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피서는 장산 계곡으로 '풍덩'
[여름특집] 장산계곡 나들이
- 내용
△부산시민의 피서지 '장산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①장산역 ②대천공원 ③폭포사 ④양운폭포
다 다르다. 같은 바위가 하나도 없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모두가 다르다. 사람은 쌍둥이라도 있지만 바위는 쌍둥이 비슷한 것도 없다. 똑같은 바위를 찾아 나선다면 수양이 되겠다. 평생을 찾아도 못 찾을지언정 이 바위 저 바위 묵묵히 뒤지다 보면 혹시 알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묵묵한 바위가 되어 있을지.
여기는 해운대 장산 계곡. 장산은 복이 많다. 산이 깊고 물이 깊다. 물소리 역시 산을 닮고 물을 닮아 깊다. 얼마나 깊은지 해운대 앞바다까지 떠밀려 간다. 떠밀려 가서 해운대 장산(萇山)과 해운대 장해(萇海)를 잇는다. 그 물소리 원류가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다 다르고 올라갈 때 다르고 내려올 때 다른 바위를 품은 장산 계곡이다.
바위는 세 종류다. 태초 그대로이지 싶은 바위가 있고 상류에서 떠내려온 바위가 있고 계곡 물길을 고려해 손을 댄 바위가 있다. 물도 세 종류다. 바위를 넘쳐서 가는 물이 있고 바위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이 있고 바위에 가로막혀 잠시 고였다가 가는 물이 있다. 바위와 물. 둘 다 막상막하다. 바위는 더는 크지 않고 물은 갈수록 낮아진다.
△장산계곡 황톳길을 걷는 시민들.맨발걷기 좋은 황톳길에서 힐링
“여기 봐라, 여기! 황톳길 만들어 놨네. 오리지날 황톳길!”
아빠는 감성이 풍부하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황톳길을 처음 보는 듯 물소리보다 음성이 높다. 그러면서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중고생 딸은 황톳길을 이미 봤는지 싱숭생숭 별로다. 아빠를 따라가긴 따라가는데 신발 신은 채 황톳길 옆 맨땅으로 걷는다. 나는 아빠에게 한 표! 여기 황톳길은 주단 길이다. 둘둘 만 주단을 펼친 듯 반듯하고 반들반들하다.
△장산계곡을 오르다 보면 만나는 폭포사.계곡 중간쯤은 절. 휘어지며 기다랗게 이어지는 계곡을 낀 절이고 높다랗게 떨어지는 폭포를 뒤에 둔 ‘폭포사’다. 절 마당에 써 붙인 ‘힐링 쉼터’ 이정표를 따라가면 눈이 동그래진다. 평평하게 펼쳐진 바위가 나오는데 이 바위 저 바위 얼기설기 짜맞춘 바위가 아니라 하나의 통바위고 태초 그대로의 바위다. 그 옛날 원효가 왔으면 원효가 앉았다가 가고 의상이 왔으면 의상이 앉았다가 갔을 통바위는 재두루미 하나가 통으로 차지한다.
장산 계곡에선 재두루미도 바위를 닮는다. 내 등짝에 밴 땀이 다 마르도록 두루미는 꼼짝을 않는다. 널찍한 바위에 터 잡고서는 눈알만 굴러댄다. 피라미든 뭐든 먹을 만한 게 있는 모양. 식탐이 어찌 두루미만의 탐욕일까. 바위인들 식탐이 없을까. 얼마나 마셔댔는지 젖을 대로 젖은 계곡의 크고 작은 바위, 그리고 잔돌.
바위에서 쪼개졌거나 떨어져 나갔을 잔돌은 바위만큼이나 볼만하다. 쪼개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감내한 대신 자유를 얻었다. 자유를 얻어서 한자리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물에 손을 넣어서 이 돌 저 돌 집적대면 집적댄 만큼 자리를 바꾼다. 한자리만을 고집하지 않는 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쉽게 가닿은 경지는 아니다. 이래저래 여기선 바위가 수양이다.
잔돌은 좀 손해다. 물이 두텁긴 해도 투명유리라서 숨을 데가 없다. 큰 돌을 비집고 숨는다고 숨어도 피라미가 와서 쪼아대고 숨는다고 숨어도 다슬기가 와서 달라붙는다. 물에 담근 발가락을 피라미가 와서 쪼아대면 사람도 움칠움칠 그러는데 사람보다 백분의 일, 천분의 일 작은 잔돌은 그러지도 못한 채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장산계곡의 상징인 양운폭포.
