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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범일동에서 출퇴근하던 여공들의 길 걷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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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공들의 삶이 묻어나는 생존터였던 
1960년대 범일동 골목길 모습.


부산 발전의 원초가 된 동구 범일동에서 주목해야 할 곳은 지금의 대로변이 아니라 안창마을로 올라가는 샛길이다. 1960년대는 매일 아침 조선방직공장과 부산신발공장으로 출근하는 우리들의 언니이면서 공장 여공들의 또각또각 구두 발자국소리로 시작했다. 그때 새벽녘은 생존경쟁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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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당시 여공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골목길에 붙은 사진.


그때 부산은 6·25전쟁으로 인한 피란민들과 광복을 맞아 귀국선을 탔던 사람들의 먹고 살기 위한 전쟁터였다. 말이 새벽이지 여공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 보고 퇴근을 했다. 그때 부산 조선방직이나 신발공장 등에 다녔던 여공들이 걸었던 범일동 삼거리에서 안창마을로 올라가는 길을 찬찬히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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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여공들이 고된 주간 공장일을 하고 야학에 전념하고 있는 당시의 모습.


아직도 당시 골목길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있다. 당시 언니들은 하루 14시간 이상 고된 노동과 적은 임금으로 열악한 공장근무를 하면서 억척같이 살아왔다. 당시는 누군가의 딸이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서 소임을 다하면서 집안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루게 한 장본인이자 진정한 주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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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당시 여공들이 조선방직공장에서 미싱작업을 하는 모습.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하는 일을 우리 누나들은 묵묵히 가정의 생계를 위해 일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언니들은 공장 취직자리 하나 구하려고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연락하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농촌 살림 살이가 팍팍하여 언니들은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시 공장으로 모여 들었다. 새벽 같이 공장 경비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 공장 반장들이 나와서 순번대로 고용할 사람을 뽑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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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1960년대 초 조방 앞 조선방직공장이 있었던 모습.


한번 들어가면 게으르지 않고 견습 기간만 잘 견디면 정공으로 일을 한다. 고달픈 삶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이라는 것은 월급날 공장 옆에 있는 부산진시장 가는 것이다. 언니들도 한창 멋 부리고 싶은 나이인지라 시장 포목점에서 옷감을 사서 직접 재봉틀에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고 한다. 시골에 있는 부모님을 위해 월급을 조금만 남기고 모두 모아 고향에 가져다 드린다. 언니들의 돈으로 동생 공부를 시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농촌에서 여자가 중학교를 보낸다는 것 불가능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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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범일동 주변의 발전된 모습.


농촌에서 워낙 가난해 한사람 입이라도 덜어보려고 무작정 집을 나서 부산 와서 공장에 다니던 언니들이 고향 친구들을 하나둘 데리고 나와 시골에는 언니들이 없었다. 공부를 못했으니 공장에서 야학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억척같은 언니들은 하루 12시간이상 일을 하고 밤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공부한 언니들이 다수 있었다.

 


작성자
조분자
작성일자
2019-12-2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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