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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황산길 소산역의 흔적을 찾아서

내용

조선시대 동래부에 사는 선비가 괴나리봇짐을 메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영남대로 길목에는 머물러 쉬고 말도 갈아탈 수 있는 역이 두 곳 있었는데 하나는 지금의 연산동과 수영사이의 휴산역과 금정구 선두구동 하정마을인 소산역이다. 부산에서 대구까지의 영남대로 중 부산~경남 밀양 구간인 황산길에서 16개 속역 주의 하나인 소사역은 하정마을에 있었다. 밭과 당산 언덕에 버려진 비석 2기 ‘수의상국이공만직영세불망비’와 ‘황산이방최연수애휼역졸비’를 찾아내어 하정마을 입구에 도로변에 복원하여 소산역의 존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금정구 선두구동 738 밭 언덕에 누워있던 '수의상국이공만직영세불망비'는 암행어사 이만직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로 '우리의 폐단을 누가 구원하랴 때를 기다려 개혁하였네 / 메마른 구덩이에 혜택을 고루 미치고 또렷하게 병의 맥을 진단하였네 / 오래갈 규범을 조금 보존하여 점차 소생함이 있도록 기약하였네 / 은혜와 덕을 몸에 새겨 길이길이 잊지 않기로 맹세하네'라는 뜻의 4언시 4구의 비명이다. 뒷면에는 암행어사 이만직 공이 무흘에서 휴산을 거쳐 소산역에 와서 민생복지를 위해 기금을 조성한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소산역의 감독관과 관리책임자가 고종 15년 1878년 비를 세웠다고 되어 있다. 500여m 떨어진 당산길 앞 언덕에 역시 누워있던 '황산이방최연수애휼역졸비'는 "휴산역와 소산역에 근무했던 이방 최연수가 역졸들을 아끼고 보살핀 인격과 덕망을 기리기 위해 상급 관리들이 숙종 23년 1697년에 세운 송덕비다. 앞면에는 '공무를 받들어 정성을 다해 어루만져 돌보는 뜻이 간절하였다 / 차가운 연못과 같이 청렴하였으니 이방으로 머문 것이 애석하도다'라는 4언시가 있고 뒷면에는 휴산, 소산이라는 두 역명, 역리의 우두머리와 감관의 상관 이름이 있고 강희 36년 정축 2월 1일이라는 건립일자가 새겨져 있다. 1832년 동래부읍지에 따르면 소산역은 "동래부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대마 한 필, 중마 두 필, 짐 부리는 복마 일곱 필, 역리 51명, 노비 24구"가 머물던 동래 교통의 요지라 적혀 있다.

오늘날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로 인근에 노포 IC, 구서IC, 국도 등이 있어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역할은 비슷한 것 같다. 하정마을 입구에는 솟대와 두 개의 비석들이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여기가 소산역이니 쉬어가라며 손짓을 하고 있다.

< 하정마을 안내 >

주소 : 부산시 금정구 선두구동 하정로
오시는 길 : 선동입구 들어가는 길 맞은편 고속도로 아래에 위치함
또는 남산동 GS25 남산역점-> 통영대복집-> 베네스트CC-> 하정마을

 

작성자
김홍표/부비리포터
작성일자
2014-09-1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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