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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0에 발견한 바다… 나의 삶을 닮은 사진으로 세상에 말을 걸다

사진작가 박정화 사진전 '우두커니' 사진 공간 진·문서 다음 달 1일까지

내용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이 '사진'에 입문하였습니다. 쉽게 찍고, 쉽게 확인하고,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삭제하는 디지털의 편리함과 간편함에 매료된 이들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사진이라는 낯선 세계로 쉽게 입문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사진에 담아 지인들과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러 시간과 열정으로 곰 삭힌 어떤 이들은 어느새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사진을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여기 한 사람의 '사진가'가 탄생합니다.
박. 정. 화.

평범한 이름 석 자를 지닌 그녀는 우리 나이로 쉰을 넘긴 중년여성입니다. 어린이집 원장으로 재직하며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동시대의 평범한 이웃의 한 사람이지요.

사진전을 연다는 안내장을 받고 작가의 프로필을 쓱 훑어보았습니다. 별다른 내용이 없더군요. 2006년 인도 기행 사진전을 한 번 열었다는 것 말고는 작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줄임표보다 강한 물음표는 없는 것인가요?

작가가 정보를 안 주니 궁금증이 커지더군요. 이리저리 수소문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시인이며, 그녀의 선친이 우리나라 1세대 사진작가였다는 것, 여기까지만 들어도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여기다 이번 전시회가 열리게 된 숨겨진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사진이 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도 갖게 되었고요.

그녀의 남편은 동길산 시인입니다. 부산의 꽤 이름 난 시인이지요. 동 시인이 최근 산문집 '우두커니'를 펴냈는데, 그 책 속에 아내인 박정화 사진가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새 책을 낸 시인은 평소 막역한 사이인 문진우 사진가(사진 공간 진·문 대표)에게 책 한 권을 보냈습니다. 책을 펼쳐 든 문진우 작가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책에 실린 사진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지요. 시인 부부와 친하게 지내온 탓에 시인의 아내가 사진을 즐겨 찍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빼어난 실력인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합니다. 그저 취미로 하는 것이려니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간단치 않았습니다. 문진우 사진가는 책에 실린 사진에 '혼'이 빠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책으로만 보는 것이 아까웠고, 마침 사진전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던 문진우 사진가가 이참에 전시회를 열자고 제안, 박정화 씨는 눈 깜짝하는 순간에 등 떠밀려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정화 두 번째 사진전 '우두커니'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녀의 사진은 담백했습니다. 사진은 시인인 남편이 절반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고성 시골집의 이런저런 풍경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보기 어려운 낮은 함석지붕, 정지(부엌의 경사도 사투리) 선반 위에 우두커니 놓여진 사기그릇 몇 개, 그리고 그 아래 걸린 소박한 소반, 시인이 기거하는 오두막에서 바라본 시골풍경, 달팽이 모양으로 뱅뱅 돌려 만든 문고리 등….

우두커니…
혹은 멍 때리고 앉아 시간과 속닥대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거기 있습니다.

시골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참으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지만, 반가움에 덥석 달려가 안길 수 없게 하는 무엇이 그녀의 사진에 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안기기에는, 반갑다고 유난 떨기에 주저하게 하는 것은 그녀 사진이 품고 있는 어떤 '짠함' 때문입니다.

바스러지는 흙벽, 소박한 밥공기 몇 개로 채워진 선반, 녹슨 우편함, 작가가 보여주는 풍경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군요.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사람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기억입니다. 빈 들과 대숲을 핥고 지나가던 바람의 발자국, 빈 마당을 지키고 있는 빨랫줄에 내려앉던 오후의 따사롭던 햇살의 기억이 그곳에 있습니다. 지난 시절의 아린 풍경을, 당신, 기억하시는지요.

그녀의 사진은 우두커니 기억을 훑고 지납니다. 오도카니 앉아 우리의 지나온 시간과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실낙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바쁘게, 언제나 "빨리, 빨리!"를 외치며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은 결코 잡을 수 없는 시선이 그녀의 사진 속에 펼쳐집니다. 삶의 한 박자를 쉬지 않으면, "빨리, 빨리!" 내지르는 외침을 거두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풍경이 거기 소박한 전시장에 걸려있군요.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지켜보고 돌아왔더랬지요.

그녀의 남편인 동길산 시인은 한 달의 절반은 경남 고성의 두메산골에서 혼자 지냅니다. 한 달의 나머지 절반은 부산에 있는 집에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남편의 절반을 산골에 기꺼이 내어준 그녀에게는 어쩌면 남편의 비운 시간만큼의 여백이 쌓여진 것일까요. 이제 그 여백에 차곡차곡 한 장씩 그녀만의 색깔로 반짝이는 사진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오래 곱씹을 수 있는 그녀의 작품을 가리켜, (사진가로서의 그녀의 가능성을 발견해낸) 문진우 사진가는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언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그녀는 사진으로 시를 쓰는 것인가요? 참…부창부수! 그 지아비에 그 지어미입니다.

동길산 시인이 발표한 산문집 '우두커니'.

박정화 사진전은 12월 1일까지 계속됩니다.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사진 공간 진·문에 꼭 한번 들러보시기를. 힘들게 골목을 찾아온 수고가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아, 참…. 11월 30일은 작가가 조촐한 뒤풀이를 연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진으로 빛을 더한 동길산 시인 산문집 '우두커니' 저자 사인회를 연다고 합니다. 시인의 친구가 책 100권을 기증, 그날 찾아온 분들께 사인들 결 들여 증정한다고 하네요. 그녀의 숨겨진 매력을 찾고 싶다면 뒤풀이에 참석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시장을 찾아 직접 문의해보세요. ^^

※ 갤러리 진·문(010-4556-****)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12-11-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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