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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463호 기획연재

나는 말에서 내렸다, 내 삶을 정리하기 위해

'문화게릴라' 이윤택 감독에게 예술가의 길을 묻다

내용

‘문화 게릴라’ 이윤택(59)을 만났습니다. 부산시 미디어 센터에서 발간하는 잡지 '부산이야기' 중 '차용범이 만난 부산사람'의 이번 인터뷰 대상입니다. 사실 이윤택을 설명하기는 좀 복잡한 면이 있죠.

지방의 극작가·연출가로 출발, 한국연극의 중심에서 부산 예술파워의 위명을 한껏 과시. 국립극단 예술감독 시절  밀양연극촌을 창업, ‘연극농사’ 11년에 어엿한 연극 교육·제작소를 건립. 김해 낙동강변에 자연·인간이 공존하는 예술인 마을을 꾸려 인생 후반작업 중. 지금은 영산대 문화산업(CT; Culture Technology)대 교수. 오랜 항해를 넘어 출항지로 당당히 귀항, 부산문화의 속살을 살찌울 '그만의 작업'에 열을 쏟고 있습니다.

그는 그저 ‘연극감독에서 대학교수까지’는 아니죠. 일찍이 시인으로 등단, 6년 반 신문기자 생활을 했구요. ‘전방위 예술가’란 별칭도 있지요. 특유의 들불 같은 열정에,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정신, 도대체 마를 줄 모를 견고한 에너지의 결실입니다.

먼저 세평 얘기부터, 그는 왜 ‘문화 게릴라’며, ‘전방위 예술가’인가? 그는 한국 예술계의 비정규군일 따름인가?

"나에게 꼭 맞는 별칭이다. 나는 원래 '게릴라'다. 부산에서 연극활동을 시작, 한국 주류연극계를 종횡한 것, 국립극단 예술감독과 대학교수를 지내며 연기실습 교육을 강조한 것, 밀양 연극촌을 거쳐 낙동강변 마을에 정착한 것도 모두 게릴라적 삶이다. 결국 나의 삶의 지표는 '바꾸기'이다. 기존 제도의 딱딱함에 신선한 활력을 주려  한 것이다. 기득권에의 도전이나 포기의지 없인 어려운 작업이다."

'전방위 예술가' 역시 즐겨 수긍한답니다. 시인에 소설가요, 희곡-시나리오-TV드라마를 썼으며, 연극-영화-뮤지컬-무용-축제를 연출했구요. 신문 컬럼니스트이며, 저술가입니다. 예술영역에 관한 한, 널리 인정받은 '멀티 플레이어'인 셈이지요.

이윤택, 그를 키운 바탕에 대하여, "우리에게 왜 연극이 필요한가?"를 묻습니다. "인간은 늘 '변화의 욕망'을 갖고 있다. 연극을 통해 그 본질적 욕망을 해소할 수 있다. 연극을 절대 사라질 수 없다. 가족적 공동체(게마인샤프트)나 이기적 사회(게젤샤프트)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소통하는 예술, 연극은 인간 소통에 가장 좋은 장르이다." 그는 "나는 연극을 참 잘 선택했다"고 뿌듯해 하더군요.

그가 연극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활력'이랍니다. 연극은 삶에 활력을 준다네요. 신명이 있고 움직임(뛰어 노는 것)이 있고, 웃고 울고 노는 것, 그게 활력 아닌가요. 그는 연극을 통해 꾀한 바, 그 '활력'을 잘 전달한 듯 합니다. 한국 연극 100년사에 전무후무한, 연극부문 상을 '싸쓸이'하듯 한 수상기록이 그것이죠.

사실 저는 이윤택의 부산일보 수습기자 1기 후배입니다. 그와 6년여, 같은 편집국에서 지냈지요. 그가 '안정적' 기자생활을 그만 두고 '연극판'으로 뛰어갈 때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함께 술도 먹고 고스톱도 즐긴 선배가 고생길을 자원하는 것 같은 불안이 뒤따랐지요. 당시도 예술에의 끼와 함께, '지곤 못 배기는' 성격 때문에 '독사'란 별명을 얻고 있었고, 저와 몇은 "독사를 잡겠다"며, '망구스파'를 자칭한 기억도 있네요.

"나는 일상적 삶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1980년 군부가 신문기사를 검열하던 시대, 역사적 사건이 잇따르던 첨예한 대립구조, 언론이 지사적 기능을 잃고 방황하던 시대, 이런 일상이 싫었다. 다만, 그 신문기자 시절 6년 반은 참 소중했다. 신문사의 많은 자료를 흠뻑 흡수하며 현실을 읽는 공부를 한껏 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그렇습니다, 그는 언론에의 재미를 잃을 즈음 연극에의 재미를 찾은 것입니다. 그인들 직장을 그만 둘 때 현실에의 걱정이 없기야 했겠습니까? 이번엔 그 부분을 다시 캐물었더니 "뭐, 집사람이 교사였으니 당장 굶을 걱정은 안했고..."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더군요. 그래서, 두렵진 않았답니다. 직장 없을 때 정신적 공황도 겪었지만, 잘 극복했다. 연극에 빠졌기 때문이죠.

