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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끝 자락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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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해운대 방파제에 서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탓일까, 밤바다가 그리웠다. 소리 없는 나의 울음도 파도소리에 파도를 탔다. 얼마나 오랜 세월 바위에 부딪치고 거친 풍파와 싸웠으면 이리도 짤까. 생활에 지친 나를 꼭 닮은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지나 간 시간들을 반추하면서 해운대 밤바다를 마냥 걸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힘들었던 나를 파도 위에 올려놓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살아있음이 눈물겹다. 몸살을 앓고 난 파도는 살아서 춤을 추었고 내 머릿속은 온통 잿빛으로 흐릿하다. 밤새도록 시의 운율처럼 파도소리는 곡선을 타고. 나는 뒤척이다 눈을 떴다.

다음 날 아침 그냥 귀가하기가 서운해 오랜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연락 없이 왔건만 금방 답이 왔다. 반가웠다.잊고 살았던 그 친구가 유난히 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도깨비처럼 갑자기 무슨 일이냐며 묻는 친구. 친구가 있는 사무실까지 한참을 걸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최대 항구도시인 부산에서 ‘공인중개사’ 간판을 걸어놓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 친구가 자랑스럽다. 친구의 얼굴에는 중년의 열정과 삶의 편안함이 보였다.

우리는 마주 앉아 유년시절 친구 이름 하나 하나 더듬으며 얼굴빛이 밝아지고 침 튀기며 웃었다. 이렇게 눈물나게 웃어 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친구란, 언제 만나도 할 말이 깨알처럼 쏟아진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 같다. 자갈치 시장 구경도 하고 회를 먹자는 말에 나는 소녀처럼 좋아했다. 또 다른 친구가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다를 떨며 한참을 돌고나서야 자갈치 시장이 나왔다.

시장 입구를 들어서자 비릿한 생선냄새는 비옷처럼 내 몸에 달라붙는다. 왁자지껄 자갈치시장 아지매들의 특유한 목소리는 오월의 햇살만큼이나 생동감이 넘쳤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기력했던 나에게도 활력소가 되었다.

수족관 고기들은 갇힌 줄도 모르고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다닌다. 그 모습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건드린다. 얼마나 몸부림치며 탈출을 시도했던지 튀어나온 눈이 더 튀어 나와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몸부림친다. 그물에 찔려 지느러미 상처 때문에 엄살이라도 부릴 법도 하건만 투정하는 법을 몰라 바닥을 기고 있다. 잡힌 고기들의 답답함은 매일 매일 지루한 나의 생활을 보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운명을 전혀 모르는 가오리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코 평수 넓혀가며 벌렁대고, 키조개는 단단한 갑옷을 입고서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큰 입을 다문 채 말이 없다. 붉은 젖꼭지가 주렁주렁 달린 우렁쉥이는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물총을 쏘아대지만 화장을 곱게 한 아지매 손에 잡히면 반항 하는 법을 몰라 자신을 내준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입에 침이 고였다. 사람 눈을 피해 바닦에 엎드린 가재미도 도마 위에서는 숨을 죽였다

우리들은 이층 ‘용궁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유리창 넘어 해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무거운 엉덩이를 방석위에 내려놓고 봇물처럼 쏟아내는 수다삼매경에 입술이 떨린다. 조금 전까지 휘젓고 다니던 우럭, 도미가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서 내 앞에 얌전히도 누워 있다. 물총을 쏘아대던 우렁쉥이와 전복도 함께 따라왔다.

제다리가 잘린 줄도 모르는 낙지는 참기름 옷을 입고서 접시 밖으로 기어가다 나무젓가락에 붙잡혀 어둠속으로 들어가서야 조용했다.

상위에 올라온 싱싱한 해삼물이 바닥을 드러내자 칼칼하고 얼큰한 생선탕이 나왔다. 얼굴 맞대고 한참을 먹고서야 시장 밖으로 나왔다.

은빛 자태를 뽐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도 방향감각을 잃었는지 길게 드러누운 갈치를 보자 갈치조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몇 마리 사 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샛길 모퉁이 좁은 길로 들어가니 생선들이 가지런히 구워져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어쩜 살아 움직이는 모양을 그대로 살려 예술적으로 구워냈을까. 집안 대소사를 치러야 하는 나는 흐트러짐 없이 구워놓은 생선들에 자꾸 눈이 갔다.

다음은 남포동 먹자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 온 것은 국화빵, 배고픈 시절 읍내 빵집에서 먹었던 그 국화빵은 나이를 먹어서도 추억 속에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국화빵이다. 소리를 질렀더니 함께 걷던 친구가 ‘사줄까’
먹고 싶었지만 배가 불렀다. 먹자골목 냉면국수도 눈으로만 먹어야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려다보이는 커피숍에서 중년의 세 여자는 타임머신을 되돌려 유년시절의 추억을 커피에 섞여 마셨다. 얼마만의 여유인가. 행복했다. 두 친구도 행복해보였다. 분위기에 어울리게 함께 온 친구가 커피 값을 지불하면서 계단 오르내리기도 숨차다며 너스레를 떤다.
종일 다니면서 먹었더니 하마몸뚱이처럼 커졌다. 걷기도 힘겨운데 ‘씨앗’ 호떡 앞에서 또 우리를 유혹한다.
‘사줄까’ 그냥 웃어 넘겼다.
돌아다니다 배 꺼지면 또 사주겠단다. 그날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날 같았다. 친구의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또 다른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바쁜 시간 쪼개 한 걸음에 달려와 준 친구들, 친구들의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겹쳐있었다. 모시옷이 더 잘 어울리는 나이를 먹고도 웃음소리는 청춘이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은 안했어도 우리들은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나이를 먹었다. 친구들이 있어 오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지만 나는 행복하다.

작성자
장영수
작성일자
2013-11-25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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