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해수욕장은 축구장
- 내용
지난해 겨울 해운대백사장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백사장모래가 바다로 유실되어서 백사장모래밭은 손바닥만 했다. 작은 모래밭에 비치파라솔을 치다보니까, 모래밭은 없어졌다. 사람들이 모래밭에서 놀 공간을 파라솔이 점령했기 때문이다.
금년은 확 달라졌다. 겨울동안 지자체가 백사장 모래가 유실된 것을 건져 올려서 바닥에 넓게 깔았다. 모래가 유실되지 않도록 펜스를 수중 설치했다. 그리고 모래밭은 넓게 만들었다. 물에서 놀 사람들을 배려하여 모래밭 아래 언덕을 만들어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배려도 했다.
3월 하순 해운대백사장은 넓은 모래밭에서 가족나들이 연인사이 모두 축구장 같은 모래밭을 산책하고 있다. 모래조각가는 나무로 만든 장승이 아닌 모래로 장승을 만들었다. 만드는 것을 관찰하다가 기념사진을 찍는다. 조각가는 고무바케스, 삽, 나무젓가락이 도구의 전부다. 작품은 천하에 최고다.
백사장 언덕 아래 아가씨 두 명은 요즘 유행하는 ‘컬링’ 자세로 바다를 향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아가씨들이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하는 욕심 하나는 대단하다. 백사장주변에 설치된 그네가 있다. 그네는 경찰관의 팔에 그네가 매달려 있다.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하다. 경찰관을 시민은 믿어달라는 것이다. 부산경찰이 달라도 너무 달라졌구나. 시민은 행복하다.
아니 등산하는 사람들이 바다를 거닐고 있다.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말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아니지 넓은 백사장에서 한번 걸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 모래밭에서 걷는 것이 평지에서 걷는 것 보다 많은 효과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해운대조선호텔 앞 돌에 새긴 한자로 된 명패가 글자가 훼손되어 알아볼 수가 없다. 이글은 쓴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왜 방치를 하고 있는가. 동백섬 등대아래에 있는 최치원의 글씨로 추정되는 해운대글씨는 아직도 뚜렷하게 보인다.
해운대해수욕장의 역사는 예로부터 해운대는 우리나라 8경 중 하나로 온천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름 높은 명승지였다. 6.25한국전쟁으로 부산에 임시수도가 되자, 해운대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59년 수영비행장개장, 1965년 해운대해수욕장 입구확장공사를 완료하였다. 1969년 극동호텔 입구 도로개설로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웨스틴조선호텔, 파라다이스호텔 등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화려한 축제의 장소이자, 부산의 대표적인 국제관광명소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 작성자
- 황복원/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4-04-04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