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친절체험 우수사례 - 보물보다 더 소중한 주민등록증
정영봉· 사하구 세무과
- 내용
- 구청에서 7급 승진을 하고 구평동사무소로 인사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던 때였다. 그곳은 해변가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의 동사무소라 건물은 심하게 낡아 있었고 직원 수도 7명이었다. 오래 근무한 직원은 5천여명 남짓한 주민의 생활실태를 거의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어느날, 남루한 옷차림에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할머니 한 분이 쌀부대를 옆구리에 끼고 동사무소를 찾아 오셨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무어라고 웅얼대셨지만 무슨 말인지는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겨우 몸짓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나누어주고 있는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사회담당자가 할머니에게 “얼마 전에 줬는데 또 왔소? 오늘은 없으니까 그만 가소!”라며 큰소리로 외쳤고,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쌀을 달라고 애걸하는 것이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할머니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담당자를 불러 할머니가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40여년을 남의 낡은 기와집 사랑채에서 혼자 살고 계신데, 어찌된 영문인지 주민등록이 없어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될 수 없었다고 한다. 해서 쌀을 구하러 동사무소에 오실 때마다 다른 생보자에게 지급될 쌀을 조금씩 덜어 드리곤 했다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주민등록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살아왔고, 이곳에서 누구보다 오래 살았는데도 주민등록이 없어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이곳을 거쳐간 선배들에 대한 원망에 할 말을 잊었다. 주민등록을 만들기 위한 필요 서류와 절차가 비록 복잡하기는 하지만 행정기관 내부에서 대부분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혼자 살아오면서 세상 정보에 어두운 탓에 주민등록 신고를 하지 못한 할머니의 처지를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일었다. 할머니를 찾아가 주민등록 신고를 위한 본적 성명 나이를 물어 보았지만 언어장애가 있어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글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이름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제일 정확하다 싶은 `박학간\"\이라는 이름을 할머니의 이름으로 정했다. 연세가 얼추 80세쯤 되어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젊게 사시라고 73세로 했다. 본적은 40여년째 살고 계신 할머니의 거주지와 동일하게 신고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인우보증은 3대에 걸쳐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터줏대감이 했다. 이렇게 이웃주민의 도움으로 호적과 주민등록표 개인별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민등록증 발급 담당자의 양해를 구해 내 필적으로 직접 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주민등록증을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던 날, 할머니는 눈물을 쏟으시며 너무나 고맙다고 인사를 마르고 닳도록 하셨다.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 눈물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거 때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어도 투표를 할 수 없었던 나날들, 쌀 배급을 받으러 올 때 꺼내놓을 신분증이 없어 눈치만 보며 차례를 기다리던 가슴 아픔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던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그후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되어 정상적으로 나라의 보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새 주민등록증을 받고 처음으로 쌀과 생계비를 타러 동사무소로 오신 날, 나는 할머니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속주머니 쌈지에서 손수건으로 몇 겹이나 감아놓은 주민등록증을 꺼내 놓았다. 무슨 값나가는 보물보다 더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에 대한 행정서비스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해지는 요즘, 많은 공무원이 대민업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만 이런 작은 관심과 노력으로 주민의 기본 권리가 보호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참 보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 영 봉/사하구 세무과
- 작성자
- 부산이야기
- 작성일자
- 2000-06-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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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8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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