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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04호 기획연재

야산 배밭에서 시작된 예술 원도심 중심에 뿌리 내리다

시각예술 중심 현대미술 대안공간 `오픈스페이스 배'

내용

부산의 전시 문화공간 ④ `오픈스페이스 배'

오픈스페이스배 전시장

오픈스페이스배 전시장 내부.


새로운 키 찾아 원도심에 닻 내리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구양수가 말했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시능궁인(詩能窮人)'. 궁핍한 환경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잘 쓰게 하고, 또한 시를 쓰는 행위가 시인을 궁핍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시대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또한 여기서 시를 예술로 환치시켜 읽어도 딱 들어맞는다.
예술가로 사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가난이 친구처럼 옆에 있어 예술가를 좌절과 절망으로 몰아붙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는 그 좌절과 절망을 통해 창작의 영감을 받고 혼을 불태우게 된다. 거기에는 사심이 끼어들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을 추구하는 영혼이 있고, 그 힘은 예술을 비로소 예술이게 하기도 한다.
미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 겸 창작 공간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오픈스페이스 배'(중구 동광길 43)가 걸어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2000년, 부산의 젊은 미술가, 특히 시각예술 중심의 작가들은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마음껏 창작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곳, 실험 정신 가득한 작품도 눈치 보지 않고 전시할 수 있는 곳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공간을 찾아 나섰고, 틀을 벗어난 번뜩이는 생각은 힘을 발휘했다.


오픈스페이스배 전시장 02

오픈스페이스배 전시장 내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도시를 오히려 벗어났다. 빌딩이나 건축도 탈피했다. 그들이 택한 곳은 한적한 농촌마을의 축사와 농막이었다. 작업과 전시, 그리고 생활까지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열악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함께 참여한 작가의 고향 마을이기도 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기존의 전시장 개념을 깨뜨리고, 현대미술의 그 어떤 실험도 수용한다는 생각은 이념이 되었다. 농막과 축사는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되었다. 30대 중후반의 작가 10여 명은 `아트 인 오리'(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의 지명에서 따옴)라는 예술 창작 공간이자 공동체를 그렇게 탄생시켰고, 이는 지금의 오픈스페이스 배의 전신이 됐다.



신산고난했던 유랑 끝내고 동광동에 새 보금자리
20년 내공 전시·레지던스·아카이브 갖춘 예술거점

2006년, 서상호 대표를 비롯한 10여 명의 작가들은 아트 인 오리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장소를 물색했다. 보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았다. 그래야 오래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서 대표의 지인이 자신의 배밭에 창고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대안예술공간을 운영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비포장도로에 묘지가 가까이 있을 만큼 외진 곳이었다.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에 있는 약 14만8천760㎡(4만 5천여 평)의 너른 배밭에 낡은 창고 하나. 그곳에 자리를 잡고 오픈스페이스 배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난한 청년작가들이 만든 창작 해방구

 배밭에서 시작했으니 배(pear)의 의미로, 예술의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의미에서 배(ship), 발전하고 증가하는 의미에서의 배(double) 등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새로운 공간(배밭)에서 이루는 구성원들이 한 배(ship)를 타고 현대미술의 발전(double)을 도모한다는 취지도 반영됐다.
 작업장과 전시장을 분리해 운영하고,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스를 열었다. 개인 작업을 하면서도 서로 정보와 정서를 나누고, 때로는 숙식도 할 수 있게 해 이곳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해방구가 됐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과 전시회는 물론이고, 학교를 졸업한 뒤 막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에게 예술가로서 사회 활동에 필요한 교육, 전시 작가들을 위한 비평과 홍보 지원, 제작비 지원 등의 활동을 했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순항했다. 색깔 있는 현대미술, 실험미술 작가들이 찾아들었다. 특히 지역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중앙 무대에서 외면받는 실력 있는 작가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작업하고, 마음껏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이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었다.
 서상호 대표를 비롯한 구성원들은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작가들의 창작 욕구를 해소시켜 주었다. 부산미술협회, 부산문화재단 등과 유기적 관계를 통해 미술 관련 프로젝트도 진행했고,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이끌거나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등을 통해 예술가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운영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40년 세월 품은 낡은 건물에 정박하다



오픈스페이스배 전시장 03

오픈스페이스배 전경.


