곳, 노거수가 생존하기 좋은 입지, 상징적 의미가 큰 장소를 물색한 끝에 해운대 APEC 나루공원으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APEC 나루공원은 우동항에서 1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팽나무가 잘 적응만 하면 부산 대표 명품수목으로 각광 받을 수 있는 장소로 그저 그만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노거수는 한번 눕혔다 일으키면 뿌리가 대부분 떨어져 무조건 죽습니다. 많은 서울 업체들이 달라 들었다 포기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고심 끝에 뿌리에 철 구조물을 씌우는 방법을 개발해 실뿌리까지 모두 살릴 수 있었어요.” 최인웅 대표는 당시 팽나무 수송작전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거대한 팽나무 두 그루를 옮겨 심는 작업을 지난해 3월29일~30일 1박2일에 걸쳐 감행했습니다. 조경 전문가들을 대거 동원한 말 그대로 대규모 수송작전 이었습니다. 팽나무를 한 그루씩 나눠 실은 대형 바지선 두 척이 율리항을 떠나 몰운대~영도~오륙도~광안대교를 거쳐 우동항에 도착하는데만 장장 8시간이 걸렸습니다. 팽나무의 안정을 위해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동항에서 APEC 나루공원까지는 대형 트레일러 두 대에 실어 옮겼는데, 새벽시간에 맞춰 도로통제는 물론 신호등과 전깃줄, 전화선까지 모두 걷어낸 뒤 다시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가지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팽나무 수송과 이식작업에 들어간 비용만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인 2억5천만원. 극진한 모셔오기였습니다.가덕도 팽나무는 해운대로 옮겨 온 이후에도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혹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할까 가덕도 고향의 흙을 직접 공수해 왔고, 비싼 왕마사까지 동원해 최대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 전용 스프링클러도 설치해 하루에 2시간씩 꼬박꼬박 물을 주고 있습니다. 온갖 영양제를 수시로 먹이는 것은 물론이지요. 팽나무를 관리하는 분들의 정성도 진짜 집안 어르신 모시는 만큼 극진합니다. 최인웅 대표뿐만 아니라 나루공원을 관리소 한용영 반장, 해운대 늘푸른과 김익훈 계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나무 상태가 어떤지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런데 팽나무 전용 스프링클러 때문에 지난해 민원이 생겼다고 하네요. 스프링클러 물이 보도에까지 뿌려져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겁니다. 한용영 반장은 “그 민원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두어 달 물을 제때 못줬는데, 그래서 한 그루에 잎이 안나나…”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조경에 20년 동안 종사한 노하우를 자랑하는 최인웅 대표는 두 그루 다 1년을 잘 버텼기 때문에 고사할 걱정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몸살 중인 한 그루도 조만간 툭툭 털고 건강한 모습을 찾을 거라는 군요. 믿고 기다릴 수밖에요.
가덕도 율리마을 주민 여러분, 너무 걱정 마시고 5월 꽃 피면 팽나무 한번 만나러 꼭 오세요.^^
- 작성자
- 글/구동우·그림/문진우
- 작성일자
- 2011-04-2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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