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수평선/ 고문
- 내용
- TV의 역사극을 보면 가끔 주리를 트는 장면이 나온다. 다리를 묶고 그 중간에 주장(朱杖)을 넣어 좌우로 벌리게 해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일종의 고문이다. 그러나 주리형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정형(正刑)은 아니었다. 단지 관에서 관행적으로 써온 형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같은 형은 권문세가에서도 공공연하게 자행되기도 했다. 고문이 합법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형으로는 회초리로 볼기를 때리는 태형(笞刑)과 장형(杖刑), 관에 붙잡아 두고 온갖 궂은 일을 시키는 도형(徒刑), 귀양을 보내는 유형, 사형 등이 있었다. 형을 가할 때 쓰는 형구에는 태와 장이 대표적이었다. 태와 장은 가시가 있는 나무로 만들더라도 옹이는 제거토록 했다. 고문을 해도 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고문이란 것이 본래 신체에 고통을 가해 자백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이용된 수단이고 보면 고문은 악랄함이 본질인 것이다. 권력유지에 급급한 나라일수록 정권의 악랄함은 극에 달하고 그만큼 고문도 자주 이용된다. 심지어 고문방식을 `기술\"\로 인정하게 되고 `고문기술자\"\도 필요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고문기술자인 이근안 경감이 도피생활 11년만에 자수를 했다. 그가 자행한 행위는 전기고문 물고문 등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것들이다. 동료경찰관들이 법원으로부터 적은 형량의 선고를 받은 것이 자수를 하게 된 동기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이 각종 음모로 이어지니까 그가 왜 하필 이 시기에 자수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 그가 우리 역사의 `마지막 고문 기술자\"\로 기록되길 바랄 뿐이다.
- 작성자
- 부산이야기
- 작성일자
- 2000-09-1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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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8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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