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의 문화재, 이제는 지켜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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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임에도 가슴은 답답하여 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에 불쑥 금정산을 찾았다. 금정산의 등산 코스는 몇 개가 되지만, 필자는 동문에서 범어사로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매서운 날씨는 어떠한 생각도 떨쳐버리고,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반복하던 찰나에 범어사에 당도하게 되었다.
범어사는 중·고등학교 때 소풍으로도 여러 번 간 적이 있어서 마치 부산 바다와 같이 친숙한 곳이었다. 따라서 매년 석가탄신일이 되면 부산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에 여러 번 가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금정산 자락에 있는 절의 하나이고, 금정산을 등산할 때 동문에서 북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향한다면 마지막에 거치는 단순한 곳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역사를 전공했음에도 범어사에 큰 관심이 없었고, 군대를 강원도로 간 후에 매번 휴가 나올 때 마다 노포동에서 범어사를 지나치면서도 별 생각 없이 집으로 향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의 곁에서 익숙하게 있기에 그 소중함이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서울에서의 숭례문 화재도 그러하고, 우리 지역의 범어사 천왕문 화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는 비단 어느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닌 모두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범어사는 양산의 통도사, 합천의 해인사와 함께 경상남도의 3대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어사는 대웅전과 3층 석탑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데 오늘날 한국 불교계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범어사에 대한 현존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최치원이 지은 법장화상전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범어사는 해동 화엄종 십찰 가운데 하나로 되어 있다. 이는 일연이 「삼국유사」서 신라의 화엄 십찰을 열거하는 중에 ‘금정범어’라고 한 것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이들 기록에는 범어사의 창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고 명칭만 보일 뿐이다. 따라서 범어사의 사격(寺格)이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제대로 알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신라 때부터 금정산과 범어사라는 명칭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 종파불교의 성립을 보여주며, 이후 부산 지역의 왜구의 침입에 맞서는 호국의 성격을 가지기도 하였다. 또한, 일제시기에 들어서 부산·경남 지역의 만세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채상식, 『범어사』, 대원사, 1994)
불행 중 다행이랄까? 범인은 범어사의 처사로 밝혀졌다. 하지만 화재의 상처는 그대로이다. 우리의 후손에게 오늘날의 문명만을 전해줄 것인가? 우리 지역의 문화재는 단순한 유적이 아닌 물질적인 재산이며, 또한 우리의 역사를 알게 해주어 자긍심을 높여준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 지역의 역사 속에서 말없이 모든 애환을 함께 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 작성자
- 이원석/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1-01-24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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