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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497호 전체기사보기

그대, 영웅들이여!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이름이여!

제66회 UN의 날에 부쳐

내용

1950년 6월25일.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소련을 제외한 9개국의 찬성으로 유엔군 참전을 결의했습니다. 자유수호와 정의실현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유엔창설 이래 최초로 유엔군을 파병한 것입니다. 이후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1개월여를 끈 한국전쟁은 20세기, 가장 잔인하고 비극적인 인류의 역사로 기록됐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21개국 175만4천4백여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4만8백96명이 희생됐습니다. 전쟁 중에 유엔군사령부는 인천과 개성 등 여섯 곳의 임시묘지에 유해를 안장했다 이후 1951년 1월18일 부산에 묘지를 조성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대한민국 정부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젊은 영혼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엔본부에 재한유엔기념묘지 설치를 제의했고 1959년 11월 대한민국 정부와 유엔은 유엔기념묘지 설치 및 유지관리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재한유엔기념묘지는 2001년 그 이름을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바꾸고 보다 친숙한 공간으로 그 문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더불어 2007년 근대문화재로 등록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배움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 같았던 폐허 그 자체였던 대한민국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또 가족 잃은 피난민들이 넘쳐나던  부산도 아시아 최고의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화려한 문화도시가 되었고 세계 5위 국제항만도시, 아시아 4위 국제회의도시로 도약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60여년 전 세계평화를 위해 이역만리 타국에서 목숨을 바친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들 모두는 압니다. 그래서 세계 유일의 유엔군묘지에는 젊은 넋들이 잠든 지 60여년이 흘렀지만 연중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1만5000여명을 파병했던 터키는 참전 노병은 물론이고 국민 누구나 부산에 오면 유엔기념공원을 잊지 않고 찾고 있습니다. 또 영연방 참전용사들도 해마다 부산에 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영연방 4개국은 약 9만4천명이 한국전쟁에 참전, 1천750여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천500여명의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특히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던 임진강 전투에서는 1개 여단 4천명의 병력으로 중공군 4만명에 맞서 여단병력의 4분의 1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제임스 그룬디씨가 있습니다. 그는 1988년 영국군 참전용사 100여명과 함께 부산을 방문한 후 매년 유엔기념공원을 찾고 있습니다. 19살 어린나이에 전쟁터 한 가운데서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했고 그들의 유해를 유엔군 묘지로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 아픈 경험을 잠시도 잊을 수 없었다는 그룬디씨. 그는 유엔기념공원에서 먼저 떠난 전우들과 대화하는 것이 남은 인생의 마지막 임무하고 그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기암 환자인 그룬디씨는 숨을 거두면 이 곳 유엔기념공원 연못에 자신의 유해를 뿌려주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 그 다음 생에서 안타까운 만남을 이룬 사연도 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의 미망인이 60년 만에 주검이 되어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온 것입니다. 오로지 남편 곁에 잠들고  싶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결혼 3주 만에 숨진 남편을 평생 그리워했던 미망인, 60년의 기다림 끝에 부부는 이렇게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비단 남편뿐이었을까요! 그들 모두는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며, 아들이였으며. 피를 나눈 전우이자. 보석 같은 친구였을 겁니다.
 

높은 가을하늘 아래 펼쳐진 유엔기념공원의 풍경은 평니다. 이 곳에 잠든 이들이 그토록 바라고 염원했던 소망, 바로 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기 위해 유엔기념공원을 찾아온 어린 손님들이 있습니다.

제법 어린티를 벗고 어른의 책임감을 배우기 시작한 부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입니다. 이들은 한 달에 두 차례, 학교를 쉬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이 곳, 저 곳을 둘러보고 흐트러진 곳을 정리정돈하고 있습니다.

처음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왔을 때는 그저 오래된 역사문화시설을 청소하는 가벼운 봉사활동이라는 생각이 다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묘비 하나하나에 담긴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 60년 전 그들의 삶이 오늘날 자신의 일상과 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그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60년 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푸른 청년의 이야기는 결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그의 거룩한 희생은 오늘 이 자리, 유엔기념공원에서 또 다른 젊은이들에 의해 새 희망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작성자
박영희
작성일자
2011-10-2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97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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