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근대산업유산 추억의 길을 걷다.
설탕의 원조, 한국밥상의 원조가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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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동천로는 설탕의 원조, 한국밥상의 원조가 머무는 거리이다. 부산시민에게는 ‘제일제당’이 있던 곳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곳이다.
▲ 사진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동천로 모습.
원래 이곳은 제일제당의 땅이었다. 오늘날 동천로 ‘카페의 거리’로 변신을 하였지만 역사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역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6.25사변)이 끝날 무렵인 1953년 여름. 서면 아래쪽인 동천변이 야단법석 떠들썩하였다. 이유인즉 부산진구 전포동 743번지 일원 1천여 평의 부지에 공장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이름은 ‘제일제당’이다. 그해 11월 5일 공장에서 순백색의 설탕이 생산한다. 외국산 설탕에만 의존하던 때 순수 우리기술로 국내 최초의 설탕이 탄생한다.
▲ 사진은 현재의 전포카페거리 모습.
이 설탕공장을 만든 故 호암 이병철(1910년~1987년)은 삼성그룹 창업주이다. 국산화로 물꼬를 튼 제일제당은 ‘백설표’ 란 브랜드를 앞세워 사업을 크게 확장한다. 눈처럼 하얀 설탕, ‘백설표’는 한국 밥상의 역사가 되었다. 제일제당에서 뿌리와 가지가 뻗은 삼성그룹은 국내 최대의 집단으로 성장을 하였으며, 반도체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한국 브랜드이다.
삼성그룹의 제일제당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故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삼성상회’라는 이름이 시작됐다. 공장규모를 보면, 1953년 부산진구 부전동 537-9번지에 설립한 제일제당이 그 바탕이 되었다. 제일제당은 1996년 삼성그룹에서 분리하여 독립을 하였다. 2002년 새로운 이름으로 CJ주식회사로 변신을 하였고, 2007년 CJ그룹의 지주회사로 체제도임을 하여, 지금은 CJ제일제당으로 그 이름을 넓히고 있다.
▲ 사진은 동천로에서 전포카페거리로 가는 길.
제일제당이 오늘날 번창하는 것과 관련해 구전으로 내려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제일제당은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설탕제조에 참여한 한 임원의 증언에 따르면 1953년 19월 28일 시운전에 들어갔는데 기대했던 설탕은 안 나오고 콩깻묵 같은 것이 나왔다. 기계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온갖 궁리 끝에 어렵사리 설탕을 뽑아낼 수 있었다.
▲ 사진은 동천로에 위치한, 스케이트 타는 청년의 모습을 나타낸 조각 작품.설탕제조는 당시는 하이테크 산업이었다. 국민의 밥상을 풍요롭게 하는 최고의 식재료이었다. 초창기 제일제당에서 근무한 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당시 직원들의 월급이 20만 환이었다. 그 때 동천주변의 10~20평 크기의 집값이 15만환이고, 김해평야 논 한마지기(200평)가 2만환이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물론이고, 업계에서도 제일제당직원을 천하의 제일제당이라고 불렀다는 에피소드가 오늘날도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니 삼성그룹이 그 옛날부터 대그룹으로 성장할 기미를 나타내었음을 짐작 할 만 하다.
- 작성자
- 조분자
- 작성일자
- 2019-10-0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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