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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588호 칼럼

수평선 - 부산&6·25 전쟁

내용

“한반도의 모든 것이 부서졌다. 이름 있는 것 중 서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맥아더 청문회에서 미국 극동폭격사령부 사령관 엠멧 오도넬이 한 말이다. 6·25전쟁의 참상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 개시 이래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까지, 한반도는 온통 폐허로 전락했다. 남북한의 인명피해만 520만명(사망 150만, 부상 360만).

개전 초기, 북한군의 조직적 공격력으로 남한 대부분이 점령당했다. 정부는 수도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후퇴했다. '임시수도 부산'시절이다. 전쟁 피난민도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부산은 전쟁 최후의 거점, 전쟁 피난민의 피난처였다. UN 참전 21개국의 전사자 역시 부산에 안장했다. 전 세계 유일의 UN 지정묘지다. 참전국이 11월 11일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 추모행사를 부산에서 갖는 이유다.

올해는 UN군 참전·정전 60주년이다. 서울, 미국 워싱턴, 세계 곳곳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경구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UN 참전국 대표초청 오찬에서 이 표현을 썼다. 미국 정부 역시 기념식을 가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한국을 찬탄했다. "한국인이 누리는 자유, 활발한 민주주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는 한국이 전쟁에서 승리한 데 따른 유업"이라고.

부산, 오늘 세계평화의 중심으로-. 대한민국이 참전국에 대한 '보훈외교'를 강화하면서, 세계인이 부산을 보는 시각이다. UN기념공원,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상징이다. 한국,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역시 부산은 그 상징도시다. 부산, 6·25 전쟁 시기엔 민주수호의 보루였지만 궁핍한 변방 항구도시 아니었나. 그 부산이 이제 세계 속에 우뚝한 동북아 중심도시로 컸다. 부산, 정말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작성자
부산이야기
작성일자
2013-07-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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