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에서 만난 책, 그리고 이야기 “책, 어렵지 않아요”
동네 한 바퀴 _ ② 창비부산
- 내용
옛 백제병원 2층에 자리한 ‘창비부산’은 책과 이야기가 있는 도서문화공간이다(사진은 중앙홀에 전시된 책을 둘러보는 시민들). 사진:권성훈
온갖 사연 품은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하는 부산역 맞은편. 옛 백제병원 2층에는 창비 출판사가 운영하는 도서문화공간 ‘창비부산’이 있다. 창비에서 발간한 책을 읽고, 작가의 작업공간을 탐험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거나 강좌를 들으며 책, 그리고 이야기와 친해진다.
창비 출판사, 부산 독자와 만나다
창비부산은 창비 출판사가 지방 독자와 만나기 위해 서울 이외 지역에 마련한 첫 번째 문화공간이다. 일회성에 그치는 행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2021년 4월 19일 문을 열었다. 이름부터 부산을 꽝꽝 박아 창비부산. 자리한 곳도 부산 근현대사의 중심이 됐던 원도심이다. 서울에서 찾아온 ‘손님’이 아니라 부산에 속한 ‘부산내기’를 선언한 셈이다. 부산에 스며들어 부산의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곳에서 책과 문화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다.
책을 보여주는 공간,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북 토크쇼’ ‘창비 편집자 학교’ ‘선생님을 위한 여름방학 재충전 특강’ ‘찾아가는 달빛극장’ 등 부산 문화계와 함께하는 다채로운 행사로 환영받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1. 창비부산 입구 2. 다채로운 강좌와 독서모임이 열리는 비평홀 3. 작가의 방 전시. 사진:권성훈
누구나 자유롭게 둘러보세요
책이라니, 출판사라니, 게다가 창비라니. 어떤 이에게는 ‘창작과 비평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겠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발행하고 다채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 출판사 창비다. 솔직히 좀 어렵다. 일주일에 몇 권쯤은 책을 읽는 지성인들이 모여 신랄한 토론과 비평을 펼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쭈뼛쭈뼛 창비부산을 찾았다.
‘누구나 자유롭게 둘러보실 수 있어요.’ 커다란 현수막이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는다. 창비부산이 자리한 옛 백제병원은 1927년 건립한 서양식 벽돌 건물이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으로 문을 열었다가 중국요릿집, 일본 장교 숙소, 중화민국대사관 등으로 변신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개화기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기에 지난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건물 안을 누비는 것 자체가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이다.
‘조심조심 다녀주세요’라는 안내 문구를 따라 2층으로 올라 입구에 들어서면 직원이 친절하게 물어본다. “처음 오셨어요?” 죄지은 사람처럼 놀랄 필요 없다. 이용 방법과 공간에 대한 안내다. 안내가 끝나면 적당한 무관심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책 한 권 읽기 달성
입구 맞은편은 작가의 서재를 옮겨 놓은 듯한 ‘작가의 방’이다. 작가의 창작이나 출판 과정 자료를 볼 수 있는데 전시는 3~4개월마다 교체한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홍민정 작가 전시가 한창이었다. 교정작업 중인 원고, 표지 후보에 올랐다가 탈락한 다양한 일러스트, 깜냥의 인터뷰를 재미있게 구성해 책과 관람객을 한층 더 가까이 연결한다.
중앙홀은 창비에서 발행한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무료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고, 일부 전시 도서는 구매도 가능하다. 부산 작가의 책을 모아 진열해 놓은 곳도 눈에 띈다. 벽을 장식한 마음을 움직인 문장들은 부산시민이 추천한 것. 유명인이 아니라 부곡동 아무개 씨와 같이 우리 이웃의 이름이 소개돼 있어 정겹다. 책 속에서 보물 같은 명구를 발견하고 싶다는 의지도 불러일으킨다.
창가를 따라 자리한 비평홀과 창작홀에서는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독서모임 장소로도 대여하는데 2~10인은 사전 신청 후 무료 이용할 수 있다. 행사가 없을 때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문화재 건축물이다 보니 최대한 원형을 살려 옛 시대로 돌아간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옛 느낌 물씬 나는 창문 너머에는 1930년대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바쁘게 오가고 있을 듯하다.
중앙홀에서 책 한 권을 골라 창가에 앉았다. 한결 상냥해진 바람과 편안한 의자와 탁자가 어우러져 책 읽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마지막까지 질주한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입구에 자리한 책갈피 만들기에 도전했다. 책 속 글귀가 책갈피에 찍히고 마음에도 찍힌다.
책 읽기. 어려웠나? 무료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방문해 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 작성자
- 하나은
- 작성일자
- 2023-03-17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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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202305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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