구름이 피는 폭포 ‘양운’
‘(…) 이 폭포수는 높이가 9m로 용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는 듯 내리는 듯 3계단상으로 떨어지는 하얀 물기둥과 함께 엄청난 소리는 장관을 이룬다. 마치 물이 바위에 부딪혀 휘날린 듯 물보라가 구름처럼 피어나는 것 같다고 하여 양운폭포라 하였다.(…)’
마침내 폭포! 철판에 새긴 안내문은 꽤 길다. 앞뒤 줄여도 이 정도다. 설명 붙인 이가 폭포에서 받은 감명이 그만큼 컸으리라. 폭포 명칭은 양운(養雲). 구름이 핀다는 뜻이다. 근처 학교들이 교명으로 쓸 만큼 이 일대에선 유명하다. 폭포는 9m 절벽. 노래로 치면 절창이고 사람으로 치면 절색이다. 폭포수 천년만년 떨어지면서 천년만년 후벼팠을 바닥은 얼마나 깊은지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 깊은 속을 파고들기라도 하듯 폭포는 절창이며 절색인 물기둥을 연신 내리꽂는다.
양운 계곡에 이르면 기분이 좋다가도 가라앉는다. 20년 전쯤 이틀에 하루꼴로 장산을 오르던 그 시절 불행한 일이 있었다. 폭포 소(沼)에서 친구들과 멱을 감던 고교생이 변을 당했다. 119가 오고 그러면서 그 이후 출입을 금지하는 금줄이 쳐졌다. 금줄은 지금도 여전하다. 금줄 중간중간 ‘위험! 접근 금지’와 ‘수영금지! 익사사고 많은 곳’ 팻말을 달았다. 폭포 계곡 여기선 보기만 하고 소리만 듣지, 입수는 절대 금물!
△장산 곳곳에 있는 이산표석. 조선왕실 소유의 토지경계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기우제 지내던 영산 ‘장산’
장산은 역사가 깊다. 이 세상에 산은 많고 모든 산의 역사가 태초에 닿아도 옛날 지도나 고문헌에 등장하는 산은 의외로 드물다. 장산은 꼭꼭 등장한다. 조선시대 부산을 그린 거의 모든 지도가 장산을 그리고선 ‘장산국기(萇山國基, 장산국의 터)’라고 표기했다. 1740년 편찬한 ‘동래부지(東萊府誌)’는 장산 정상 입암(立巖) 바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적었다. ‘이산(李山)’ 표석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제가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면서 왕실 소유 장산마저 빼앗았다. 부당과 비정상에 맞선 자의식의 딴딴한 빗돌이 ‘이산’ 표석이다. 장산 곳곳에 있다.
그 시절 기우제는 공공 행사였다. 서울에선 나라가 주관했고 지방에선 관아가 주관했다. 품이 많이 드는 행사고 영험을 중시했기에 아무 데서나 하지 않았다. 고르고 골랐다. 기장은 별도로 하고 1740년 ‘동래부지’가 언급한 기우소는 모두 여섯. 그중 산이 넷이었다. 금정산과 승악산, 배산, 그리고 장산이었다. 그때는 하단 승학산(乘鶴山)을 승악산(勝岳山)이라고 했다. 오랜 가뭄 끝에 마침내 단비가 장하게 내리면 장산 계곡물은 장하게 불어났다. 장산 계곡물의 뿌리는 기우제 지낸 뒤 장하게 내리던 그 단비. 장산에선 계곡물도 역사가 깊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는 시민들.전국 자치구 최초 구립공원 ‘장산’
장산은 역사만큼이나 명성이 드높다. 전국 최초 구립(區立) 공원이다. 구립이라고 해서 자치구 마음대로 정하진 않는다. 그랬다간 대한민국 200군데 넘는 자치구마다 그런 공원으로 넘쳐날 판이다. 국립공원 지정보다야 덜 까다롭지만 구립 역시 까다롭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며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 변경에 관한 지침’ 등등을 따진다.
장산 높이는 634m. 바닷가 600m 산은 내륙 깊숙한 1천m 산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바닷가 평지에서 등산하는 600m 산과 차를 타고 절반쯤 올라가서 등산하는 1천m 산이 무엇 다르겠나 싶다. 어떻게 갈까. 도시철도 장산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거기에서 장산 대천공원 입구까지는 걸어서 이삼십 분 거리다. 도중에 전통시장이 있다. 자가용 이용도 가능하다. 공원 입구에 대천공원 공영주차장이 있다.
글·동길산 시인
- 작성자
- 조현경
- 작성일자
- 2025-08-08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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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202508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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