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동, 정말 국제적 전쟁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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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동' 하면 길게 늘어선 언덕모양의 복천동고분군과 복천박물관이 생각난다. 1969년 주택공사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경주고분을 제외하고는 남한에서는 가장 큰 고분 중의 하나라고 한다. 주로 4,5세기경 가야지배층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또 역사적으로 조금 시선을 올려보면 1592년 4월 15일 동래성전투가 벌어진 곳도 복천동이다. 부산진성을 함락한 왜군들이 그 길로 동래성으로 진격했다. 당시 송상현부사를 비롯해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웠지만 어쩔 수 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해마다 가을이면 동래읍성축제가 열려 동래성전투의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 가야의 역사를 다룬 최인호의 '제4의 제국' 이란 소설을 읽다가 복천동에 대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되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임나가라 종발성' 이란 글귀가 있는데 그 '종발성' 이 바로 복천동이란 사실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396년 고구려는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의 아신 왕으로부터 절대 복종 할 것을 서약 받았다. 그러나 3년 뒤인 399년에 백제는 이를 어기고 가야와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한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영락 10년인 400년에 대왕은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신라성으로 진격한다. 이에 놀란 왜구들이 퇴각하자 그 뒤를 추격해서 종발성에 이르러 성을 함락하고 이들의 항복을 받아 내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작가는 왜구들을 크게 무찌른 종발성을 바로 부산의 복천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고증이 된 이야기는 아니고 단지 소설속의 이야기 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 역시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쓴 것이고, 또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상상력으로 미루어 볼 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나타난 '임나가라 종발성' 에 대한 견해들이 다양했다. 누구는 종발성을 임나가라가 있던 김해의 분산성으로 보기도 하고, 또 누구는 부산의 복천동으로 보기도 하고, 또 누구는 양산 등 다른 곳으로 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종발'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해석하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 '종발성' 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발성= 복천동 이라고 단정 할 수도 없지만 또한 아니라고 부정할 근거도 없는 것 같았다.
만약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종발성=복천동 이라면 복천동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왜 등 5개국이 서로 맞붙어 싸운 우리나라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국제적 양상을 띤 다국적 전쟁터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복천동 고분에서는 갑옷, 투구, 칼 과 같은 무기류 들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함)
역사적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어서 무척 놀랍기도 하고, 또 복천동이 부산에서는 결코 평범했던 동네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복천박물관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았다.
가서 유물들을 좀 더 자세히 보기도 하고, 고분 위를 잠시 걷기도 하고, 멀리 도심의 풍경들도 바라보면서 과연 이곳에서 1600년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 등 5개국이 치열한 싸움을 벌였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복천동은 부산의 오랜 역사가 아직도 숨쉬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작성자
- 정헌숙/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4-02-0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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