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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602호 핫이슈

영도 이야기·맛·풍경 담은 복합문화공간 ‘무명일기’

부산 찾은 사람들에게 영도 가치 전하는 보람

내용

“거긴 왜 갑니까? 볼 게 하나도 없는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산역에 내린 관광객이 “영도 봉래동 물양장으로 가주세요”라고 하면 택시 기사들이 되묻곤 했다. 녹슨 크레인과 기름 냄새 배어 있는 대형 창고들, 바지선들이 엉켜 있는 그곳은 관광객의 발길이 닿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봉래동 물양장은 해운대나 광안리 못지않게 부산을 상징하는 곳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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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일기 김미연 대표. 사진제공·무명일기


∎무명일기 김미연 대표

최근 10년 사이 영도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됐다. 그 변화의 가장 앞자리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봉래동 창고 문을 가장 먼저 열고 불을 밝힌 무명일기 김미연 대표를 만났다.


낡은 창고에서 발견한 ‘영도 매력’

카페·음식·전시를 모두 담은 복합문화공간 ‘무명일기’는 봉래동 창고군 가운데서도 원래 모습을 가장 정직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밖에서 보면 그저 평범하고 투박한 창고일 뿐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대형 창고 특유의 높은 층고가 주는 위용과, 그 안을 채운 나무와 천의 질감이 주는 포근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이 공간을 함께 만들었던 오재민 전 대표(현 키친파이브 대표)의 할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흥남에서 피란 와서 정착하신 곳이 바로 여기였어요. 가족의 서사가 깃든 곳이죠. 그래서 세월에 밀려 무너져가는 창고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더 아팠어요. 단순히 사업할 공간을 찾은 게 아니라, 이곳의 시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먼지와 기름때, 정체를 알 수 없는 폐기물로 가득했던 창고를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창고를 다시 숨 쉬게 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청소부터 구조 보강, 세세한 인테리어까지 전문가 손을 빌리기보다 직접 몸을 부딪쳐 해결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자, 비로소 드러난 건 화려한 새 모습이 아니라, 창고가 수십 년간 간직해온 본래 표정이었다.


김 대표는 “‘무명일기(無名日記)’라는 이름에는 규정되지 않은 일상의 기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라며 “누구도 대신 정의할 수 없는, 가장 자연스럽고 자기다운 상태”라고 설명한다. 명주실로 짠 무명천처럼, 사람들 각자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이어지고 엮여 새로운 삶의 결을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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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일기 ‘영도소반’ 상차림


영도소반, 섬의 서사를 맛으로 기록

무명일기가 영도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방식 중 가장 독특한 건 ‘영도소반’ 프로젝트다.


“영도는 이야기가 정말 많은 섬이에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은 늘 부족해 보였어요. 특히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영도만의 음식을 먹고 싶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정작 뭐라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죠. 거기서부터 영도 이야기를 한 상에 담아보자는 고민이 시작됐어요.”


영도소반은 영도 대지에 뿌리를 둔 식재료로 차려낸 정성스러운 상차림이다. 영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고구마 재배지였다는 역사, 지금도 해녀들이 바다에서 직접 신선한 해산물을 공급한다는 생태적 이야기를 한 상에 녹여냈다.


이 상차림은 국가 행사나 주요 귀빈 방문 시 영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내놓고 있다. 현재는 일반 방문객에게도 예약제로 운영 중이며, 부산 전체 서사를 담은 ‘동백소반’으로의 확장도 준비 중이다.


어둠 속 등대에서 함께 걷는 광장으로

지금은 관광객들의 활기로 가득한 봉래동이지만, 김 대표는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을 때의 풍경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 왔을 때는 낮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어요. 어두운 창고 한가운데서 무명일기만 홀로 불을 켜고 손님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죠. 그때는 한 분 한 분의 방문이 정말 기적 같고 소중했어요.”


당시에는 무명일기라는 공간 하나를 보려고 일부러 봉래동을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무명일기가 밝힌 그 작은 불씨는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이들의 진심에 공감한 이웃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이제 봉래동 창고군은 카페와 문화공간이 어우러진 활력 넘치는 거리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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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일기 앞바다에 떠 있는 바지선을 활용한 프로젝트 해상정원 모습.


부산을 경험하는 ‘바다 위 정원’

무명일기는 지금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머무는 곳을 넘어, 영도의 제조 기술과 디자인이 결합된 제품을 선보이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으로 라운지를 꾸밀 계획이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부산의 시간을 몸소 겪어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무명일기 앞바다에 떠 있는 바지선을 활용한 해상정원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낡은 창고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 투박한 무명천의 감촉, 그리고 영도 흙에서 자란 고구마의 맛. 이 모든 것들이 모여 한 권의 일기가 된다. 봉래동 창고군의 시간과 함께 숨 쉬며, 부산의 가치를 묵묵히 기록해 나가는 무명일기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키길 기대한다.


글·목지수 ㈜싸이트브랜딩 대표/ 매거진 ‘집앞목욕탕’ 발간

작성자
부산이라 좋다
작성일자
2026-01-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60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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