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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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나는 부산을 6주 연달아 방문했다. 작가 헤르만 헤세는 독일의 ‘뷔르츠 부르크’를 사랑하고, 헤밍웨이는 스페인의 ‘팜플로나’를 사랑한 것처럼 도시 그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헤르만 헤세는 “내가 고향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단연 뷔르츠 부르크.” 라고까지 말하였다. 나 역시 “내가 고향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단연, 부산.” 이라고 말할 것이다. 전주에서 부산까지는 약 세 시간의 긴 시간이 걸린다. 버스가 전주 터미널을 떠나서 달리기 시작한다. 전주에서 있었던 모든 과제, 골칫거리, 찌들은 관습들에게 통쾌하게 손을 흔든다. 이제 막 버스가 출발했을 뿐인데, 부산행 버스에 몸이 담겨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은 탁 트인다. 스스로에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냐고 물은 뒤, ‘나는 지금 부산에 가고 있다.’ 라고 대답하면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6주를 연달아 방문하는 내내, 부산으로 출발하는 버스에서 나는 그러했다.
수많았던 부산 여행이 떠오르지만, 이 글에서는 부산의 좋은 인연과 함께했던 그 날을 적어 보려고 한다. 지난 7월 중순, 부산에서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도움을 받게 되어 다음에 밥 한번 사겠다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었는데, 그에게 부산에 조만간 갈 것이라고 하니, 그는 흔쾌히 가이드 역을 자처했다. 부산에 놀러갈 때마다 같이 내려간 친구들과 함께였고, 부산사람들은 늘 낯선 이방인이었는데 부산사람과 함께하는 부산 여행은 조금 더 부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주말,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처음으로 부산 터미널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내 이름이 크게 적힌 플랜카드는 없었지만, 그는 환한 미소와 큰 손인사로 날 맞이했다. 그리고서는 고맙게도 내 무거운 짐을 건네받아 들어주었다. 여행준비로 한 짐 바리바리 싸서 들고 다니다 보면, 부산의 시민들이 부럽다. 가벼운 옷차림, 가벼운 신발. 그들은 가벼워 보인다. 내 가방 속에는 온갖 화장품, 편한 신발, 속옷, 손수건 등등이 들어있다. 그가 무겁고 잡동사니 가득한 내 가방을 슬쩍 보더니 장난 섞인 말투로 물었다. “니 가출했나”
도시의 언어들은 생경스럽게 들려온다. 사투리들이 서라운드로 내 귀에 들어온다. "맞나." "밥 뭇나." 피식 웃음이 난다. 영화 속, 티비 속에서만 들었던 부산 사투리가 일상이다. 그는 맨 처음 해운대에 가자고 했다. 부산 방문할 때마다 갔던 해운대지만, 이번엔 그가 자신만 아는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하여 흔쾌히 향했다. 해운대는 모래사장과 바다가 전부인 줄만 알았는데, 해안선을 쭉 따라 걷다보니 처음 보는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따라서 산책로처럼 길이 나있었다. 처음 가보는 길을 걸으며, 새로운 사람의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유년시절에 담겨있는 부산부터 군 제대 후 과장 섞인 알바 무용담까지, 그의 일상 속 에 담겨있는 부산이야기가 좋았다.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을 걷다보니 누리마루가 나왔고, 누리마루도 지나 한 참을 걷다보니 그가 좋아하는 장소가 나왔다. 그 장소는 황당하게도 아파트 주차장이었다. 어처구니없었지만 바다를 끼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 걸터앉아 도시의 불빛이 바다에 일렁이는 야경을 보고 있으니 아름다웠다. 그는 가끔 우울할 때 친구하와 여기 앉아 맥주 한잔 씩 한다고 했다. 궂이 찾아서 오지 않을 것 같은 장소였지만,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장소라고 열렬히 주장하는 그를 보다가 웃음이 났다.
다음 장소는 광안리였다. 어느 덧 저녁 식사를 할 시간 이었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길에 그에게 맛있는 집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자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꺼냈다. 부산 맛집, 부산 명소 이런 건 관광객들이나 찾아보는 줄 알았는데, 부산 사람인 그도 네이버에 ‘부산 맛집’을 치고 있었다. 부산 사람도 저렇게 찾아보는 구나 싶어 재밌었다. 결국 그는 꽤 괜찮은 레스토랑을 알아냈고 지하철에서 내려 우린 그 곳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장소가 외진 데 있어서 우리는 한 참을 걸었다. 길을 헤매면서도 우리는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웃고 또 웃었다. 길을 물어 거의 30분 후에야 음식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찾아온 보람이 있게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양이 많아서 서로 배가 빵빵해지고도 음식이 남았다. 둘 다 배가 불러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을 때, 미덕인 양 남은 피자 한 조각을 그에게 건네니 그는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라는 얼핏보면 굉장히 다정한,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논리로 나에게 다시 피자를 권했다.
배도 부르고 광안리 야경은 멋지고, 칵테일 한 잔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거리 술집마다 사람들이 하하호호 이야기 중이다. 그 풍경들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부산은 정이 많은 도시로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이 끈끈해 보인다. 바다를 낀 술집에서 저녁에 친구와 술 한 잔 한다는 것이 부산사람들에겐 일상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그와도 한 칵테일 바에 들어섰다. 칵테일 메뉴판을 읽어보다가 둘 다 민망해지면서 웃음이 터졌다. 칵테일 이름 중에 ‘오빠 나 오늘 집에 안갈래’, ‘정자와 난자’ 라는 칵테일이 있었다. 순수하게 무슨 맛인지 궁금하여 ‘오빠 나 오늘 집에 안갈래’를 한잔 시켰다. 칵테일을 마시면서 오늘 하루 동안 구경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들로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고, 신나게 부산을 누볐던 다리가 지친 듯 신호를 보내왔다. 그는 나를 숙소에 바래다주면서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 터미널까지 에스코트해주겠다고 하였다. 그와 나는 오늘이 두 번째 만나는 사이다. 버스 터미널에서부터 칵테일 바에 올 때 까지 우리는 많이 친해졌다. 그 덕분에 나는 부산을 덜 유난스럽게 바라볼 수 있었고, 깊이있게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여서 오늘 하루 찍었던 사진들을 몇 장 넘겨보다가 기분 좋은 피곤이 몰려오면서 금새 곯아떨어졌다.
날이 밝았고, 숙소 앞에는 터미널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가 환한 얼굴로 서있었다. 버스 출발까지 한시간 정도 시간이 있어 터미널 앞에 있는 돼지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는 이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말하며 맛있게 잘 먹는다. 나도 맛있게 잘 먹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말했다.
“나 니 맘에 드는데, 나랑 사귀자.”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내 얼굴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무슨 그런 이야기를 돼지국밥 먹다가 해”
“싫나?”
“좋아.”그렇게 부산 가이드였던 그는 앞으로도 쭉 내 가이드가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는 부산에 있고, 나는 전주에 있다. 아마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쓰여지고 있는지 그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부산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조금 특별했던 이번 부산 여행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돌아오는 겨울에는 부산에서 일주일 동안 게스트 하우스를 잡고 주민행세를 해 볼 작정이다.
나는 왜 이렇게 부산이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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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최문주
- 작성일자
- 2013-11-2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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