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눈 온 다음날 , 복산동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⑮

내용

밸런타인데이였던 14일, 부산엔 때 아닌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새벽부터 내린 눈은 해가 져서야 그쳤고, 공무원들 비상근무도 밤 10시가 되어 해제됐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엄금엉금, 조심조심, 뒤뚱뒤뚱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다녀야했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위한 진통이리라. 비탈길 위에 부모님이 사시는 집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신신당부를 했으리라.

“엄마, 절대 바깥출입 마시고 집안에만 계시소.”

다행스럽게도 눈 온 다음날, 날씨는 맑고 그리 춥지 않아 걱정했던 교통 대란은 없다. 쌓인 눈도 빨리 녹고 있다.

하지만 눈 구경하기 어려운 부산이라 어제 오늘 고지대 주민들은 많이 불편들 하셨을 것이다. 응달이 많은 골목길은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기까지 해서 노약자들이 다니기에 위험한 곳도 많다. 옛날 같으면 미끄러운 곳엔 연탄재라도 뿌려놓는 따뜻한 마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자기 집 앞 눈조차 잘 치우지 않는 세태다. 날씨가 또 추워져 녹은 눈이 다시 얼기 전에 비탈진 골목길은 이웃간에 서로 흙이라도 구해서 좀 뿌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디서 흙을 구하지? 골목길마저 온통 시멘트로 덮여버렸으니...

가야의 꿈이 서린 곳. 복천박물관 주변 복산동 산동네에도 지붕마다 하얀 눈이 쌓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산복도로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다. 골목 벽과 집집마다 그려진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여기는 건강한 복산동’이라는 글이 암시하듯 아마도 ‘생활 건강’을 주제로 한 그림 같다.

애연가들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꾸준히 해 오는 것이 아마도 작심삼일(作心三日) 금연 약속일 것이다. ‘금연을 위한 6가지 방법’을 배우고 담벼락을 돌아서면 ‘담배 독성을 없애는 식품’들이 소개된다.

이 마을 새들은 “짹짹”이나 “지지배배” 대신 “건강하세요”라고 노래하는가 보다.

“건강하세요~^^”

산동네에서 보건소까지 가려면 제법 걸어 내려가야 한다. 가까운 곳에 보건소가 있으면 하는 마을사람들의 바람을 그렸나 보다.

마을 아래 지붕들마다 하얀 눈은 고루 쌓였고, 볕 좋은 마당의 빨랫줄은 모처럼 신이 났다.

장독대에도 눈들이 소담하게 쌓였다. 그 위에 햇살 참 따습다.

길 아래로 푹 꺼져 있는 좁고 어두운 집일망정 지붕 위에 앙증맞은 눈사람을 올려놓을 줄 아는 그 분은 누구실까?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목소리가 골목길로 새어 나온다.

아직은 길이 미끄러워 내리막길은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만물이 다 같으리라.

따뜻한 햇살 맞으며 잠시 쉬어간다.

“뭐 하러 했는지 나도 모르지. 달라질 게 뭐 있겠어요? 사는 건(생활은) 똑 같지.”

마침 어르신 한 분이 햇볕을 쬐며 담배를 태우시기에 “여기에 왜 벽화를 그렸냐”고 여쭤본다.

1잔은 보약, 1병은 독약. 거나하게 취해 이 골목을 지나갈 때 무슨 생각이 들까?^^

처마 밑 고드름처럼 서민들의 시름, 걱정 다 녹아내렸으면 좋겠다.

복산동 산동네 꼭대기에서 마을 아래를 내려다본다.

복천박물관 주변에는 부산문화재단과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가 만든 공공미술품들이 곳곳에 있어 어슬렁거리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산에도 제법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안창마을, 태극도마을, 물만골, 문현동 안동네,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 전포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

전국적으로 큰 유명세를 탄 성공 사례들도 많다. 하지만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담벽에 벽화를 그리고, 미술작품 설치가 주가 되는 현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지역주민의 생활과 삶의 질 향상에 얼마만큼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는 계속 살펴보고 연구·개선해야 할 과제다.

콘크리트 옹벽에는 벌써 매화가 활짝 폈다.

이것도 작품인지……?^^

아기를 업고 가는 아주머니는 아마도 외국에서 온 새댁인가 보다. 사진 찍는 모습을 보더니 휴대폰으로 뭐라고 하는데 처음 듣는 말이다.

아이들이 여기서 썰매를 탔나 보다. 썰매 타고 내려간 자국이 선명하다. 복천박물관 고분 위에는 아직 많은 눈이 쌓여 있다.

박물관을 돌아 나오며 고분 위의 나무들이 꾸고 있는 가야의 꿈을 생각한다.

동래는 역시 전통과 멋이 넘치는 고장이다. 얼쑤! 동래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1-02-1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