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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범 내려오는 내가 흐르는 골짜기 ‘범내골’

부산의 지명 유래 - 범천동과 범일동

내용

동구 지역의 수정산(316m)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동천에 흘러드는 하천을 '범내'라고 한다.

이 '범내'는 범이 내려오는 내<川>라 해서 주위 사람들이 범내라 하고 그 내가 흐르는 골짜기를 '범내골'이라 하고 글자로 기록할 필요가 있게 되자 범을 무릇 범(凡)의 한자음을 따고 내 천(川)자를 그대로 써서 범천(凡川)이라 표기한 것이다.

이 범내인 범천은 1700m 정도로 그리 긴 내는 아니지만 중·상류 산비탈인 지금의 변전소(變電所) 위아래는 1910년 한일합방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울창했다. 그래서 호랑이가 번성된 때는 백두대간 등줄기가 다한 끝자리 이곳까지 내려올 만했다.

미역감기를 좋아한다는 호랑이고 보면 이 범내골 골짜기에서 미역을 감을 만도 했다.

범내 하류에 마을이 생기자 자연발생적인 이름 그대로 범내(자연마을로서의 이름) 또는 '범내골'이라 하게 되었다.

이곳 지명을 범 호(虎)의 '호'자를 써서 호천(虎川)이라든가 호천곡(虎川谷)이라고 표기했다.

이는 범내에 돌다리를 놓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호천석교비(虎川石橋碑)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호천이란 말은 그리 쓰지 않고 범내 또는 범천이란 말이 지명으로 굳어졌다. 그것은 1740년 발간된 '동래부지' 각면각리원근정도(各面各里遠近程道)에 “동평면(東平面)을 범천일리(凡川一里)라 하고 동래부사청에서 20리 떨어져 있다”했고 “범천이리(凡川二里) 또한 같은 거리로 떨어져 있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1899년 발간된 '동래부읍지' 역시 범천일리(凡川一里)와 범천이리(凡川二里)가 행정동명으로 기록되면서 부산면(釜山面) 소속으로 되어 있다. 이는 지난날의 동평면이 동평면과 부산면 두 면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구한말인 1904년에는 부산면이 동평면에 다시 흡수되면서 범천1리와 범천2리는 범1동 범2동 범3동으로 천(川) 자가 빠진 3자 동명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부산부와 동래군이 나누어지면서 범1동과 범2동의 2개동으로 줄어졌다. 1932년에는 범1동과 범2동이 병합되어 범일정(凡一町)으로 다시 줄어졌다.

1960년에는 구제실시(區制實施)로 동구에 범일 제1동과 범일 제5동까지로 늘어나고 동구의 범일4동이 부산진구에 편입되면서 부산진구는 범천 제1동에서 범천 제3동까지의 동명이 새로 생겨났다. 그러므로 범내의 범천이란 이름은 부산진구가 생겨나면서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동구의 범1동∼범5동(현재는 범일1·2·4·5·6 : 3동은 남구에 편입)이나 부산진구의 범천1동∼범천4동(범천3동은 남구 문현동에 편입) 모두 범내인 범천을 그 근원을 삼고 있지만 실제의 범천은 동구의 범일동 쪽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이 범일동이나 범천동의 확대는 바다가 매립되어 지역이 확대된 데서 온 것이다.

범내골 로터리 70년대(위)와 현재 모습.
작성자
부산이야기 2001년 11·12월호
작성일자
2013-03-1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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