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속의 공간 ‘갯마을’
오영수 선생의 단편소설 ‘갯마을’의 흔적을 찾아서…
- 내용
“서(西)로 멀리 기차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담 밑을 찰싹대는 H 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더께더께 굴 딱지가 붙은 모없는 돌로 담을 쌓고, 낡은 삿갓 모양 옹기종기 엎딘 초가가 스무집 될까 말까? 조그마한 멸치 후리막이 있고 미역으로 이름이 있으나……”
위 글은 1953년에 발표된 오영수 선생의 ‘갯마을’이란 단편소설의 첫머리다. 여기서 ‘H’라는 마을은 일광해수욕장 끝자락에 위치한 학리를 말한다고 한다.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에 있는 일광해수욕장을 찾아 학리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여름 피서철이 끝난 탓에 해수욕장엔 사람은 거의 없고 파도소리만 철썩거리며 들려온다. 청색의 바다에 오목하게 둘러싸인 해변을 걷다보니 개구쟁이 아이들 몇이 고기를 잡는지 신나게 놀고 있다.
해변 끝자락에 도착하니 삼성리와 학리를 연결하는 목교가 예쁘게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모래밭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고 멀리 바라보니 소설속에 나오는 달음산이 큼지막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삿갓 모양의 초가도, 굴딱지 붙은 담도, 멸치 후리막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짭쪼롬한 해조 내음이 코끝에 진하게 풍겨와 갯마을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발길을 돌려 학리의 반대쪽인 이천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이천강이 흐르는 바로 옆에 별님공원이 있고 그곳에 오영수 선생의 문학비가 소담하게 세워져 있다.
공원 벤치에 나이 든 노인 두 분이 할일없이 앉아 있길래 슬그머니 말을 걸어보니 그 근처에서 바로 ‘갯마을’ 이란 영화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화 ‘갯마을’은 김수용 감독, 신영균, 고은아, 황정순씨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1965년에 발표되었다. 소설속의 주인공 해순의 역을 맡은 고은아씨는 부산여고 출신의 여배우다. 아마도 경상도 젊은 아낙의 역할에 적합했던 모양이다.
노인의 말로는 지난 여름축제 때 황정순씨가 다녀갔는데 그때 “모든게 변해도 바다만은 변하지 않았다” 는 말을 해서 감동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또 소설속의 주인공 해순의 실제 모델이 된 할머니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이야기와 영화촬영 당시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간간히 들려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더니 ‘갯마을’의 작가는 이미 오래전에 작고 했는데 그가 남긴 문학의 흔적들은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해수욕장을 나오다 보니 아직 지지 않은 해바리기 꽃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지난여름 이곳은 아마도 해바라기 천국이었던 모양이다.
바다와 해바라기, 문학과 영화, 그리고 사람들의 오래된 기억들이 얽혀 있는 일광해수욕장은 생각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부산의 한 해변인 것 같다.
- 작성자
- 정헌숙/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1-09-26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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