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린 청정 숲 … 세상 시름 훌훌
2009 부산시보 여·름·특·집 - 부산의 도심 숲길 ④ 범어사
- 내용
숲은 표정이다. 나무와 들꽃,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어울려 내는 표정이다.
금정산 너른 품에 감싸듯 안긴 천년 고찰 범어사엔 다섯 빛깔 표정이 풍경을 이룬다. 일주문 들머리의 노송숲, 계곡 한켠의 등나무숲, 경내에서 만나는 대숲, 금정산성 북문까지 펼쳐진 바위숲, 여기에 각박한 도시 생활에 찌든 몸과 마음의 깊은 내상을 어루만져주는 경건하면서도 부드러운 자비가 범어사 풍경의 한자리를 차지한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범어사의 노송숲은 여름이 절정으로 달릴수록 솔향이 지천이다. 솔향을 들이키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샤워를 한 듯 마음이 맑게 트인다. 망상과 잡념은 흔적없이 사라진다. 치유의 숲이다.
일주문 왼편 계곡은 등나무 군락지다. 등나무는 홀로 서지 못한다. 큰 나무 줄기를 감고 올라간다. 혼자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이치를 말없이 가르친다. 공생의 숲이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과 불이문을 오르면 불이문 오른쪽으로 대숲이 펼쳐진다. 부산의 혼불, 범어사의 기운이 서려 대나무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 이 곳에서는 바람소리마저 예사롭지 않다. 대숲은 올 곧게 세상과 만나라고 말한다. 이름 하여 지조의 숲이다.
금정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 숲이다. 이곳 바위는 어른 두서넛이 누워도 넉넉하다. 바위틈엔 참나무·소나무·팽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바위는 한 번쯤 자신의 품에 누워 살아온 생을 되돌아보라고 속삭인다. 사유의 숲이다.
범어사 숲길을 걸으면 발이 먼저 즐겁고, 마음이 즐겁다. 온몸에 차갑고 맑은 숲의 푸른 기운이 차올라 정신마저 즐겁다.
- 작성자
- 글/조민제·사진/문진우
- 작성일자
- 2009-08-12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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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384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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