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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780호 전체기사보기

부산 현대사 DNA 품은 오래된 아파트, 다시 부산을 이야기하다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 대안문화공간
산복도로 르네상스 연계 프로그램 기획
부산 문화 새로운 심장으로 도약 포부

내용

수정동 산복도로에 사진 전문 갤러리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갤러리 수정이다. 갤러리 수정은 개관과 동시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갤러리가 자리 잡은 공간성 때문이다.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공원남로 28  4동 A408호. 갤러리 수정의 공식 주소다. 한 줄의 주소는 단순하고 건조하다. 그러나 도로명과 건물번호 뒤에 '수정아파트'라는 명사를 덧붙이는 순간, 단순하고 건조한 한 줄의 문장은 부산의 현대사가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이행한다. 갤러리 수정이 둥지를 튼 곳은 부산 현대사의 기원이자 DNA가 시작된 수정동 산복도로에 있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낡은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갤러리 수정이 입주한 수정아파트. 1969년 건립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사진· 문진우 

▲갤러리 수정이 입주한 수정아파트. 1969년 건립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갤러리 수정은 '수정아파트' '4호동'에 자리 잡고 있다. 수정아파트는 1969년에 완공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17개동 1천164세대에 전용면적 36.36㎡(11평) 규모의 서민 아파트다. 산복도로에 있는 많은 집들이 그렇듯이 이곳 주민 대부부은 혼자 사는 어르신이다. 산꼭대기 낡고 오래된 아파트는 이곳에 사는 이들과 함께 나이들어 간다. 동네는 한적하고 고요하다. 개발의 시대에는 이곳 에도 활기가 넘쳤다. 11평짜리 집에 네다섯 식구가 살던 시절이었으니, 상주인구는 4천여 명에 육박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떠난 수정아파트는 예전의 활기는 찾을 수 없다.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어르신들만 남아 낡은 아파트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적막강산처럼 고요하던 수정아파트에 활기가 피어오른다. 모두가 떠난 이곳에 젊은(?) 사진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십대의 한 시절을 수정아파트에서 살았던 사진가는 겁도 없이 수정아파트 A408호에 갤러리를 차리고 지난 20일 문을 열었다. 갤러리 수정이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늙은 동네에 스스로 둥지를 튼 이, 풍차를 향해 돌격하던 돈키호테를 연상시키는 무모한 젊은이는 사진가 윤창수(48)다. 그는 4호동 A408호를 리모델링, 갤러리 수정을 열고 개관 기획전 '빈'을 시작하며 새로운 공간의 탄생을 알렸다.


갤러리 수정 복도. 갤러리 수정은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수정아파트의 정서를 오롯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진· 문진우
▲갤러리 수정 복도. 갤러리 수정은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수정아파트의 정서를 오롯하게 간직하고 있다.  

 

윤창수 씨는 이십대의 몇 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선친을 저 먼 별로 떠나 보낸 곳이기도 하다. 꿈도 희망도 찾을 수 없어서 떠났던 곳을 오십을 바라보는 장년이 되어 다시 찾았다. 그는 낡은 것에서, 변방에서, 모두가 외면하는 곳에서 새로운 ' 길'을 열고 싶었다고 했다.
 

"두달동안 직접 리모델링했습니다. 기존 갤러리와는 사뭇 다른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지요."
 

갤러리 수정을 통해 윤 씨가 꿈꾸는 것은 기존의 세상에 저항하는 새로운 변혁이다. 새 것, 빠른 것, 편리한 것을 좇는 대신 낡고 오래된 것, 느린 것, 불편한 것들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수정아파트는 그의 신념을 드러내어 보이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었다. 
 

리모델링 원칙은 단 하나. 아파트의 원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것. 작가의 세심한 작업 덕분에 갤러리 수정에 들르면 사진 구경은 물론 한때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꾸렸던 부산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천장이 밑으로 내려온 자리는 윗집 연탄 아궁이가 있던 자리다. 북항이 내려다보이는 창앞에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물을 쓸 수 있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설거지를 하고, 세수를 하고, 빨래를 했다. 빗물 자국이 얼룩 무늬를 그려낸 천장 도배지는 칠십년대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전시 사진에서 보이는 수정아파트의 풍경은 갤러리의 공간속에서 생생한 역사로 살아난다.
 

11평짜리 갤러리는 상상력의 힘으로 둘러보면 무궁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도 봉래산과 북항이 내려다보이는 세면장에는 요강이 놓여있다. 현재 수정아파트 가구에는 대부분 요강을 사용한다. 집안에 개별 화장실이 없고, 공동화장실을 쓰기 때문이다. 층마다 공동화장실이 있지만 칠십대 이상 어르신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자다가 요의를 느껴도 공동화장실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아서 지금도 요강을 사용한다. 창틀 아래 놓인 요강은 이곳의 삶을 보여주는 생생한 오브제이자, 갤러리 수정이 지향하는 가치를 말해주는 기호다.

 

갤러리 수정 내부.
▲갤러리 수정 내부.
 

수정아파트로 오르는 길은 부산 현대사의 DNA를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아파트에는 창틀마다 철제 프레임으로 한 뼘씩의 공간을 허공에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작은 옹기와 화분을 내어 놓았다. 이곳 사람들은 허공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며 남루한 삶을 확장시켜 왔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듯, 허공으로 영토를 확장시키며 시간을 견뎌온 이들의 삶을 웅변한다. 그리고 그곳에 막 풀씨 하나가 도착했다. 갤러리 수정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 갤러리 수정 =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시내버스 52, 86번 수정아파트 하차. 문의 (051-464-6333)

작성자
글·김영주 / 사진·문진우
작성일자
2017-05-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780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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