그가 한국 연극계를 종횡한 지 26년여. 그는 "이윤택과 그의 극단 '연희단 거리패'는 돌연변이였다"고 단언합니다. 부산출신 배우 이재용은 “부산 공연예술이 부산을 넘어, 온 나라에 바람을 일으키길 원했는데, 이윤택이 그것을 이뤘다”고 평한 적이 있지요. "나는 우리 연극이 해외에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나의 서울 입성 이후 지역-중앙이 보다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 지역 연극인이 서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많이 진출하는 것, 이런 부분 좀 기여했지 않겠나", 그의 자부였습니다.

이윤택의 예술적 열정과 도전정신은 따르는 이들의 귀감인데요. 그는 예술적 영감을 다, 일상에서 찾아낸답니다. 그 많은 인기대작의 아이디어 역시 일상에서 잡아냈답니다. 1980년 국제신문 강제폐간을 보고 '시민 K'를 구상하고, 지인의 상가를 찾았다가 '오구-죽음의 형식'을 만들었답니다. 상가에서 어떻게? 부산 어느 대학 교수의 상가에서 위로성 밤샘 고스톱을 치고 있을 때의 일인데요. 굴건을 쓴 상주가 고스톱판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 수 차례, 마침내 합세하여 고스톱을 즐겼다네요. 그러다 어느 순간 조문객이 찾아들자 그 상주는 어느새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곡을 하며 조문을 받더랍니다. 그 '우스운 모양새'를 작품으로 우려냈다는 것이죠.

그는 왜 부산으로의 귀환을 결심했을까요? "이제 나는 말에서 내렸다. 몽고 기마대의 단점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이젠 나의 삶을 정리하고 완성해야 할 단계다. 한 곳에 머무르기, 더 생각이 깊어지고, 긴장은 커진다. '연희단 거리패' 25년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손수 지은 한옥 거실엔 자료 파일함이 즐비하더군요. 그 파일함들, 젊었을 적 그의 집에서 받은 '사물들의 난잡함'과는 다르게, 나름 참 정연하게 서 있더군요.

부산 귀환의 텃밭은 영산대. 처음 CT대학 학장으로 초빙 받았으나, 그의 기질상 보직을 오랜 지킬 순 없을 것으로 봤습니다. '역시나'더군요. 1년만에 보직을 그만 두곤 지금 후진양성에 열중한답니다. '연기론'과 '극작에서 연출까지'를 강의한답니다. 그의 남은 포부, 부산문화를 살찌울 꿈은요? 연극감독 이윤택은 지금 '부산 생각'에 한창 꽂혀 있답니다.

'부산사람 장영실'을 다룬 작품을 구상 중이랍니다. 장영실과 세종의 관계 속에서 권력과 민중, 개인과 집단, 중앙과 지방의 긴장감을 소설로 쓰고, 창작 뮤지컬로, TV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네요. 제목은 ‘궁리’(窮理).

"부산 인물을 소재로 한 '부산문화 콘텐츠'에, 부산의 많은 애정을 기대한다. 올 가을, '장영실전'을 기획, 전시한 부산시립박물관 강당 300석에서 작은 규모의 뮤지컬로 시작, 다듬어가며 불멸의 작품을 남기겠다." 그는 이 작품을 '문화게릴라'의 종결작, 부산에의 기념비적 대작으로 우뚝 세울 각오랍니다. 대중의 심리를 꿰뚫는데 탁월하기 짝이 없는 '대작 전문가' 이윤택이 나섰으니 그리 어려운 과제도 아니리라 봅니다.

인물탐구 인터뷰를 앞두고 하는 방식대로, '인터뷰의 달인' 이윤택을 만나기로 하고 페이스북 친구들께 알렸어요, "뭘 묻는 게 좋을까" 하는 거죠. 그 중 한 가지, 이 부분은 부산 문화행정에 한창 열 쏟고 있는 어느 여성 '친구'의 제안입니다. "부산문화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고, 넘치는 것은 무엇인가?". 참 경쾌한 질문 아닙니까? 그의 대답은 명쾌하더군요. 바둑 두며 '노 타임'으로 다음 수 두듯 내뱉더군요. 부산문화엔 저마다 '내 잘 났다'고 생각하는 바가 넘친다, 대신 장르 내?장르간 협력은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 적당한 조화만 있으면 부산문화의 역량은 한껏 커질 것이라고 장담하더군요.

그가 성공적 서울생활 속에서 밀양 연극촌을 세운 스토리, 밀양에서 김해로 옮긴 뒷얘기, 그 스스로 듣고 싶어하는 별칭 같은 부분, 잡지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2월말 발간할 '부산이야기' 3?4월호의 온전한 몫이죠. 단 마지막 질문 부분 덧붙입니다. 좀 세속적이긴 하나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입니다, "그동안 연극에 탐닉하며 밥은 제대로 먹었느냐?". "넉넉하진 않았으나 굶진 않았다", 그의 유쾌한 대답입니다. 이윤택, 그는 천상 '문화 게릴라'이며, 연극계의 '꼭두쇠'이더군요. 다들 건강하세요.

작성자
글/차용범·사진/문진우
작성일자
2011-02-2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6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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