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친절체험 우수사례(10-끝) 어떤 입영전야
김근수(북구 교통행정과)
- 내용
- 초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려는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관내 저소득층 집단이주지역인 주공아파트의 어느 집 문 앞에서 끈질기게 초인종을 누르며 서 있었다. 집안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문이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이튿날 오후 8시에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전날과는 달리 두꺼운 철문 너머로 텔레비전방송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공익근무요원 소집통지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여?” 쩌렁쩌렁 울리는 텔레비전 소리에 아랑곳 않고 그는 무뚝뚝하게 물었다. 간단히 끝내고 싶은 요량으로 손에 든 통지서를 그에게 보여주며, 아들의 이름을 재차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가만히 문밖으로 밀어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어깨 너머로 얼핏 바라보니, 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청년 한 사람이 멍하니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는 청년이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저씨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은 몇 년 전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문밖 출입도 하지 않고, 누가 찾아와도 문을 잠근 채 나와보지 않는다고 했다. 환경미화원인 아버지의 적은 수입으로는 아들을 치료할 마땅한 대안도 없었고, 병 수발을 해줄 친척도 하나 없어 부득이 이 상태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동사무소로 돌아와 구청과 병무청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지정된 날짜에 반드시 입소를 해야 한다는 대답뿐이었고, 달리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입소일을 며칠 앞두고 궁리 끝에 부대로 직접 데려가 책임자에게 그의 사정을 얘기하고 선처를 부탁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입소 바로 전날, 그의 집으로 찾아가 내일 새벽에 데리러 오겠노라 얘기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지난 밤 그렇게 다짐을 해놓았건만 그는 집에는 물론 입소장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병무청과 구청에서 그를 찾는 전화가 계속 울렸다. 그날 저녁, 그와 아버지가 나타날 때까지 집 앞에서 진을 치며 기다렸다. 다행히 그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밤이 늦도록 달래고 설득하기를 반복했다. 이튿날 새벽, 그와 함께 입소부대로 가는 택시를 탔다. 부대 인사장교와 직접 통화를 요청 한 후에야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승낙을 받았다. 나는 인사장교에게 그의 딱한 사정을 얘기하며 귀향조치를 해줄 수 없겠느냐며 부탁을 했다. 하지만 확실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걱정되는 마음에서 그 집을 찾아가 보니 그는 귀향조치를 받아 귀가해 있었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고, 아버지의 감사 인사에 그동안 신경을 쓰면서 뛰어다닌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 재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오면 소집면제 처분을 받을 때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과제 또한 가슴 속에 새겼다. 김 근 수/북구 교통행정과
- 작성자
- 부산이야기
- 작성일자
- 2000-06-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부산이라좋다 제876호
-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