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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배고픔에 떡과 맞바꾼 논 세 마지기

이야기 한마당 - 동구 초량동 '떡논'의 유래

내용

오늘날의 중구 지역이나 동구 지역은 가파른 산비탈이 되어 집을 짓거나 길을 내기 어려웠는데 1900년대에 들어서서 그 산비탈을 깎아 내려 바다를 메워 집이 서고 길이 열렸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런 산비탈이었다 해도 먹거리를 위한 논이 비록 좁기는 하나 군데군데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논치'라든가 '떡논'이라든가 하는 논과 관련된 지명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고, 그에 대한 유래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논치'는 중구의 영주동에서 바다를 향해 뻗은 영선산(營繕山 : 중구 동광동5가 중부경찰서와 부원아파트가 있는 자리에 솟아 있었던 산으로 1909년∼1912년 사이 깎아 내려져 바다가 메워졌음.) 기슭에 있었던 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지명처럼 사용된 '논치'

'논치'의 '치'는 그쯤 그 자리란 뜻의 접미사(接尾辭 : 뒷가지)로 우리가 누워서 발이 있는 그쯤 그 자리를 말할 때 '발치'라 하고 자갈이 있는 그쯤, 그 자리의 위치를 말할 때 '자갈치'라 하는 것처럼 논이 있는 그쯤 그 자리라 해서 '논치'라 한 것이다.

이 논치의 논은 좁디좁은 논이었지만 그 아래 바다에 있었던 어장을 '논치어장'이라 하고, 뒷날 논치 위쪽에 시장이 생기자 그 시장을 '논치시장'이라 했다. 그렇게 '논치'가 한 지역의 지명처럼 사용되었다. 그리고 동구의 부산본역 앞 중앙로를 건넌 자리인 중국화교학교 근방의 남선창고 자리에는 '떡논'이란 논이 있었다. 이렇게 딴 지역에서는 흔한 논이 지명으로 들먹여진 것은 가파른 산비탈 지역이 되어 논이 귀한데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구 초량동의 떡논에는 유래가 있다. 떡논은 화교학교 북쪽 자리가 되는데 그곳에 청국(현 중국) 영사관을 짓기 위해 측량을 한 것은 1883년의 일이었다. 그때의 그 자리 주위는 공동묘지였고 그 아래 논이 있었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남선창고 자리로 그 당시는 '떡논'이라 했다. 그 떡논 주위를 말할 때도 주위에 특정의 이름이 없어서 그저 떡논이라 했다. 말하자면 논치가 있어 그 주위를 모두 논치라 하듯 떡논이 있는 주위 모두는 떡논이란 이름으로 통했다.
 

가뭄에 떡과 바꾼 논 '떡논'

그렇게 떡논이 된 것은 1877년의 일이라고 한다. 그 해는 가뭄이 심해서 곧 흉년이 들었는데 그곳에 논을 가졌던 사람도 흉년으로 극도의 굶주림에 빠져 있을 때란 것이다. 그때 떡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논 주인이 허기진 주림을 이기지 못해 그 떡을 주면 저 세마지기 논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고 떡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그 떡의 양이 얼마만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논 주인의 허기짐이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못 먹은 굶주림은 주려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지만 그만큼 그는 다급했던 것 같다. 사실 우선이 급하니 우선의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은 이듬해 봄의 일이라 한다. 농사철이 되어도 그 논을 일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웃이 이제 봄이 왔으니 농사 차비를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논 주인은 저 논은 지난해 나에게 떡을 준 그 사람의 것이라 하면서 나는 농사 지을 권한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그 논과 그 지역을 '떡논'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뒤의 논은 누구의 경작지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자리에 1900년 부산 최초의 창고이자 현재 부산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인 북선창고(北鮮倉庫 : 현재의 이름은 남선창고)가 세워졌다.
 

떡논 자리에 북선창고 건립

이 북선창고는 북선인 함경도의 함흥·원산지방에서 배로 오는 명태를 저장·보관해서 북선창고라 했다. '명태고방'이라고도 했는데 초량의 객주업자(客主業者)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것이다.

1905년 경부선철도가 부설되자 명태 같은 건어물이 함경도에서 배로 부산으로 와서 경부선을 통해 영남·호남·충청·서울 지역으로 퍼져갔다.

그러나 1914년 원산과 서울 사이 경원선(京元線)철도가 부설되고 함경도 어산물이 경원선을 통해 서울로 직송되자 부산으로 배로 오는 어산물이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북선창고란 이름은 남선창고란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전기·전자 제품과 가정용 용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바뀌었다.

그러나 붉은 벽돌로 된 옛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떡과 맞바꾼 논인 그때의 떡논과 오늘날의 부산본역 바로 앞이 된 그때 그 자리인 남선창고 부근의 지가상승폭(地價上昇幅)은 얼마나 될까? 그 사이 125년이 흘렀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2002년 5·6월호
작성일자
2013-03-20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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