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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잠들지 않는 밤의 시인, 정영태

예술부산 ‘예인탐방’ 22. 고故 시인 정영태

내용

고故 정영태 시인이 운영하던 다대포 소재 정영태 내과의원에는 유난히 시인, 평론가, 소설가 등 젊은 문인들, 문청들의 발길이 잦았다. 시인이자 의사였던 그의 진료실은 그곳이 의사의 진료실인지 시인의 집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는데, 진료실의 책상 가득 원고지, 메모지를 쌓아두고 시를 쓰다가 환자가 들어오면 진료를 하고 진료가 끝나면 또 시를 쓰는 일의 반복이 그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시로 방문하는 문인들과의 담소 혹은 문학논쟁까지 겹쳤으니 그의 병원을 방문하는 문인들은 병원 측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중앙동으로 나와 문인들과의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술자리에서는 또 어김없이 격렬한 문학논쟁을 벌이곤 했다. 문학뿐만 아니라 클래식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그의 논리는 늘 토론과 논쟁을 유발하며 이끌었고 그런 술자리는 거의 매번 새벽까지 계속되곤 했다. 고故 정영태 시인의 삶은 그야말로 문학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그런 열정이 부산문단, 특히 부산의 모더니즘 경향의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에 관해 누구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수료한 뒤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1985년 『시문학』지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 이전에도 그는 부산대 의대생들의 동인지 『회귀선』을 이끌며 문청시절을 보냈고 등단 이후엔 무크지 『전망』에 참여하며 활발한 문학활동을 했다. 4집 이후 발간되지 않았던 무크지 『전망』은 1993년 정영태 시인의 주도하에 이규열, 송유미, 정성욱, 서정원, 김형술 등 후배시인들에 의해 10집까지 발간되었고 이를 계기로 출판사 전망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문학의 중앙집중 현상에 반발해 대구의 『시와 반시』, 광주의 『시와 사람』이 창간되어 지역문학의 위상을 확립해가는 시기였으나 부산에는 시전문 계간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정영태 시인은 고故 김준호 문학평론가, 송유미, 김경수 등 후배시인들과 함께 1994년 『시와 사상』을 창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강남주, 임명수, 이몽희, 이병구, 탁영완 시인들과 [신서정시그룹]을 결성, 기존의 서정시와는 차별성을 가진 새로운 서정시의 출현과 그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기도 했다.

 

정영태 시인을 ‘밤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시는 대부분 잡다하고 번잡한 일상이 잠시 몸을 숨긴 시간에 잠들지 않고 깨어나 어둠을 거울삼아 몽상의 왕국을 구축하는 작업으로 정리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영태 시인의 시세계는 1986년에 발간된 첫 시집 『결국 우리의 아픈 침묵 속에』를 시작으로 제2시집 『형틀 위의 잠』 제3시집 『꿈의 끝이 여기에 있다』에 실린 시들과 제4시집 『테크노피아의 폐허 위에서』 제5시집 『우주관측』에 실린 시들의 세계가 다소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세계를 에워싸고 축을 이루는 건 언제나 밤과 어둠이라는 점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유일한 평론집인 <밤을 위한 시론>이라는 평론집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정영태 시인의 시세계는 늘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밤의 시공간에 편중되어 있다. 어둠에 덮여있는 밤의 세계는 그 모습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일상이 이루어지는 익숙한 낮풍경의 관습으로 어둠 속을 유추하고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정영태 시인은 그런 밤의 풍경과 속성에 매혹당하여 밤이라는 시공간 안에 마음껏 자신만의 세계를 재창조한다. 일상에 좇겨 한낮에는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를 직시할 수 있고, 존재의 시원을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고, 분열되어 흩어지는 내면의 자아를 마음껏 방목하여 현존하는 세계 너머에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에는 햇빛 아래보다는 밤의 어둠 속이 제격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인에게 한낮의 일상이란 그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터이므로.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어쩌면 굴욕적이었을 수도 있는 시간들이 지나간 뒤에 도착하는 밤의 시간은 시인의 의식을 명료하게 깨어있게 하고 시인을 마침내 시인답게 하는 배려와 축복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하여 정영태 시인의 시 속에는 사실적인 풍경이나 현상의 재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상의 삶에서 부딪치는 갈등과 모순과 부조리들은 시인이 밤을 맞이하는 순간 저절로 지워져버리거나 시인 자신이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것으로 보인다. “중력도 자장도 / 관성도 역학도 / 도형이나 수식도 없는, / 진공과 침묵 뿐인 그곳”(시 「리겔」에서 인용)인 밤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분방한 의식과 감각적인 언어만이 비로소 시인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밤과 어둠은 시인을 자신이 세운 왕국의 군주로 임명한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는 거만한 군주의 어조로, 때로는 군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독과 비애에 가득찬 어조로 밤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런 밤의 군왕이 일상적인 지상의 밤에 만족하지 않고 더 멀리 우주 전체를 관측하면서 전우주의 지배를 꿈꾸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언어의 기능과 시라는 형식의 장르에 대해 맹목적인 신뢰와 신념을 가진 시인, 자신의 시세계에 관한 한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을 가진 시인, 도대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왕성한 창작욕과 열정을 가진 시인. 그게 아마 대부분의 문인들이 기억하는 정영태 시인일 것이다. 그는 시가 아니면 삶이 의미없다고 느끼는 데다 시 이외엔 별다른 욕심이나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시에 치열하게 복무하는 생에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행복을 느끼는, 어쩔 수 없이 천생 시인이었던 것. 제1시집의 발간년도가 1987년, 제2시집의 발간 시기는 1988년, 제3시집과 제4시집의 발간은 1989년 한해에 동시에 이루어졌다.(89년 1월과 89년 10월 발간) 이런 사실은 87년과 89년 3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시집 4권을 묶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시에 매달렸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스스로 밝혔다시피 시를 쓰지 않고 참는 일이 시를 쓰는 일보다 더 고통스러울 만큼 생활인으로서의 일상보다 시 쓰는 일에 몰두했다는 걸 증거하는 결과들이다. 아마도 낮에는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틈틈이 시를 쓰고 밤이면 동료시인들과 어울려 토론과 논쟁을 즐기던 나날들이 자양분이 되어 그 많은 시들을 낳게 했을 것이다. 93년 전망출판사에서 시집 『어머니와 함께 불루스를』, 97년 『그대, 사랑, 욕망』을 출간한 이후 정영태 시인은 병마에 굴복하고 말았다(2005년 3월 작고). 아마도 일상의 업무와 과다한 음주 외에도 부산에서 최초로 시전문 계간지 『시와 사상』을 창간해 일정 괘도에 올려놓는 일이며 또 역량있는 후배 시인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의 무게가 더 빨리 병마를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

정영태 시인 자신이 야심차게 계획한 시세계의 지도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병마의 부름을 받은 일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병마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정영태 시인은 아마 지금도 하루에 몇 편의 시를 쓰고 브람스와 말러, 쇼스타코비치를 들을 것이며 오로지 시를 위해서 미학서적을 탐독할 것이고 성경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이면 중앙동으로 나와서 자신이 읽은 누군가의 시 한 편을 낭송해주며 훌륭한 시를 만난 기쁨으로 얼굴이 붉어졌을 테고, 강경주, 배광훈, 이병구, 정익진, 박강우, 김언 등 동료, 후배 시인들과 격렬한 논쟁과 토론을 벌이며 온몸으로 시를 쓰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작성자
예술부산 2011년 5/6월호
작성일자
2012-09-1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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