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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05호 기획연재

문학은 활자가 아니다...만나서 말하고 이야기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다

부산의 전시·문화공간 ⑤ -생활문화공간 곳간·회복하는 글쓰기

내용


 삶은 치욕의 지뢰밭이다. 치욕을 견디지 못하면 절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생(生)을 파자(破字) 하면 소(牛)가 외나무다리(一)에 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이다. 생은 얼마나 위태롭고 아슬아슬한가. 그 위태로움을 피해 잠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킨 후 다시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우리는 `대피소'라고 부른다. 그런 대피소는 위태로운 생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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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간'이 모이는 공간인 `회복하는 생활' 풍경. 책을 매개로 한 모임답게 문학·철학·역사·등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소하고 별 볼 일 없는 것들에 깃든 구원
 부산의 소장 문학평론가 김대성 씨는 문학의 기능을 `대피소'라고 명명한다. 이는 문학을 통해 삶의 대피소를 찾는 의미이기도 하고, 대피소에서 문학의 문을 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피소의 문학'이란 김대성 문학평론가가 제창한 개념이다. 그가 펴낸 문학평론집 `대피소의 문학'(도서출판 갈무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무너지고 쓰러질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절실한 것은 미래나 희망이 아니라 오늘을 지켜줄 수 있는 대피소이다. 대피소에선 사소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이 사람을 살리고 구한다. 한 잔의 물, 한 마디의 말, 몸을 덮어줄 한 장의 담요,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소중했던 기억 한 자락. 대피소에 당도한 이들은 그제야 마음 놓고 몸을 벌벌 떨 수 있다. (생략) 몸을 진정시킨 후 그곳에선 벌벌 떨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를 한다는 건 닫혀 있는 세계의 문을 자신의 힘으로 열고 나가 바깥으로 통로를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대피소의 문학', 갈무리, 2018)



소장 문학평론가 김대성 주도 문학·글·삶 접목 활동
위태로운 생을 구조하는 `대피소'로서의 문학 지향



 김대성 씨의 `대피소'는 언뜻 임시방편처럼 보이지만, 이 세계가 추방한 것들, 이 세계가 억압하는 것들, 이 세계가 외면한 것들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사회적 구속과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생존'의 절박함 속에서 다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피소에 들어선 이들 곁에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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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예술모임 `곳간'이 한달에 한번 열고 있는 독서모임.



문단 전유물 아닌 모두의 문학 지향
 2007년 `작가세계'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 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그에게도 이 `대피소'가 필요했다. 문단의 견고한 성벽 앞에서 그는 생각했다. 문학은 문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것, 그는 벽을 허물고 문을 달기로 했다.
 2013년, 김대성 씨는 `곳간'을 열었다. 이름하여 생활 예술 모임이다. 문학의 허위를 벗어던지고 삶 속으로 들어와 그 속의 예술과 문학을 발견하자는 뜻이었다.
 `곳간'이라는 공간은 곡식과 씨앗을 저장해 놓는 곳이다. 그 곳간의 기능을 차용하되 의미는 변용했다. 사람이 부대끼고 경합하고 어울리면서 오랜 시간 일구어온 삶의 역사가 적층(積層)된 장소의 의미로 쓰였다. 자물쇠를 달아 저장된 양식을 지키던 것과는 달리 문을 활짝 열었다. 어떤 자질이나 자격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장소(곳, 場)이자 이야기와 나눔이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간, 間)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곳간은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모임 자체가 공간이다. 사무실이 따로 없이 모임이 열리는 곳은 어디나 `곳간'이 된다. 이 `곳간'에서 (문단이라는)제도 바깥의 사람들이 모이고 부대끼고 어울렸다. 이름이 없지만 문학과 예술에 대한 핍진함은 누구보다 앞섰다.