 `무상(無常)'이라는 불교 용어는 말 그대로 `상(常)'이 없다는 것이다. 만물은 매순간 변한다는 뜻이다. 일광 시대의 오픈스페이스 배는 또 다른 변화를 맞아야 했다. 외지고 사람의 발길도 드물었던 일광의 배밭에 개발의 바람이 분 것이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그 여파에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나서야 했다. 일광에서 문을 연 지 십여 년만이었다.
 2019년 1월, 오픈스페이스 배는 부산의 원도심인 동광동에 안착했다. 일광을 떠나 4년동안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있는 전시 공간을 후원받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익 구조에 연연하지 않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공간이 요원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부산 원도심이었다.
 중구 중앙동·동광동 등 원도심 일대는 부산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원도심 재생사업의 영향으로 새롭게 부산의 문화예술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었다.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단체들이 원도심에 둥지를 트는 것을 보고 예술적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

 발품을 팔아 북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10년 넘게 방치된 건물을 찾았다. 40년 세월에 풍화된 낡고 좁은 건물은 수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9년 11월 13일 두 개의 전시를 오픈하며 동광동 시대를 열었다.
 공간적으로 오픈스페이스 배는 비영리단체 오픈스페이스 배의 철학을 상당 부분 구현했다. 지상 4층 건물은 오로지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1층과 4층은 전시실, 2층은 사무실, 3층은 레지던스 공간이다. 맨 위 옥탑방은 아카이브와 함께 외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부산의 역사가 촘촘하게 직조되어 있는 원도심의 낡고 오래된 골목과 가파른 계단은 독특한 매력과 분위기로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고 했던가. 동광동에 닻을 내리고 일 년, 오픈스페이스 배는 청년예술에 대한 새로운 실험에 도전한다. 오래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오픈스페이스 배와 마주하고 있는 건물 1층에 `안녕 예술가'라는 프로젝트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생애 첫 전시를 하는 작가들을 지원할 예정이다.


 혁신적인 기획·전시로 브랜드화 꿈꿔

 20년여 년 동안 오픈스페이스 배를 이끌며 쉼 없이 달려온 서상호 대표는 어렵사리 마련한 새 공간을 두고 고민이 깊다. 이곳에 젊은 작가들이 많이 모여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창출하고 싶어 한다.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운 세대들이 유입되어 보다 실험적이고 가치 있는 기획과 전시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 대표는 오픈스페이스 배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작가가 나오고, 실력 있는 비평가, 큐레이터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픈스페이스배 전시장 내부

오픈스페이스배 내부.


"이곳을 통해 나온 작가들이 작가로서 당당하게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이 공간이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럽의 경우 비영리 공간이 수십 년 한 장소에 있는 것이 매우 흔한 일입니다. 도시가 개발되어도 그 공간의 가치가 인정되어 살아남는 것이죠. 그런 풍토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쉽게 일어나 이와 같은 예술공간마저 쉽사리 사라지고 말지요."
 현역 작가이기도 한 서상호 대표의 말에서 예술가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난다.

 이제 오픈스페이스 배는 일광의 `배'(pear) 시대를 지나 부산의 역사가 시작된 곳, 항구가 보이는 동광동에서 `배'(ship)의 시대를 맞았다. 온전한 오픈스페이스 배의 공간인 이곳에서, 이전에 이룬 명성과 성과가 `배'(double)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진·사진제공 오픈스페이스 배


 

김진

동화작가. 글과 책에 매혹되어 기자,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우리 동네 마루'로 등단, 제3회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펴낸 책으로 `럭키 파트라슈', `노래하는 여전사 윤희순', `외뿔 고래의 슬픈 노래' 외 여러 권이 있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산에서 삶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고 있다. 부산의 매력에 빠져 언젠가 부산과 부산 사람을 소재로 한 글을 쓸 생각이다.



                                                                                                                                            진행 김영주_funhermes@korea.kr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20-04-0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04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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