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공장의 이유있는 변신…문화와 여유, 낭만을 품다
I♥Busan / 부산 나들이 / F1963(옛 고려제강 수영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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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축복, 바로 고려제강 수영공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검은 쇳가루가 날리고 소음으로 가득했던 건물이 ‘F1963’이란 이름표를 달고 복합문화공간으로 부산시민의 품에 안겼다. 새로운 예술의 장으로 떠오른 ‘F1963’의 ‘F’는 Factory(공장), Fine Art(순수미술), Forest(숲), Family(가족)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1963’는 공장이 설립된 연도다. 부산의 대표적 ‘메세나(기업들이 문화예술에 적극 지원함으로써 사회 공헌과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활동)’가 된 ‘F1963’는 2008년까지 와이어 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지금은 이곳에서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란 주제로 지난 9월 3일부터 열린 ‘2016부산비엔날레’의 ‘프로젝트 2’가 진행되고 있다.
F1963으로 들어가는 길은 2군데. 그중 하나가 맹종죽 숲길을 따라 난 산책로를 걸어가는 것이다. 와이어 제조설비가 있던 공장부지에 맹종죽 숲을 만들었다. 산책로는 공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잘라 만들었다. 곧게 뻗은 대나무가 와이어를 닮았다. 올곧으면서도 유연한 대나무의 성질이 와이어와 닮았다.
세 개의 네모로 이뤄진 ‘F1963’
F1963은 세 개의 네모로 이뤄졌다. 가운데 가장 작은 네모는 중정이다. 중정은 음악회, 세미나, 파티 등을 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다. 천장이 뚫려 있고 바닥은 흙으로 채워져 있어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돼 예술을 완성시킨다.
중정을 둘러싼 두 번째 네모는 상업공간이다. 카페 ‘테라로사’와 체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프라하 993’이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 가장 큰 네모는 전시 공간. 지금은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전시장뿐만 아니라 도서관, 서점 등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넓은 내부, 거칠고 오래된 공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실내 인테리어가 무척 이국적이다. 천장은 공장의 골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작업장 바닥이었던 두꺼운 철판은 52m의 긴 탁자로 변신했다. 작은 조명이 있고 책이 가득 꽂혀 있어 북 카페 같은 느낌을 준다. 책은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책은 구매할 수도 있다.
▲ F1963 카페 ‘테라로사’는 옛 와이어공장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실내장식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와이어공장 분위기 그대로 살린 카페
탁자가 된 철판 위에서 독서와 휴식이 어우러진다. 와이어를 감았던 크고 작은 보빈은 버리지 않고 군데군데 놓아 장식 소품으로 활용했다. 크기가 사람 키만한 것부터 무릎높이까지 다양하다. 와이어가 감겨있는 보빈도 있어 이곳이 와이어 공장이었음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입구부터 카페 곳곳에 설치된 와이어는 손몽주 작가의 작품이다. 고려제강에서 와이어를 제공받아 만든 작품이라 더 의미가 있다. ‘테라로사’는 다양한 종류의 원두로 내린 커피와 갓 만든 빵으로 유명하다. 해운대와 가까운 지리적 요건으로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다. 커다란 커피나무 화분 사이에 소품으로 설치한 대형 로스팅기계가 커피공장의 위엄을 보여준다.
주문과 동시에 내려주는 핸드드립이나 부드러운 거품으로 멋을 낸 라떼를 들고 창가 자리에 앉으면 외국의 낯선 카페에 온 것처럼 이국적 분위기에 홀린다. 실내뿐만 아니라 뜰에서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공연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복합문화공간, 문화 불모지였던 폐 공장의 환골탈태는 예술적 상상력의 결과다.
▲ F1963 가운데 위치한 중정은 천장이 뚫려있는 야외공연장이다.
