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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동래부사청 서쪽 위치한 '서면'

부산의 지명유래 - 서면과 부전동·전포동
부전동 명칭 1936년 첫 등장

내용

1740년 발간의 동래부지에 의하면 동래부는 읍내면·남촌면·서면·북면·동평면·사천면(沙川面)의 7개 면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면’은 동래부의 치소(治所)가 있는 부사청(동래구 수안동)에서 서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이 서면은 산저리(山底里:현 온천3동)·여고리(余古里:현 사직동)·석사리(石寺里:현 사직동)·대조리(大鳥里:현 거제동)·거벌리(居伐里 현 거제동)·초읍리(현 초읍동)·양정리(현 양정동)·전포리(현 전포동)·만덕리(현 만덕동) 등으로 되어 있다.

1970년도 서면 로터리.

이 가운데 전포리와 범전리는 현재도 서면이라 불리는 그 지역에 들어 있고 서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부전동(釜田洞)은 그 당시는 범전리와 전포리 그리고 동평면의 부현리(釜峴里) 사이에 있어 그 마을들에 나뉘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 부전동은 일제강점기 부산부 부산출장소를 부전리에 둘 때인 1936년에 정식 행정동명으로 등장한다. 이 이름은 부현리의 ‘부’와 범전동·전포동의 ‘전’을 따서 부전동으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부전2동 지대는 지난날은 바다였는데 냇(川)길 따라 흘러내린 돌자갈과 모래가 쌓여 생겨난 자연매축 지대다. 그것은 황령산과 마비현(馬飛峴)에서 발원한 전포천, 성지곡수원지에서 발원한 부전천, 백양산에서 발원한 당감천(감물내) 그리고 그 내의 하류가 어울려 바다로 빠지게 한 동천(東川)의 흐름이 바다를 메운 땅이다.

그러한 사실은 1592년 임란 당시 부산포해전 때 왜군 군선이 오늘날의 제일제당 앞쯤의 바다에 정박해 있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바다가 서면 깊숙이까지 와 닿은 갯가에 밭이 많아 황령산 기슭 마을은 밭 전(田) 갯 포(浦)의 전포리가 되었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2001년 9·10월호
작성일자
2013-02-2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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