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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못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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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아가~ 밖에 한번 나가보고 싶구마.”
“안돼! 할머니~ 감기라도 들면 어쩔러고~”

할머니는 거실 창가에 앉아 세상 밖의 냄새를 마음으로 맡고 계셨다.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 그리고 세상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의 냄새. 온종일 무릎위에 담요를 덮으시고 손에는 장갑을 끼시고 털모자를 눌러쓴 채, 남은 날들을 그렇게 채워가고 계셨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0년 동안. 할머니가 생을 이어가신지 90년이 될 때까지. 혼자 조석을 챙기시며 사셨다. 초하루가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시러 절에 다니셨고, 할머니 마당에 걸려있는 깨끗하고 하이얀 행주는 할머니의 정갈한 마음을 나타내기에 아낌이 없었다. 그랬던 할머니가 2년 전, 눈길에 미끄러지셨고. 뼈가 약해질 대로 약해지셨던 때라 고관절 골절을 당하셨다. 병원에서는 연세가 있으셔서 수술이 아주 위험하다고 저어했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할머니는 병상 생활을 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시게 된다고 했다. 노인들에게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낙상이고 낙상으로 인한 고관절 골절은 사망으로 이르게 하는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가족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고, 할머니를 그냥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할머니는 대수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수술을 잘 받으셨고, 회복도 더뎠지만 좋았다. 하지만 수술 후 몸이 급격히 쇠하셨고, 언젠가부터 작은 감기에도 폐렴 증상을 앓으실 만큼 몸이 약해지셨다. 할머니는 그렇게 2년 동안 서서히 본인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날들을 보내셨다.

할머니는 내겐 특별한 분이시다. 어릴 적 엄마가 이유 없는 병증으로 인해 자주 아프셨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엄마의 자리를 메워주셨다. 나는 기억한다. 어린 손녀에게 혹시나 엄마의 자리가 없어 질까봐 아직 채 날이 밝기도 전인 깜깜한 새벽, 어둠을 뚫고 항상 하얀 백자 그릇에 정안수를 떠놓고 할머니는 손이 마르고 닳도록 비셨다. 부처님에게 진심으로 기도하셨고. 새벽녘 늘 오줌이 마려웠던 나는 그렇게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할머니의 조그맣고 나직한 기도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할머니의 기도는 내게는 자장가였고, 어릴 적 가장 큰 평화였다.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할머니는 혼자 생활 하실 수 없게 되셨고. 우리 가족의 뜻대로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치맛자락에서 자란 나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고, 내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다리 근육이 빠지기 시작하셨고, 외출이 힘들게 되셨다. 그런 할머니는 늘 거실 창가에 앉아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세상의 냄새를 맡고 싶어 하셨다.

“아따, 저 집에는 오늘 된장찌개 끓이는 갑따. 냄새가 구수흐네~”

할머니의 코와 귀는 어두워지는 눈에 비해 점점 더 맑고 밝아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어두운 거실에서 어두워진지도 모른 채 거실 창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순간 울컥했다.

“불도 안켜고 뭐하고 있노.”

볼멘소리가 나왔다. 할머니는 나를 돌아보며, “쩡아~ 혹시 내일 시간 있나?”하고 물었다. 대답을 않고 있는 내게 “바다가 한번 보고 싶구마.” 라고 예전 할머니의 기도소리만큼이나 작고 나지막한 소리로 혼잣말을 하셨다.

그 소리는 분명 할머니의 기도소리였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휠체어를 차에 싣고, 털모자에 무릎담요, 혹시나 감기가 걸리실까봐 가을 날씨에 어그 부츠까지 신겨드리고 해운대로 향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해운대 바닷가는 사람들 소리로 파도 소리로 가득 찼고, 할머니는 그렇게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셨다.

“니 할아비 돌아가시고 30년이가? 그 긴 시간동안 마~이 힘들었다. 그때마다 부처님을 찾았고, 그래도 안되면 이따금씩 여~를 안 왔나.” 할머니는 그렇게 바다 냄새를 가슴 깊이 마셨고, 어두워진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셨다.

“다~보이는 것 같다. 예전에 여는 아무 것도 없었는디~ 참 많이 변한 것 같네. 아무~것도 없었지. 바다 밖에. 이 바다가 없어심 내 이래 오래 살았겠나 싶다.”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때 아버지를 잃으셨고, 한국전쟁 때 하나밖에 없는 오빠를 잃었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을 하며 한참 나라 경제가 살아날 때 남편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내시며 8남매를 훌륭히 키웠고. 그 시간동안 해운대 바다는 할머니에게 아버지였고 친정오빠였으며 남편이었다.
바다를 보시고 돌아오신 날, 할머니의 잠든 얼굴은 참으로 평온했다.

한줌 재로 변한 할머니의 마지막을 눈물로 보내며, 뜨거운 불길 속에 남은 것은 할머니의 고관절 수술 때 박아 넣은 철심 하나였다. 생각보다 크고 긴 쇠못 이었다. 얼마나 아프셨을지. 그 큰 철심을 다리에 박고, 얼마나 아프셨을지. 마음이 저려왔다.

쇠못은 90평생을 자신을 지워가며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셨던 세월의 응어리 같았다.
아마도 우리는 짐작도 못할 할머니의 아픔이 쇠못보다 더하게 가슴 깊이 박혀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가신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10월 할머니와 함께 찾았던 바다를 보러 오늘 해운대 바다를 보러왔다.
‘철썩~’ 파도소리에 할머니의 모습이 내 가슴까지 밀려와 부딪친다.

‘처얼썩~ 철썩~ 보고 싶은 우리 할머니~’

작성자
이윤정
작성일자
2013-11-25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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