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할시 승격, 부산시 공채시대 열었다”
당시 공무원은 머슴… 집집마다 고지서 돌리고, 거리·하천 청소까지
그땐 비포장 길 즐비한 한낱 변방 … 지금은 상상초월 세계의 중심
부산도약 원동력, 시민모두의 부산사랑 … 행정, 가족 돌보듯 정성껏
- 내용
직할시 50년, 공채 1기 공무원이 말하는 부산
1963년, 부산이 직할시로 독립 승격하며 경남도에서 떨어져 나올 당시 모습은 어땠을까. 당시의 부산 공무원들과 오늘날의 공무원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부산직할시 승격 50년을 맞아 지금은 모두 퇴임,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 부산시 공채 1기생들이 '다이내믹 부산'에 당시의 부산사정과 모습을 가늠케 하는 말들을 전해왔다.
부산은 직할시 승격 50년 만에 대한민국의 한낱 변방도시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부산의 성장과 발전에는 63년 직할시 승격과 함께 공직에 입문한 부산시 공채 1기 공무원들의 역할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큰 기여를 했다(사진은 1963년 직할시 승격 범시민경축대회 모습).1기 공채시험에 구름떼 … 1만명 넘어 상상초월
1963년, 부산은 직할시로 승격함과 동시에 공무원 공개채용 절차에 들어갔다. 부산시 공무원의 첫 공채시대가 열린 것이다. 100명을 뽑는 1기 공채시험에는 1만명이 훨씬 넘게 몰렸다. 부산직할시 초대시장은 육군 준장 출신의 김현옥 씨. 김 시장은 공채시험에 구름떼 같은 사람이 응시하자 "인재가 엄청나게 몰렸으니 계획보다 더 많은 공무원을 뽑으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뽑은 공채 1기 4급 공무원(오늘날의 9급)은 당초 계획의 2.5배가 넘는 278명.
부산시 공보실장, 국장, 구청장 등 요직을 거쳐 벡스코 초대사장을 지낸 이태수, 영도구청장·부산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종진, 부산시의회 사무처장을 끝으로 퇴임한 김부환 씨를 비롯해 정춘길, 김인태, 김동환, 소상보, 임주섭, 천금준, 김임술, 임정렬, 정창조 씨 등 초초명장들이 공채 1기다.
부산시 미디어센터를 찾아 당시를 이야기 하는 이태수 씨.공채 1기를 대표해 이야기보따리를 푼 이태수(76) 씨는 시험을 치던 날과 임용 당시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시험을 치러 온 까까머리도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장정도 있었어요. 그러니 같은 공채 1기생이라도 나이 차이가 많게는 열 살까지도 났습니다."
이들이 임용장을 받은 것은 1963년 2월25일. 이 씨는 그때 들은 김 시장의 훈시가 지금도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김 시장의 훈시 요지는 이랬다. "나는 큰 머슴, 여러분은 작은 머슴이다. 머슴처럼 열심히 일하자. 빗자루로 청소하듯 묵은 관행과 부정부패를 깨끗하게 청소해나가자!"
부산시 공채 1기 공무원들에게 주문한 김 시장의 훈시처럼 이들은 오늘날의 부산시가 있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체계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공무원이자 머슴이었다 할까요. 50년 전 공무원은 그야말로 일꾼이었습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수도계량기를 검침하는 일, 입영통지서나 세금고지서를 돌리는 일, 세금을 제때 안내면 다시 집집마다 세금을 받으러 발품을 팔고 돌아다닌 일…. 지금은 검침원이 따로 있고, 인터넷으로 손쉽게 처리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때는 공무원이 도맡아 몸으로 쳐내야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는 새벽마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 골목길을 쓸었고, 쓰레기가 뒤범벅인 하천을 청소하며, 산비탈을 깎아 길을 내는 것도 공무원의 몫이었습니다. 고달픈 시절이었지요."
부산발전 디딤돌 놓고 성장 이끌어
부산은 직할시로 승격되고 나서야 도시구획정리사업을 시작했다. 그전에는 대로변 큰길이나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을 했을 뿐, 주택가로 한 블록만 들어서면 비포장도로여서 비만 오면 질척거렸다. "사상로 큰길을 내니까 시민들이 그래요. 저 사람들이 미쳤다고. 다닐 차도, 사람도 없는데, 무슨 길을 생각도 없이 크게 내느냐고. 대연동 고갯마루를 낮추고, 도로확장 공사를 할 때도 똑같은 이유로 공무원들, 무지하게 욕 많이 먹었습니다."
공채 1기 공무원들은 맏이라는 사명감이 강했다. 여러 분야에 흩어져 근무하며 분야마다 조직을 추스르고 체계를 다져나갔다. 중앙동 부산시청사의 연산동 이전 계획이며, 해운대 신시가지 이전 계획이 이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문화의 불모지에 부산시민회관·문화회관 같은 문화시설을 짓고 가꾸며, 새마을운동을 통해 도시를 가꾼 주역도 이들이다.
공채 1기생 '63회' 조직 … 맏이 역할 톡톡
하도 입에 붙어 보통명사처럼 쓰곤 하던 교통난·주택용지난·재정난 해결과 쓰레기매립장·화장장·연탄저탄장·분뇨처리장 확보 같은 '3난(難) 4장(場)' 해법을 내놓은 것도 이들이었다. 도로를 내고, 상·하수도를 체계화하며,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산업도 주도했다. 이들이 계장이 되고, 과장이 되고, 실·국장으로 승진하는 사이 부산시는 발전을 거듭했다.
"50년 전 부산과 지금 부산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대한민국의 한낱 변방도시였다면, 지금은 세계의 중심이라 할 정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부산시 공무원 공채 1기생들은 30여 년 전 '63회'를 만들었다. 1963년에 임용된 공채 1기 공무원들의 모임이다. 지금도 이 모임은 계속하고 있다. 그만큼 맏이로서의 부산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두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부산을 걱정하고, 부산을 자랑하며, 고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직할시 승격 50년을 맞았으니, 부산도 이젠 성숙한 장년입니다. 이제는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재도약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부산발전의 원천적 힘은 부산시민 모두의 부산에 대한 애착과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모두가 부산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더 많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 공무원들께선 '머슴'까진 아니더라도, 시민을 위한 일꾼이자, 시민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런 행정을 펴주길 당부합니다."
- 작성자
- 박재관
- 작성일자
- 2013-05-16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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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577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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