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백석 노인의 시(詩) 각(刻) 서(書) 화(畵) 일체언어
- 부산박물관 한중수교 25주년 기획전시전
- 내용
‘서리 맞은 잎이 꽃보다 더 붉다.’
잎을 그리며 새겨 넣은 시 한 구절, 서양의 피카소에 비견된다는 동양의 화백 치바이스. 한중수교 25주년 부산박물관 내년 40주년을 기념하며 중국 호남성의 치바이스 서화와 전각 133건이 부산을 방문했다.
1963년에 ‘세계 10대 문화거장’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치바이스는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기획전시실의 그의 작품을 보니 가히 언젠가 도록에서나 책에서 본 듯한 익숙한 작품이다. 도장에서 거장으로 나아간 한 사람의 인생과 작품에 잠시 젖어보았다.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는 가운데 튀어나온 작은 생명들 평화에 대한 사랑을 그의 필체와 화체에서 느낄 수 있었다.
100년 가까운 생애 전설처럼 각인된 치바이스, 가난한 농가에 출생, 몸이 약하여 농삿 일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목수 일을 하다 스무살 무렵부터 그림을 독학했다. 마흔 살에는 다섯 차례에 걸친 주유천하(周遊天下)를 시작하여 예순 가까운 때는 본처가 주선한 열여덟 살 처녀와 신접산림을 차려 여든 살 노구에 아들을 낳았다는 기구한 인생이 그의 예술에 새겨졌다.
그에게서 수학했던 한국 현대화가 사석원은 제백석(치바이스, 1864~1957)의 그림에서 비범함을 알아차렸다. 손끝에서 조화를 부린 양 단 몇 번의 붓질만으로도 생생한 표정이 살아났다. 게와 새우, 물고기는 물을 흠뻑 머금은 듯 생동감이 넘쳤고 꽃과 나무그림은 막힘없이 붓을 자유롭게 휘둘러 화면 전체에 기운이 가득했다. 작은 풀벌레는 마치 돋보기를 보며 그린 양 섬세하며 정확했다.
“치바이스는 동식물을 오래 관찰하고 마음에 꼭꼭 쟁여놓은 듯하다. 이를테면 흉중성상(胸中成象)이다. 팩트를 숙지하고 마음속에서 익도록 기다리는 일을 거듭했을 테다. 어떻게 그려도 모양이 부자연스럽지 않은 까닭이 그것 아닐까.”
미술평론가 손철주는 치바이스는 절묘한 구상과 함축적인 제재로 시와 그림의 영토를 사뿐하게 넘나든다고 했다. 작품의 꽃송이는 담대하게 처리하고 풀벌레는 더듬이까지 세밀한 그림들이 줄을 잇는다. 잎은 먹을 쓰고 꽃은 색을 입히되, 연꽃을 그리면서 서양 물감을 슬그머니 곁들이는 유희도 눈길을 붙들어 치바이스의 화훼초충도에 뿌려놓은 성분 미상의 비약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고 했다.
부산박물관의 기획전시실의 작품 하나하나가 그토록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그가 처음 시작했던 인장들이 삶의 무게를 새겨넣은 듯 무겁게 느껴졌다. 11월7일에 문을 연 이 국제교류전이 12월10일까지 개장된다하니 주유하듯 그렇게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제백석의 화실을 옮겨놓은 듯한 포토존도 있어 눈길을 끈다.
벽 한 켠에, 주유천하로 배 한척에 의지해 7년을 돌아다닌 그의 소회가 새겨져 있어 마지막으로 남겨본다. 우리 한 인생(人生)도 그런 일생(一生)이기에 그의 글과 그림 서각이 공감되는 바 많다.
“쉼 없이 호수건너고 바다 건너 원한 던 길 이루며 돌아다녔네, 고향으로부터 만리 길 걸을 때까지 고난을 함께 한 것은 배 한 척 뿐이네” <제백석의 고주도해>
- 작성자
- 김광영/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7-11-20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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