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동승두말(마을)의 비밀 이야기.
- 내용
오륙 도는 명승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서 썰물과 밀물에 따라 대 여섯 개의 섬으로 보인다고 이름을 붙인 것 여기까지는 타지 관광객이나 부산시민이면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섬에는 일본강점기 때 부산요새사령부기지였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우리부산 바로알기 재미나는 이야기를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곳을 소개한다.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세계의 제국주의 열강으로 앞 다투어 후진국이나 약소국을 지배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강제개방과 속국화시키는 시기에 우리와 가까운 일본은 1905년 1월 가덕도에 요새포병대인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설치한다. 그해 5월 일본군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러시아의 발 틱 함대 48척을 대파함으로 1905년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본토공격의 위협을 느껴서 공해상의 길목을 지킬 필요성을 느끼고 부산용호동 오륙도 해안인 승두말(마을)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포진지를 구축한다. 승두말은 해방 전까지 일본군 부산요새사령부기지였으며 30여 년간 활용하는데 몰두한다.
일본군운 승두말 포진지를 비밀리에 구축하면서 용호동 원주민은 물론 외부 민간인을 일체 공사장에 투입하지 않았다. 전해오는 속설에 의하면 한국인을 일본으로 밀항시켜준다고 속이고 배에 탑승 후 바다를 맴돌다가 한 밤중에 육지에 내려놓고 일본에 도착했다고 하면서 구축작업을 시켰다고 한다. 공사를 끝내고 풀려나오니 일본 땅이 아닌 부산 땅이었다는 말에 설득력을 얻는다.
오늘날 일보강점기의 만행을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여 우리 손으로 철저히 없애버렸다. 이런 만행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일본의 악랄한 행태를 공개해야 하는 것을 오늘날 흔적도 없이 훼손하고 그 땅은 관광지로 개발한다.
해방이 후 요새사령부 본관, 군인관사 등 많은 건물을 용호동 주민들이 조직한 치안대가 접수하여 밤낮으로 건물을 지켰다. 어느 날 서울 군정청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곳에 국립대학 건립을 위한 준비 차 내려왔다고 하면서 치안대의 수고를 치하 하면서 건물수호는 철수한다.
그 후 부산과 영남일대를 배회하던 나병환자와 그 가족들이 집단으로 입주하면서 국립나환자수용소의 간판을 걸었다. 오늘날 당시의 사람들은 소록도 등 뿔뿔이 흩어버리고 대형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포진지 자리는 해파랑 길 안내소가 들어선다. 관광객이 줄을 잇는 ‘스카이워크’는 주말을 이용한 사람들의 운집으로 주변은 교통체증으로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는다.
오륙 도라는 이름은 가장 가까운 방패 섬과 두 번째 섬인 솔 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섬은 허리아래 물속은 붙어있다. 썰물일 때는 ‘우삭도’로 부르는 하나의 섬이다. 밀물일 때는 방패 섬과 솔 섬은 두 개로 보이는데서 사람이 보기에는 다섯 개와 여섯 개의 섬으로 보이는 데서 오륙 도라고 한다.
한편 이 섬들은 한때는 지번 없이 바다의 외로운 무인도였다. 1927년 오륙 도 발 섬(등대섬)섬에 등대를 세워서 바닷길을 훤히 밝혔다. 1978년에 남구 청에 의해 국유지로 등록을 하고 섬에 지번을 부여받아 토지대장에 등재를 한다. 지번은 가까운 섬부터 부산광역시남구 용호동 936번지에서 941번지까지이다.
- 작성자
-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6-02-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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