▲ F1963 입구의 맹종죽 숲길.부산에서 맛보는 체코 전통 맥주·요리
중정을 가운데 두고 테라로사와 마주보고 있는 공간에는 ‘프라하 993’이 있다. 천년 전통의 체코 양조장의 비법으로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체코 정통 맥주의 신선한 맛은 맥주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지금은 양조장 시설이 준비 단계라 체코 현지에서 만든 맥주를 제공하고 있지만 연말부터는 부산에서 만든 체코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체코 셰프가 만드는 현지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메뉴들이 많지만 맛은 일품이다.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해외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프라하 993’ 야외 테이블에는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유쾌한 시간이 알맞게 취해간다.
부산비엔날레가 열리는 동안 중정에는 부산비엔날레 ‘채널B’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채널B’는 부산과 세계 예술가들이 펼치는 공연프로그램이다. 재즈부터 힙합까지 장르는 다양하다. 해가 지고 무대에 불이 켜졌다.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로 모인다. 공연은 주말 오후 6시부터 8시 30분까지다.
▲ F1963 전시공간에는 ‘2016 부산비엔날레’가 한창이다(사진은 전시를 관람하는 시민 모습).거칠고 동적인 전시장, 작품 더 돋보여
가장 바깥에 있는 네모는 전시장. ‘F1963’의 첫 야심작인 ‘2016 부산비엔날레’의 ‘프로젝트2’가 11월 30일까지 열려 복합문화공간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 개막과 동시에 기발하고 실험적인 예술작품들이 높은 평가를 받아 입소문을 타면서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전시실은 낡은 공장의 컴컴한 어둠을 배경으로 작품의 개성이 도드라진다. 예술가들의 퍼포먼스와 영상미디어 작품이 주는 문화 충격이 신선하다. 공장의 골조와 벽을 그대로 노출시켜 거칠고 동적인 전시실의 특성이 작품에 힘을 실어 주었다는 평이다. 전시장은 비엔날레가 끝나면 24시간 개방형 도서관과 서점 등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채로운 예술 공간들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2016 부산비엔날레 입장권은 1만2천원. 한 장을 구매하면 부산시립미술관과 F1963 전시 모두를 볼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저녁 6시. 토요일은 9시까지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장 입장은 전시 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비엔날레 전시 관람을 하고 싶다면 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야 한다.
고려제강 역사·와이어 알 수 있는 ‘고려제강 기념관’
‘F1963’에서 나와 300m가량 고려제강 본사 방향으로 올라가면 와이어로 만든 아름다운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고려제강 기념관(Kiswire Museum)이다. 고려제강 기념관은 고려제강과 와이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어 갈 수 있는 흥미진진한 공간이다. 입구에는 와이어로 만든 코끼리가 서 있다. 여러 가닥의 와이어가 서로 지지하도록 설계된 내부 공간에는 기둥이 없다.
1층 홍보관은 고려제강의 역사, 기업철학과 비전, 와이어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특히 부산을 대표하는 광안대교 현수교를 지탱하는 와이어가 전시돼 있다. 2층은 와이어 뮤지엄으로 흥미로운 와이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모형, 영상 등 다양한 전시 콘텐츠로 채워져 있다. 벽에는 중세에 와이어로 갑옷과 철모를 만드는 과정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높이가 다른 두 공간을 연결하는 램프를 따라 오르면 건물 벽을 뚫고 야외정원으로 나오게 된다. 야외정원에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언덕을 그대로 살려 관람석을 만들고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해 놓았다. 고려제강 기념관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은 상시 개방이지만 이후에는 미리 예약한 후 방문해야 한다.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룬 공간. 옛 공장의 흔적을 간직한 철판은 탁자가 되고, 지붕을 받치던 나무는 벤치가 됐다. 그 안에는 예술과 문화, 여유가 채워졌다. 커피향이 떠도는 낭만적인 가을, ‘F1963’에서 예술의 품격을 만끽하길 권한다.
주소 : 부산 수영구 구락로 123번길 20
도시철도 : 도시철도 3호선 망미역(2번 출구) 하차 → 수영구 2번 마을버스 환승 → 산정아파트 정류장 하차
시내버스 : 54번 고려제강 정류장 하차
- 작성자
- 글 이영옥 시인 / 사진 권성훈
- 작성일자
- 2016-10-3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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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2016년 11월호 통권 121호 부산이야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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