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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피란수도 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다.

내용

한국전쟁은 흔히 우리 노인들에게는 6.25사변(동란)이라고 한다. 1950625일 동란을 발발하여 남하를 거듭한 우리 정부는 627일 대전으로, 716일 대전에서 대구로, 818일 대구에서 부산으로 수도를 옮겨야만 했다. 작전수행을 하기 위해서 행정기관도 부산으로 이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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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승만대통령은 72일 먼저 부산으로 이동을 하였다. 전쟁당시 중앙청은 경남도청(현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사회부.문교부.심계원은 부산시청, 상공부는 남전으로 국회는 부산극장을 각각 수용하여 임시수도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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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수도 정부청사였던 경남도청은 1925년 일제가 경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오면서 건축을 하였다. 붉은 벽돌건물인 이 건물에 둥지를 튼 일제는 부산을 대륙침략의 거점으로 전초기지를 활용하는데 사용을 목적으로 두었다. 동란 중 정부청사로, 휴전 후 경남도청으로, 이후 부산지방법원 및 부산지방검찰청본관으로 사용하였다.

 

이 건물을 2002년 주변부지와 함께 부산임시수도 정부청사 건물을 동아대학교가 매입을 하였다. 건물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살리는 한편 도심형 열린 캠퍼스로 활용을 하기 위하여 이곳을 석당박물관으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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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3차례 이상의 증축과정으로 원형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각각 상이한 지붕구조와 내부구조방식이 적용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돌의 종류도 일반벽돌, 아치벽돌, 내화벽돌, 시멘트벽돌 등으로 나누어진다. 현재 3층에 전시된 벽돌은 건립초의 벽돌로써 230x110x60m/m이며, 아치벽돌의 경우는 310x55-77x12m/m이다.

 

사용된 석재도 외부바닥재와 장식재 그리고 창대석 등에 주로 사용했다. 특히 장식재는 대부분 전면부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부램프, 표치상단부, 계단, 정원 부분에 사용됐다. 기와는 S자형에 가까운 형태로서 초기에는 점토기와가 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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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붕트러스에서 발견된 묵서에는 경남도청사 건립에 목재를 공급한 부산육이상회안동무한공사의 기록이 있다. 특히 경남도청 이전 관련서류에는 도청이전에 관한 조치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청사 및 부속설비에 대한 내용과 직원 주택공급, 청사이전의 소요비용, 이전시기, 이전완료 후속조치, 부산 부림병원에 관하 조치 등 세부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작성자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작성일자
2017-07-0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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