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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사동초등학교 학생들의 가방 들어주기 대결

골목길에서 어슬렁 거리기 ⑤

내용

생물은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춰 신체구조를 조금씩 바꿔나간다. 이른바 ‘진화론’이다. 집들도 그러한 것일까? 신평에서 괴정으로 넘어가는 배고개 아래에 있는 집들이 딱 그렇다. 다세대 주택으로 보이는 이 집은 길 쪽으로 다리를 놓아 출입구를 만들었다. 방문을 열고 다리를 건너면 바로 길이고 도로로 이어진다. 1층은 1층대로 지상에 출입구가 있고, 2층은 골목 쪽으로 다리를 뻗었다.


건너편 승학산이 두 날개를 벌려 환영한다. 골목을 따라 승학산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내려가 본다. 얼굴이 앳돼 보이는 우체부가 바쁘게 집집마다 우편물을 나누고 있다. “바뀐 새 주소 때문에 우편물 배달이 좀 나아졌습니까?” 물어보니 “새 주소 적어서 오는 우편물은 아직 없습니다”고 한다. 골목 안 주택가 양지바른 곳에 경로당이 있다. ‘희망 경로당’. 주위 건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직 경로당 나갈 나이는 아니지만 용기를 내어 살며시 들어가 본다. 시멘트를 바른 작은 마당은 화분 하나 없이 황량하다. 1층에 놓인 신발을 보니 할머니들 거다.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살짝 열었다 바로 닫는다.

“거 누구요? 그냥 들어오세요.” 우물쭈물 하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개인적으론, 어르신들 앞에선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게 부담이 돼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게 싫다. 어르신 두 분이 막 바둑을 두실 태세다.

“여긴 아무나 들어와도 돼요. 커피 한 잔 할래요?”

“아, 예. (우물쭈물) 저는 사진 찍는 사람인데예. 지나가다가 경로당 건물이 참 좋아서예. 위치도 양지바른 곳에 있고, 이런 데가 잘 없는데 안은 어떤가 싶어서...”

졸지에 사진작가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어르신 눈빛이 거짓말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 내내 좌불안석이다.

“볕이 잘 들어서 겨울엔 크게 춥지는 않겠습니다. 난방은 잘 됩니까?”

분위기가 멋쩍어서 먼저 말을 꺼낸다.

“겨울 석 달간 유류비가 나오는데 그 돈으론 보일러 기름이 충분치 않아서 보일러는 못 돌리고 난로를 켜요. 바둑 둘 줄 압니까? (맞은편 어르신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바둑을 잘 두는데.”

커피를 타 주신 어르신 눈빛이 대신 바둑을 둬줬으면 하는 눈치다. 아니나 다를까 바둑 두시는 사이에 이것저것 여쭤 봐도 생까신다.^^ 역시 일방적으로 밀리신다.

부산시가 벌이고 있는 경로당 지원사업은 월 10만원의 운영비 지원과 경로당 유형에 따라 연간 50~90만원(5개월치)씩 지급되는 난방비, 동절기에 한시적으로 특별 지원되는 동절기 난방비가 한 곳당 월 28만5천원 정도 된다. 이외에도 노인복지관과 연계하여 경로당 활성화 사업도 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기름보일러 한 달 난방비가 아무리 아껴 쓰도 30만원을 훌쩍 넘는다는 가정이 많다. 경로당은 아무래도 일반 가정보단 기름 사용량이 많을 듯싶다. 기름값도 최근 들어 가파르게 치솟고 있어 부산시의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싶다.

나오면서 싱크대 쪽을 보니 1회용 커피가 4개밖에 없다. 골목 어귀 가게에서 커피랑 주전부리를 좀 사서 싱크대 위에 올려놓는다. 이번 판은 이기시라는 응원이다. 어르신 홧팅!! ㅋㅋ

도로를 건너 승학산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경사진 비탈을 따라 들어선 주택들 사이에 밭들이 제법 있다. 얼핏 보면 집터 같아 보이는데 밭들이 있다는 게 희한하다.

“원래 여기에 집들이 있었습니까?”

“집은 무슨. 원래 공턴데 쓰레기 마구 버려놓은 거 주민들이 다 치우고 밭 붙여먹고 있는 거지. 저기까지 다 밭이잖아.”

등산 가다가 잠깐 들러서 호미질하고 계시다는 어르신은 올해 연세가 79세시다.

“그럼, 땅주인이 나타나면 농사 못 짓겠네요.”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이걸 해서 집에 찬거리도 하고, 김장도 하고, 이웃하고도 나눠 먹고 그러는데 말이야.”

일하시는 모습 찍어도 되겠냐고 여쭤보니 “잘 찍어봐” 라시며 포즈를 잡아주신다.

작지만 텃밭을 갈고 배추며 대파를 기르시는 어르신은 이른바 ‘도시 농부’다. 최근 ‘도시농업’이 큰 화두다. 경기도 광명시를 비롯해 몇몇 도시에서는 ‘시민농업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고 있을 정도다. 기후온난화와 먹을거리 불안에 대한 도시적 대응 성격이 커지만, 농촌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도심 자투리땅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서민들의 눈에 놀릴 땅은 아예 없는 듯하다.

부산 역시 석대매립장을 비롯해 도심 외곽 쪽으로 농협이나 구·군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과 텃밭이 인기다. 집 근처나 교통이 편리한 사유지는 주말농장 임대 형태도 더러 있다.

서민 밀집 지역을 둘러보면 옥상이나 대문 앞이라도 작은 공간이 있으면 예외 없이 꽃을 심거나 작물을 재배하는 ‘다라이’와 상자들이 놓여 있다. 서민들은 이처럼 부지런하고 무엇이든 아끼려 애쓴다. 도심 주택가에 오래 방치된 공터나 폐·공가를 주민 공동 텃밭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벌레 끓는다는 민원보다는 쓰레기 무단 투기가 없어지고 색다른 공동체 문화가 꽃피는 이익이 더 크지 않을까?


어디선가 아이들 목소리가 왁자하다. 본의 아니게, 어딜 가도 어르신들만 만나게 되었는데 아이들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반갑다.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뛰어가 보니 한 눈에 사태가 쏙 들어온다. 추억의 ‘가방 들어주기’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한 아이가 “찍지 마세요”라고 한다. 어라~ 초상권을 주장하네. 대략 난감ㅠㅠ

“너희들 노는 거 부산시청 블로그에 실을 건데”라고 하니 아이들 태도가 돌변한다.

“진 사람이 가방 들고 비탈길 올라가는 사진이 더 리얼해요” 라는 촬영 지시까지 해 준다.^^

다행히도 덩치가 아담한(^^;;) 여학생이 가방을 든다. 남자 녀석들은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사동초등학교 6학년이란다.

“너희들 사진 제목 뭐라고 할까?” 물었더니 약속이나 한 듯 ‘사동초등학교 학생들의 가방 들어주기 대결’ 이란다. 그러고는 다들 엄마랑 반 아이들한테 자랑할거란다.

“엄마, 나 시청 블로그에 데뷔했어요.”

작성자
원성만
작성일자
2010-11-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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