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사진이 건져 올린 '적요'의 시간
정봉채 사진전 '胡蝶夢, 호접몽'
바람, 햇살… 물길 헤적이는 소리
- 내용
- 'JBCRamsar#9021510'.
10년을 한결같이 사랑한다면, ‘나’와 ‘그’(대상)는 어떻게 될까요?
흔히들 말하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게 될까요? 아니면, 결코 짧지 않은 세월 앞에 무릎을 꿇고, 더러 이별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건조한 눈빛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정해진 답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가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해운대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토요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고 있는 정봉채 사진전 '胡蝶夢, 호접몽'은 지독했던 10년 사랑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얼마나 지독한지, 작가가 보여주는 사랑은 ‘나’와 ‘그’의 경계가 완전하게 상실되었습니다. ‘나’와 ‘그’ 사이에 그어져 있던 선들은 어느새 허물어지고, ‘나’와 ‘그’가 완벽하게 합일을 이룬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전시 타이틀 ‘호접몽’(胡蝶蒙) 딱 그대로인 전시입니다.
경남 창녕군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고대의 늪, 우포늪을 찍은 '胡蝶夢, 호접몽'은 강한 침묵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정봉채 씨는 생태사진가로 10년 동안 우포늪을 찍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동안 찍은 우포늪 사진만 해도 수 만 컷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번 사진전에 나온 작품은 최근에 찍은 17점을 추린 것입니다. 수적으로야 크게 많지 않은 전시이지만, 우포늪을 향한 작가의 순정한 마음을 애틋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호접몽'에서 마주하는 그의 사진에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우포늪의 햇살과 바람이 느껴집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낮게 가라앉은 흑백 화면을 들여다보면 늪지에 둥지를 튼 저어새의 자맥질 소리가 들리고, 머리를 헤쳐 풀고 바람에 몸을 맡긴 들풀이 토해내는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낮고 그윽한 화면은 동굴 속 메아리처럼 크고 강렬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한반도와 나이가 같은 우포늪은 한반도 최대 습지로, 현재는 천연기념물 및 국제습지조약 보존습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억4천만 년 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우포늪은 생태계의 정화는 물론이고, 인간의 마음까지 정화해줘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정봉채 작가도 우포늪을 거닐던 순례자였습니다. 10여 년 동안 이어진 순례의 길에서 작가는 무릎을 꿇고 늪과 늪에 기대어 사는 뭇생명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맞춘 듯 합니다. 스스로 무릎을 꿇어 늪과 호흡하며 어깨를 맞춘 작가의 10년 작업의 결실이 '胡蝶夢, 호접몽'인 것입니다.
'胡蝶夢, 호접몽'이 보여주는 시선은 담백하나, 깊습니다. 깊고 짙은 그늘에 몸을 내맡기면 어느 순간 태고의 바람이 불어와 딱딱해진 심장을 뛰게 할 것 같습니다. 낮고 고른 호흡으로….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포는 내 마음 안에 들어온다"는 그의 고백처럼 10년을 함께 한 작가와 우포늪은 그가 우포늪인지, 우포늪이 그인지 모를 경지에 이른 듯 합니다. 간결하게 누른 카메라 셔터 안에 도요새의 참방이는 물질 소리가 들리고, 늪을 헤적이는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도 들리는지요.
전시는 2월20일까지 해운대구 해변로 토요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구요, 문의는 전화 080-855-0007로 하시면 됩니다.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11-01-2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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