개개인 생활 속에서 예술 발견하는 곳
 `곳간'은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대피소가 되었다. 삶으로서의 예술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 대피소에 모여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들의 각자 쌓아온 이력과 일상 속에서 문화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것,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이미 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발견해 낸다.
 `곳간'에 모이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등단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직장인, 취업준비생, 주부, 배달원 등 나이, 성별, 직업의 구분없이 어우러진다. 이들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면서 생긴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이곳의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가 독서모임인 까닭이다.
 지금까지 64회나 열린 독서 모임은 책을 읽기 위한 모임이라기보다는 책을 매개로 만나는 모임이다. 그러기에 획기적인 독해 방식이나 거창한 방법론에 의한 작품 분석을 하지 않는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혜안이나 전문가적 태도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삶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의 온축(蘊蓄)된 힘으로 읽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기 속의 이야기로 `곳간'을 연다. 저마다의 살아온 삶은 문학 작품을 경유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바로 `문학적 순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김대성 씨는 "일상의 관계 속에서 나누는 말에 문학적 순간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생활문화모임 곳간 내부

중구 중앙동 또따또가에 입후해 있는 '회복하는 공간'. 생활문화모임 곳간이 협력업체로 빌려 사용하는 곳이다.



느슨한 관계 그러나 서로 배려하는 곳
 자물쇠를 없애 버린 `곳간'은 들고남이 자유롭다. 매회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처음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알 수 없는 이들도 책 한 권 들고 찾아온다. 신기하게도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삶과 감흥의 순간을 나눈다.
 `이야기는 본질상 전달하는 것이 아닌 나누는 것이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이 문장을 인용해 김대성 씨는 `곳간'의 본질을 보여준다.
 김대성 씨는 문학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나눈다는 말 속에는 나눔으로써 다른 무언가가 되는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다른 것이 되고자 하는 열정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통해 관계를 맺는다. `곳간'의 정신이자 고유성이다.
 이같은 `곳간'의 정신은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이곳으로 모여드는 이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느슨함'을 강조한다.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학연이나 지연이 아닌, 선생이나 선배의 도움 없이, 관계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기꺼이 나누고,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권리를 공유한다.

일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생활글쓰기
 `곳간'은 2019년모임 '회복하는 글쓰기'가 원도심 문화 창작 공간인 또따또가 4기 입주 단체로 선정됐다. 생활예술모임 곳간은 '회복하는 글쓰기' 가 협력하는 단체로 공간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회복하는 글쓰기 모임'이 구성돼 5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이들은 함께 어울려 읽고 쓰는 작업을 한다. 정기적으로 생활 글쓰기 모임을 열고, 생활 예술 모임인 `곳간'과 협력해 한 달에 한 번 한국 페미니즘 소설 읽기, 한 작가 전작 읽기 등 다양한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문학의 곳간'도 운영한다. 또한 웹진 및 문집 작업을 통해 각자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길어 올린 비범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보관한다. 작가 초청 낭독회, 저자와의 만남, 문학 콘서트, 전시뿐만 아니라 생활과 문학을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을 한다. 2016년에는 생활 글쓰기 모음집 `문이야, 무늬야'도 발간했다.
 문단이라는 제도를 벗어나 생활 속으로 들어온 젊은 비평가 김대성 씨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 관계를 통해 기꺼이 위태로운 삶과 문학의 든든한 `대피소'가 되어 주고 있다.
 `대피소'를 거쳐 간 사람들은 비로소 삶이 `생존'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눈부신 부활이다.
 글 김진·사진 권성훈


 김진

동화작가. 글과 책에 매혹되어 기자,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우리 동네 마루'로 등단, 제3회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펴낸 책으로 `럭키 파트라슈',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외뿔 고래의 슬픈 노래' 외 여러 권이 있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에서 삶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고 있다. 부산의 매력에 빠져 언젠가 부산과 부산 사람을 소재로 한 글을 쓸 생각이다.


                                                                                                                               글 김진 사진 권성훈





                                                                                                  기획 진행 편집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5-04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2005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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