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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302호 기획연재

정과 한으로 목 놓아 부르는 절절한 망부가(亡夫歌)

김귀엽 부산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이사장
부산 문화재 보유자 최초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 수훈

내용

“스님이 생전에 받으셔야 했는데 제가 대신 받은 겁니다. 부산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소속 28개 단체 회원님과 사무국 직원들께서 다 잘 도와주신 덕분이지 어디 제가 잘나서 됐겠습니까?”

김귀엽 부산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이사장은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남편을 아직도 ‘스님’이라 부른다. 부군인 고(故) 김한순 씨는 부산농악의 전신인 아미농악단의 이름난 ‘상쇠’였다. 한때 지리산 실상사에서 출가한 스님이기도 한 그는 아미동 감천 고갯마루에 있는 대성사에 주석하며 농악단을 이끌었다. 대성사는 풍물패의 사무실과 연습 장소이기도 했다.


15-1 김귀엽 이사장님(최종)
△구덕망깨터다지기 ‘칭칭 소리’ 예능보유자인 김귀엽 이사장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사재까지 털어 지역 굿패들을 물심양면으로 보살폈다.


아미농악단은 6·25전쟁 피란민이 주축이 되어 만든 걸립패였다. ‘걸립’은 마을과 집집을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고 축원을 해 주며 돈과 곡식을 얻는 전문적인 풍물패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찰이 중심이 된 절걸립을 비롯해 낭걸립·시장걸립 등 다양한 걸립패의 활동이 왕성했다.


‘팔도 농악 융합’ 전통문화 용광로 부산


전국 민초들이 피란도시 부산에 몰렸으니 자연스레 부산은 팔도 농악이 어우러지고 융합하는 용광로가 됐다. 아미농악단은 각종 농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상을 휩쓸었다. 1980년에는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2014년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됐다.


“스님은 부산농악의 체계를 잡고, 전수관을 짓고, 중·고등학생들에게 농악을 가르치기 위한 전수학교를 만들고, 수많은 기능 보유자들을 길러내신 주인공이십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부산농악, 다대포후리소리, 구덕망깨소리, 부산고분도리걸립을 발굴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받도록 하는데 앞장서셨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는데도 각 풍물의 동작과 동선을 일일이 손으로 직접 그려 도안을 만들고, 교수님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러 다니셨어요. 부산아시안게임 같은 큰 행사 땐 링거를 꽂고 선두에서 지휘를 했어요.”


이 사람 없었다면 부산 대표 무형문화재도 없어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려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말처럼 주위에선 김귀엽 이사장의 숨은 내조와 희생정신을 입을 모아 칭송한다. 긴 세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사재까지 털어 지역 굿패들을 물심양면으로 보살폈다.


특히 김 이사장은 남편 김한순 씨와 함께 원형을 찾아 복원한 구덕망깨터다지기 ‘칭칭 소리’ 예능보유자로 향토민속예술 발굴·전승·발전에 온 정성을 쏟았다. 또, 남편이 타계할 때 완성을 보지 못한 부산고분도리걸립을 재현·전승하는데도 중심 역할을 해 부산시 무형문화재 18호로 지정받게 했다. (사)부산구덕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사)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연합회 이사장으로서 지역 문화예술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제56회 부산시문화상을 수상했고, 작년엔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부산지역 문화재 보유자가 문화훈장을 받은 건 김귀엽 이사장이 처음이다.

 

15-2 2022년 문화유산 유공자 옥관문화훈장 

△옥관문화훈장 수여식에 참가한 김귀엽 이사장.


깊은 한 담아 아픔을 쏟으며 부른 노래 


“옛날엔 포장걸립이란 게 있었어요. 포장을 치고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고, 표를 산 사람만 포장 안에 입장해서 농악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이었는데. 한 번은 스님이 큰 수술을 하고 입원해 계신데 저보고 농악단 이끌고 진주개천예술제에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관비 낼 돈이 없어서 여관에서 쫓겨나고 시장 공터에서 포장걸립을 열었는데 손님이 안 들어와. 남편은 병원에 있고, 단원들 밥값 댈 돈도 없고, 이 빚을 갚지 못하면 내가 죽겠단 생각에서 죽기 살기 한풀이로 노래를 했어요. 그랬더니 어디서 들어오는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거야. 그렇게 그날 판 표값으로 빚을 다 갚고 집으로 오는데 내 차비가 없는 거예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김귀엽 이사장의 ‘칭칭 소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쾌지나 칭칭나네’랑 같다. 앞소리 뒷소리 주거니 받거니 함께 합창하면 저절로 흥이 난다. 고되게 힘을 쓰면서도 흥청대고 어울리고 부대끼는 집단성은 부산사람들의 기질에 잘 들어맞는다. 


김귀엽 이사장의 꿈은 후배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전통문화예술의 맥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낡아서 비가 줄줄 새는 구덕민속예술관을 새로 짓는 설계용역이 올해 들어갑니다.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전수장학생을 확대해야 하는데 부산의 전수생이 사정이 생겨 다른 시·도로 이사를 가면 지원이 끊겨버려요. 부산·울산·경남은 이미 하나의 경제·생활권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잖습니까. 부울경만이라도 자유로이 오가면서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거주지 제한을 없애고, 고령화시대에 맞춰서 전수자 선발 연령 요건도 바꿔주면 고맙겠어요.”


저잣거리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풍물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며 무형문화재 전승·보전과 부산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며, 무형문화재 예술인들의 경제적 자립기반을 위해 일생을 애써 온 김귀엽 이사장의 남편을 그리는 망부가(亡夫歌)는 그래서 정(情)과 한(恨)이 더 절절히 느껴진다.


글·원성만 / 사진 제공:구덕민속예술관

작성자
조현경
작성일자
2023-02-1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30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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