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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272호 기획연재

1960년대 말 영주동 일원

피란민 삶의 터전, 산꼭대기까지 좁은 계단…

내용
영주동은 부산항·부산역과 가깝기 때문에 1960년대 피란민들의 터전으로 자리잡았다. 이 일대 산꼭대기까지 피란민들의 집이 들어 서 있다. 오른쪽은 최근의 영주동 일대.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37년 부산부가 최초로 도시계획을 수립할 당시 부산 인구는 21만3천여 명이었다.

부산부는 이를 기준으로 1965년 계획인구를 30만명으로 설정했지만 1944년 32만8천여 명으로 늘었다가 1945년 일본인들의 귀국으로 28만1천여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부산인구는 1949년 47만여 명,1951년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84만4천여명,1965년 141만9천여 명으로 급격히 늘었다.이에 따라 도시는 물론 인근 산 정상까지 촌락을 형성하는 기형적인 도시구조를 갖게 된다.

특히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몰려 온 많은 귀향인과 피란민들은 부산항·부산역과 가까운 영주동에 터를 잡았다.영주동은 산꼭대기까지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부산 최초의 터널인 부산터널은 1945년 4월에 착공하지만 해방으로 공사가 중단, 1956년 공사를 재개해 1961년 8월 준공한다.1964년 10월에 초량 입구에서 메리놀 병원 사이 산복도로가 개통한다.

부산시는 1968년 3월에서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영주동 시범재개발지구의 철거를 시작,지역 주민들을 동래구 서동으로 이주시킨다.

1960년대 말 영주동은 급수차에 의존해 식수를 해결했으며,연탄을 때 겨울을 지냈다. 부산터널 위에서 영주동 산꼭대기까지의 계단(사진 위)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준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작성일자
2007-06-06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12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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