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에 배 깔고 느긋하게 책을 읽다
시인 남편 소설가 아내 초보농사 고군분투기
똥에서 생명으로 순환하는 섭리 서정적으로 표현
- 내용
■ '영철이하고 농사짓기'
부산의 대표적인 문인 부부인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소설가가 함께 펴낸 '영철이하고 농사짓기'(도요 펴냄)는 내내 입가에 '므흣'한 미소를 지으며 읽을 수 있다. 아내인 조명숙 소설가의 시선을 담고 있는 제목만 보면 철없는 시인 남편을 살살 달래가며 농사 짓는 소설가 아내의 고군분투기일 것 같지만(일정 부분은 그렇다) 시인 남편과 소설가 아내가 생애 첫 텃밭을 일구며 함께 적은 일기 형식의 영농(?) 일지다.
농사에 왕초보인 최영철 시인이 그보다 아주 조금 농사를 더 아는 조명숙 소설가와 함께 경남 김해 도요마을에서 야산과 4년 동안 씨름한 좌충우돌 농사 체험기다. 묵은 땅을 개간하는 일은 힘들었지만 갱년기 우울증도 치유되고 부부금슬도 좋아졌으며, 체력도 향상됐다. 투자한데 비하면 몇 곱절의 소득을 올린 남는 장사가 바로 농사였던 것.
책의 재미는 시인·소설가 부부의 전혀 폼을 잡지 않는 소탈함과 진정성이다. 생태적 삶이라는 거창한 개념을 들먹이지 않으면서 매캐한 흙먼지 마셔야하는 농사의 기쁨과 버거움, 밭 한 고랑을 파더라도 흙속에 깃들어 있는 뭇생명들이 놀랄새라 다칠새라 조심하는 생명에의 경외심, 소박한 소출의 즐거움, 넉넉하지 않는 주머니 사정을 푸념하는 생활인의 모습까지 시시콜콜한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면 재미가 반감됐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감수성을 가진 글쟁이 부부는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나눈 교감과 새로운 이웃들과 맺는 친교의 갈등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땅은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차를 세워두고 30미터 쯤 걸어 올라가야 하고, 경사가 진데다 밭고랑도 없는 황무지다. 그렇지만 우리도 텃밭농사라는 걸 해보자고 벼르기를 몇 년, 작년 12월에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구한 금덩어리다.' 금덩어리를 벼리는 문인부부의 땀이 아름답다. (070-4148-5244)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소설가가 도요마을 텃밭에 만든 농막에서 노동 후의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고 있다. 넉넉한 웃음과 흙 묻은 작업복이 눈에 띈다.■ 강정이 시집 '꽃똥'
강정이 시인의 첫 시집 '꽃똥'(도서출판 지혜 펴냄)은 착한 시집이다. 낡은 무명저고리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어린 누이처럼 어여쁘고 착한 시집이다.
2004년 계간 시 전문지 '애지'로 등단한 강 시인은 냄새 나고 불결한 똥에서 향긋한 꽃내음을 맡는 탁월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 꽃똥이라니. 꽃똥이란 나무 혹은 풀같은 식물이 누는 똥이다. 꽃똥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퍼져나가 꽃내음처럼 은근한 향기마저 풍긴다.
시인이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은 벽오동 둥지에서, 유년시절에 먹었던 달디단 솜사탕의 기억에서 후두둑 낙엽처럼 떨어진다. 강하고 전투적인 육식성의 세계를 애써 지워낸 자리에는 담백한 풀 향내 나는 꽃똥과 그 꽃똥과 함께 살을 비비며 풍화작용할 흙의 이미지가 넘친다.
'…그래 그래/악다구니 삶도 물결무늬 삶도/우리 돌아갈 한 줌 흙 아니냐며/엉긴 가슴 호-불어주는/오카리나 입김/흙의 숨결'.('오카리나' 부분)
천상적으로 식물성인 시인은 모진 싸움 대신 오카리나의 따스한 느낌을 선택했다. 엉긴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줄 것은 결국 꽃똥으로 잘익힌 따뜻한 흙가슴이라는 것. 강정이 시인의 손은 따스할 것이다.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11-02-0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부산이라좋다 제1460호
- 첨부파일
-
-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